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 설교

[스크랩]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kaporet 2008. 12. 20. 11:45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빌립보서 4:4-7

2008.12.14(주일예배)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4-7)


들어가는 말


    사람들은 인생을 항해하는 배에 비유합니다. 이것은 인생을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맑은 날에는 푸른 하늘을 보면서 기뻐하며 즐거워하지만, 비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면 두려워하면서 근심 걱정하는 삶의 모습이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기뻐하며 살기를 원하지만 환경에 따라서 마음에 변화가 심한 사람들에게는 항상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살기란 매우 힘듭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많으면 항상 기뻐할 수 있지 않는가 생각하지만, 정작 부자들의 말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의 농구스타 마이클 조단이라는 사람은 슈퍼스타가 되고 많은 돈을 번 뒤에는 혼자서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불안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되어 마음 놓고 걸어 다닐 수 없다고 합니다. 오래전 미국의 배우 중 섹시한 몸매로 유명했던 ‘마르린 몬로’ 라는 여배우는 나체로 자살한채 발견되어서 당시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은 환경이 좋건 나쁘건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기에는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항상 기뻐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환경을 뛰어넘는 기쁨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쁨을 어떻게 누려야할지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항상 기뻐하는 삶


    주안에서 기뻐함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삶을 배우기에 앞서 사도바울이 항상 기뻐하라고 빌립보교회에 편지할 때의 바울의 환경을 잠깐 살펴보아야할 것입니다. 이 빌립보서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쓰여진 옥중서신입니다. 즉 사도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혀있을 때 자신이 개척하여 세운 교회들에게 편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판단으로는 도무지 기뻐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지하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서신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빌 1:3-4)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자신의 전한 복음을 인하여 기뻐한다고 말합니다(1:18). 그러면서 바울은 빌립보교회에게 ‘주안에서 기뻐하라’(3:1)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가 자신의 기쁨이요 면류관임을 밝히며 그들이 주안에 설 것과 주안에서 한 마음을 품을 것과 동역자들을 도울 것을 권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도바울의 사고 속에는 “주안에서”라는 말씀이 항상 기본적인 주제였습니다.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만난 후에 그는 무슨 문제이든지 주님과의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주님의 증인으로서 부름을 받아 복음을 위하여 수고해 나갈 때 그의 모든 인생의 목적은 주님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주님을 제외한 삶은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모든 일을 주안에서 생각하고 주안에서 행하며, 심지어는 장래의 모든 일을 주안에서 이루어지기를 항상 바랐습니다. 그의 모든 삶은 주안에서 사는 삶이었기 때문에 그는 기뻐하는 일도 슬퍼하는 일도 고난을 당하는 것까지도 주님 안에서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이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었다면 자신의 인생은 주안에서 생각해야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서 자신의 인생을 주님을 위해서만 살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문제에 부딪히면 결국 자신의 생각으로 행합니다. ‘주안에서’라는 생각을 금방 잊어버리고, ‘자신 안에서’ 행합니다. 자신이 모든 일의 주체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주안에서’ 생각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안에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안에서’ 사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온전한 연합한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주님과 붙어있어야 하고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이 되어야할 것을 말씀하십니다(요 15:1-7). 주님안에 거하는 삶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 성령께서 그 심령 속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우리의 육의 생각을 십자가에 못박고 성령의 생각으로 사는 것입니다(갈 5:16-18). 즉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가르치실 때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은 성령의 생각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성령께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심으로 순종하게 되고 주안에서 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주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어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요 5:11).


    항상 기뻐하라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에 권면한 ‘주안에서’ 행하여야할 것은 그들의 삶 속에 “주안에서 항상 기뻐해야하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이 사도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항상 기뻐하는 일’입니다. 기뻐할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뻐할 일이 있을 때 기뻐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기뻐할 일이 없을 때 고난 중에 고통으로 도저히 기뻐할 만한 일이 없을 때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실제로 그렇게 기뻐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인해 옥에 갇히었으나 빌립보교회로 인하여 기뻐한다고 밝힙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어 빌립보교회가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을 듣고 기뻐한 것처럼, 빌립보교회가 이제는 주님 안에서 기뻐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으로 인하여는 기뻐할 일이 없지만, 주님의 은혜가 있으면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과한 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위로를 기대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상 주심을 믿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 11:6)

    사도는 계속하여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왜 이처럼 반복하여 기뻐하라고 권하고 있습니까? 지금 빌립보교회가 처한 환경은 도저히 기뻐할 만한 환경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는 빌립보서 전체에서 기뻐할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도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빌립보교회가 고난 중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위해 수고하며, 종국에는 빌립보교회가 주안에서 승리할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뻐할 것을 요구합니다. 빌립보교회가 주안에 있기만 하면 그들의 승리는 확정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실제로는 환경에 있어서 기뻐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안에 있음을 확신하면 주님의 은혜로 우리 안에 평안을 느끼며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


    관용을 베푸는 삶


    성도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너희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관용은 모든 이에게 대한 너그러움을 말합니다. 마땅히 상대방의 실책을 야단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그러하지 않고 그를 너그럽게 용서하는 태도입니다. '관용'은 손해나 역경을 당해도 쉽게 동요되거나 넘어지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영적인 인내'를 가리킵니다. 또한 이것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태도를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 심지어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까지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보여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왜 관용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관용해주시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롬 9:22) 그래서 사도바울도 그 관용을 보입니다.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고후 10:1) 관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따라서 성도가 마땅히 따라야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혹시 실수한 사람이 있습니까? 관용하시기 바랍니다. 관용함으로 우리 또한 관용함을 입을 것입니다.

    그렇게 빌립보교회에게 관용해야만 할 이유는 “주께서 가까우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다는 말씀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선악간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오는 것을 믿는 이상 모든 핍박을 인내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을 가진 성도는 다른 이에 대해서 관용해야할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자신도 주님께 관용을 받기 때문입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 2:13) 성도가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 때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의 첫 번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 때 자신의 마음에 주님께서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평안을 얻은 심령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이 솟아나올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의 두 번째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는 '염려를 중단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초조해 하거나 불필요한 관심을 쏟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할 때 기뻐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기도할 때 우리의 심령에 평안을 누리고 그 결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염려하면서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주님께 기도하는 자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할 것”을 사도바울은 권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염려하며 기도합니까? 기도하며 염려하는 자는 주님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 )

    그러므로 기도할 때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하나님을 향해 있음을 나타내며, '간구'는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일에 대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은 작은 일이든지 큰 일든지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삶에 대하여, 그리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곧잘 자신이 가능한 것은 기도하지 않고, 잘 안되는 것은 기도하면서도 근심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우리의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아뢰되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말씀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는 말씀과도 통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을 때 주님께서 그것을 그대로 이루어주시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도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요소로서, 기도하는 자가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


   성도가 이와같이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뢸 때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거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우리의 모든 생각을 초월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입니다. 이것은 염려하지 않고 기도와 감사로 하나님께 아뢸 때 그 기도의 결과로 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평화와 확연히 구별됩니다. 세상의 평화는 일시적이고 표면적이지만, 하나님의 평강은 영원하며 본질적이며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평강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믿음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말씀은 우리의 심령 속 깊은 곳에 있는 생각까지도 주님께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지키시리라’는 말은 로마 군대의 수비대가 보초를 서는 광경을 묘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믿는 자의 마음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모든 근심과 실망으로부터 성도들을 지켜 보호해 줍니다. 때로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무의식 가운데 하는 생각조차도 주님께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으로 인하여 우리는 주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나가는 말


    우리의 환경을 보면 빌립보교회와 같이 고난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아무런 기쁨도 없고 고통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찌 주님께서 가르쳐주십니다. 우리의 환경을 보지 말고 우리를 어떤 환경 속에서도 승리하게 하시는 주님을 보면서 주안에서 기뻐합시다. 기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주님안에서 기뻐하는 것’은 ‘성령안에서 기뻐하는 일’입니다. 성령의 위로를 구하며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속에 말씀하시는 세밀한 음성을 들으며, 주님으로 나오는 기쁨을 누립니다. 우리에게 승리를 확신케 하시는 주님께 의지하며 기뻐합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룁시다. 염려하며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확신을 갖고서 감사함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환경을 보면 아직도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주님께서 반드시 선하신 뜻 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시어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놀라운 평강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고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출처 : 센다바중앙교회
글쓴이 : kapore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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