생명의 말씀 - 설교

[스크랩] 믿음대로 되는 축복

kaporet 2011. 6. 1. 23:03

믿음대로 되는 축복

마태복음 8:5-13

2011.5.22(자마그리스도교회 주일예배)




들어가는 말


    지난 3월11일 동북지역에 발생한 대지진과 쯔나미로 인해 사망자 1만5천명과 행방불명 9800명이 발생하고, 12만명이 피난생활을 하는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충격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피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모른채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피해를 당한 사람들 중에는 대부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상당수의 교회와 기독교인들도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지진이 아니더라도 어떤 재난이 불시에 우리를 덮칠지 모르며, 그때 우리는 어찌해야할지 몰라 당황하게 됩니다. 때로는 기도를 할 엄두조차 안날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기도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환경을 보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 믿음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어떤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 칭찬을 받은 믿음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1. 믿음으로 중보 기도하는 백부장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산에서 제자들에게 천국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신 후, 한 문둥병자를 만나 그를 고치신 뒤에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당시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거처하시는 집이 있던 곳이며,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서 로마의 군단급은 아니지만 팔레스틴의 분부왕 헤롯 안디바의 보조 부대가 주둔했던 곳이었습니다. 가버나움이 헤롯의 관할지에 있던 것으로 보아 이 백부장은 이방 출신으로서 아마 헤롯의 용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백부장은 수하에 100명의 병사를 거느린 중급 지휘관이었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을 위해 간절하게 호소합니다(5절).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괴로워하나이다.”(6절)


    백부장이 예수님께 ‘주여’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을 향한 백부장의 돈독한 믿음과 존경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7:21). “주여”라는 말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고백이 담겨있는 말입니다.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야)로서 인정하려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 그의 고백은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의 치유사역의 소식과 예수님의 권위있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주시기를 구합니다. 


    백부장의 하인이 앓고 있던 ‘중풍병’은 신체의 전체나 일부 또는 얼굴이나 기타 부위에 일어나는 마비 증상을 가리키는 병을 말하니다. 이 병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또 현대에 이르러서도 완전 규명이 되지 않고 있지만, 그 대표적 원인으로는 역시 뇌졸증을 들 수 있습니다. 뇌졸증이란 뇌의 작은 동맥들이 파열되어 뇌 속에서 출혈이 일어나는 경우, 또는 뇌 속에서 혼탁한 핏덩어리가 뭉쳐져서 혈액의 순환이 막히는 경우, 발작이 일어나고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런 발작과 혼수상태가 발생되는 경우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으며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에라도 반신불수 등에 빠지게 됩니다. 어째든 이 중풍병은 문둥병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문둥병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일어난 병으로서 그 당시에는 기적이 아니면 고치지 못하는 병으로 간주되었으며, 환자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그러므로 하인을 불쌍히 여긴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와 치료해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부모나 혈육이 아닌 신분이 낮은 자를 위해 굳이 와서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인은 당시 사회 구조상 천민이었으나 백부장과 특별한 우정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째든 자신의 하인을 위하여 만사를 제쳐두고 이처럼 간청하고 있는 백부장의 성품은 놀랍습니다. 어쩌면 그가 이처럼 자상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그는 로마인이면서도 유대인인 예수님에 대하여 선입관을 갖지 않고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직접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7절)


    예수님의 치유 기적 장면을 보면 주로 병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오거나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달받음으로 하여 치유되었지 예수님께서 직접 병자를 찾아가시겠다고 제안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여기서 굳이 가시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기 백부장은 헤롯 용병으로서 그의 혈통적 배경은 로마인이 아닌 다른 이방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단 로마 식민 체제의 하수인이라는 점에서 로마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피지배자인 유대인은 점령자인 로마인을 착취자 내지 종교적 이방인으로서 경멸하였고 또 로마인은 유대인을 편협하고 위험한 피지배자로 멸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대적인 편견과 증오의 벽을 절대적인 사랑과 정의로써 허물어 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자신의 구원 사역이 유대인을 넘어 세계 만민을 위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2. 믿음으로 대답하는 백부장


    백부장은 예수님께 말씀만 하시기를 청합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8절)


    백부장이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라고 말한 것은 그의 영적, 도덕적 충족성이 몹시도 결여됨을 고백한 말로서(3:11), 어떤 권위있는 대상에 대하여 인간이 스스로의 무가치함을 느낄 때 사용됩니다. 이는 분명 백부장이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됨을 인식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초월성과 절대 거룩성을 인지(認知)했음을 반영하는 진술로서 백부장의 겸손한 심정을 나타내 주고 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겸손한 영혼에게 주님의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시 147:6). 백부장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부탁드립니다.


    백부장이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말한 것은 분명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도 자기 하인의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을 전능한 절대자로 믿었음을 증명해 줍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병자에게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말씀으로만 치유의 은총을 베푸셨다는 기록은 요한복음 4:46-53의 사건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경우였기에 백부장의 믿음은 더욱 돋보이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예수님을 어떤 뛰어난 의사로 생각했다면 특효약이나 손을 만지는 등의 치료 요법을 요청했을 것이고 또 능력있는 종교 지도자 정도로 생각했다 하더라도 기도나 안수 등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 속에는 절대적인 능력이 있음을 믿은 때문이며 이것은 그가 예수님께 대해 신적 메시야임을 고백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 말씀만 하시기를 청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내가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9절)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은 ‘권세 아래에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서 여기서 권세는 로마 황제의 권한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군인으로서 황제로부터 권한의 일부를 위임받아 자기 수하에 백명의 부하를 이끌고 있는 그에게 있어서 이같은 명령체계와 그 개념은 너무도 명확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 체계라는 인위적 차원에서의 상급자와 그 하급자 사이의 명령과 복종의 관계를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에 적용시킨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는 결국 백부장이 예수님을 인간적 통치자인 황제 이상의 존재, 즉 자연과 우주를 복종시킬 수 있는 신적 통치자로서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의 영적 현상의 원리를 꿰뚫어 본 백부장의 신앙의 지혜는 매우 놀라운 것입니다.



3. 믿음대로 되는 축복


    예수님은 백부장의 고백을 듣고서 기이히 여기시며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10절)


     예수님은 좇는 자들에게 백부장의 믿음을 이스라엘 중에서도 만나본 적이 없는 믿음이라고 칭찬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여태까지 만나 본 유대인들 중 그 어느 누구도 말씀만으로도 병이 낫겠다고 고백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백부장은 이방인으로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계시하고 있는 구약적 배경을 거의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어떤 유대인들보다 예수님의 인격과 본질에 대해 더 깊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상한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으매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로 여기시고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나는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소유한 것입니다. 백부장도 믿음의 사람들과 같이 예수님께 믿음의 고백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이 이스라엘 중에서도 만나보지 못한 믿음이라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중에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있음을 경계하십니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11-12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함께 천국에 앉을 것’입니다. ‘동서로부터’는 단순히 유대 지경 내(內) 뿐 아니라 이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까지를 포함한 말입니다.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사 45:6; 49:12), 성취되는 것입니다. 백부장이 이방인이긴 하지만 이제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게 되었음을 예언자의 말을 통해 확증하신 것입니다. 전 세계 만민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믿음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앉다’란 말은 식사 기간 중 거의 눕다시피 식탁에 기대어 앉는 유대인들의 식사 예법에서 비롯된 말인데, 여기서는 특별히 잔치상에 둘러 기대는 상태를 말합니다. '식탁에 앉다'란 말은 신약에서 하나님 나라에서 베풀어질 잔치와 그로 인한 큰 기쁨을 상징하는 말입니다(마 26:29; 눅 14:15-24). 이 잔치는 메시야 왕국의 완성을 상징하는 '메시야 잔치'라고 합니다. 메시야 잔치에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천국에 앉을 수 있는 자들은 백부장이 소유했던 그런 믿음을 소유한 자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백부장은 천국에 들어갈 자들에 대한 하나의 전형적인 모델입니다.


    그러나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슬피 이를 갈 것입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은 그 나라를 상속하게 된 자, 즉 유대 민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3:9,10), 당연히 천국에 속한 자들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단순한 혈통적 순수성만으로 천국을 기업으로 얻을 수 없겠기에 결국 나라의 본 자손들이 바깥 어두운데 쫓겨날 것임을 분명히 언급하셨습니다. ‘바깥 어두운데’는 멸망의 장소, 곧 미래에 '메시야의 잔치'가 배설되는 곳의 외부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 곳은 항상 밝은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곳은 어두운 곳으로서 어두움의 권세인 사단이 지배하는 곳이며 영원한 절망이 있는 지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22:13). 오늘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빛을 내는 곳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요, 진리의 말씀이 없고 하나님의 빛이 없는 곳은 사단이 지배하는 어두움과 죽음의 세계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지옥의 장면을 더욱 생생하고 무섭게 묘사한 표현으로서, 고통과 깊은 절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대로 될 것을 선언하십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찌어다”(13절)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네 믿은 대로 될찌어다’라고 선언하실 때 즉시 백부장의 하인의 병이 나았습니다. '믿은 대로'란 말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시지만 그 은혜는 인간편의 믿음의 양에 따라 주어집니다. 둘째, 기적이 행사되면서 백부장이 믿고 있는바 병고침이 그대로 실현된 것입니다. 즉 백부장의 믿음의 분량대로 그의 하인의 병이 낫게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7:6을 보면 예수님과 백부장의 집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백부장의 친구들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그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그의 하인의 병이 나았던 것으로 보아 '그 시'란 말은 바로 그 순간, 즉 예수님의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란 말씀이 떨어진 즉시 나았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백부장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은 예수님에 대한 그의 믿음 때문인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서 순수하게 믿은 믿음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백부장은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면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에서 치유될 줄로 믿은 것입니다. 백부장의 이런 믿음이 그의 믿음대로 하인의 중풍병이 났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한 마디로 믿음대로 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의 역사가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사람인 뮐러목사님은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서 그가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이 먹을 식량이 떨어질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손길을 통하여 때로는 식량으로 때로는 돈을 보내주셔서 아이들이 굶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백부장과 같이 예수님이 말씀 한마디만 해주시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으로 주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믿음이란 어떤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어주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즉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안에 계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또 믿음은 성령이 내안에서 성전 삼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믿음은 하나님이 내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즉 믿음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안에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생깁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선물로 받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할 것입니다. 매일 아침 주님의 보좌 앞에 은혜를 구하며 나아가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성경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의 믿음이 성장합니다. 또한 믿음으로 행할 때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됩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 2:22). 믿음은 우리의 행함을 통하여 성장합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도 예수님은 백부장과 같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자신과 너무 멀리 계신 것처럼 느끼지만, 예수님은 늘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응답해주시기를 소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백부장과 같이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고 간구합시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믿음대로 되는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주님을 더 알기 원하는 사람들
글쓴이 : kapore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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