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의 예수님
마태복음 1:18-25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1: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1: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I. 서론
오늘은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는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지만, 그 의미를 잘 모른 채 즐기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산타크로스가 탄생한 날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을 기준하여 만든 것이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카렌다입니다. 이 카렌다는 2005년 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으로 기준하여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날부터 이 세상의 역사가 새로 시작되었다는 의미로서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정하는 것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이 역사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황제로 있던 로마는 국교가 기독교가 되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때의 황제는 인류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으로 새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전의 인류의 역사는 소망이 없었던 시대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 세상은 새로운 빛이 비추이게 되었고 모든 인류는 이제 새로운 소망으로 살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에서 역사를 말하는 단어를 history 라고 말하는데 그 history 라는 말은 원래는 his-story(그의 이야기)라는 말을 줄여서 history 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까지의 인류의 역사는 헬라문화가 주도해왔습니다. 모든 학문과 철학은 헬라의 문화 속에서 꽃피워왔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진정한 역사는 헬라문화의 역사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인류역사의 전환점으로 삼은 이유는 인류의 역사이래 하나님을 찾고 있던 인류에게 참다운 빛을 비추어 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류가 하나님을 찾고자하여도 찾을 수 없고 만날 수도 없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류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시기까지 그 역사가 바로 인류의 역사와 가장 깊은 관계가 있는 역사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그 역사는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창세기의 역사로부터 이스라엘의 역사 이르는 모든 이야기가 실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역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II. 임마누엘의 예수님 1.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1)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 오늘 본문을 보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소개하는 내용에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나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요셉이라는 청년과 결혼하기로 정했는데, 결혼식을 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요셉이 아니라 단지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이 땅에 탄생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모친 마리아의 법적인 남편인 요셉과의 관계 속에서 예수님이 탄생을 해서 법적으로는 요셉이 아버지이지만, 실상의 아버지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의 아들인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본문의 내용으로는 성령으로 인하여 잉태했으니 성령의 아들인가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인하여 잉태했다고는 말씀하지만 아버지가 성령이라고는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아버지는 누구일까요? 본문과 관련 있는 누가복음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35에 모친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말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성령으로 인하여 잉태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심으로 되는 것임을 설명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을 통하여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로 전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입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앞에서 읽은 누가복음 1:35의 말씀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잉태에 대하여 천사는 마리아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음으로 이루어질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친히 마리아의 몸 안에 들어오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리아의 몸에 들어올 때 마리아의 몸 안에 태동하는 생명은 어떤 존재일까라는 사실을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되는 생명은 곧 하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능력으로 마리아의 몸 안에 들어오셔서 잉태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의 몸 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기 위하여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잉태되고 이 땅에 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탄생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예수님의 탄생의 신비를 우리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는 달리 육신의 아버지가 없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 마리아의 몸만 빌려서 잉태하게 하셨는데, 성령은 제3위의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과 거룩하신 하나님은 한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누가복음 1:32-33에 소개된 말씀을 보십시다. 눅 1: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눅 1: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눅 1: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예수님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어 그 왕위를 이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두 가지 사실입니다.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태어나는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다윗의 왕권을 이를 왕으로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왕위를 이어서 오신 것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에게 약속하신대로 오셨다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오셨다는 사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스라엘의 왕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다윗의 후손 중에 그의 왕위를 이어서 영원히 왕 노릇 하실 분을 보내시는데 그분이 바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메시야, 그리스도 다시 말하면 구세주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나라를 영원히 통치하실터인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모든 백성을 다스리실 왕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시니 그의 다스리시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말씀입니다.
3.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 (1)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그러면 예수님은 왜 다른 사람들처럼 아버지와 어머니사이에서 육체의 관계를 통하여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잉태되어 태어나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야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의 계획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가 없는 인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우리는 창세기 1장부터 3장의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의 창조와 타락 과정을 살펴보아야하지만,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우선 개략적인 설명을 하겠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6일간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6일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만드시기로 하십니다. 그래서 흙으로 인간을 빗으시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인간은 생령, 즉 산자가 됩니다. 그 사람을 아담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아담을 하나님의 동산 에덴동산에 두십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의 동산지기가 되이어서 동산을 지키며 다스리게 됩니다. 그 에덴동산의 모습을 설명한 창세기 2:9-14의 말씀은 에덴동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말씀합니다. 아담은 그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행복한 삶을 삽니다. 그런데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계명을 들어야했습니다. 그것은 동산중앙에 둔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나님께서는 엄하게 경계하십니다. 선악과 이외에도 동산에는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도 있었으며, 생명나무도 있었습니다. 그 나무들은 인간이 자유롭게 먹어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는 먹어서는 안되는 나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무는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 즉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 일을 제대로 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보는 시금석과도 같은 나무였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는 바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순종을 요구하는 것을 보기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이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악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 된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은 모두 부모로부터 피를 물려받아서 인간에게는 죄가 흐르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죄가운데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제 아담과 그 후손은 모두다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범한 인간을 그대로 보아 넘길 수가 없습니다. 그는 심판을 받아야하고 형벌을 받아야합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2)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을 심판하셔야합니다만, 그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시되 또한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는 방도를 강구하시었습니다. 그것은 범죄한 인간을 대신하여 또 다른 인간이 대신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래 범죄한 인간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범죄한 인간을 위해서 죽을 수 가 있습니까? 죄가 없는 인간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죄가 없는 인간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후손인 인류 모두는 아담의 범죄로 다 죄 가운데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아담을 대신하여 또다른 인간을 창조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창조된 사람은 아담을 대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담의 후손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되 죄없는 몸으로 와야만 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죄없으신 몸으로 이 땅에 오시기 위하여 처녀인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태어나야만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단 한 가지, 죄 가운데 빠진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어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21을 다시 읽어봅시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이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자기백성이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창세이전부터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여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2)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23을 읽어봅시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인데 예수님의 탄생으로 성취된 말씀입니다. 과연 예수님은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임마누엘의 뜻을 번역한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인데,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로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아담의 범죄로 죄 가운데 태어나는 인류를 위해서 대신 죽으셔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시고 우리의 죄를 없다고 인정하시고 용서하십니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인간의 모든 죄를 심판하시고 인간의 죄를 없다고 인정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사망에서 3일만에 부활시키심으로 예수님의 의로우심을 보이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하나, 예수님이 자신의 죄 때문에 돌아가신 것과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 용서함을 받고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예수님을 자기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무엇일까요? 우리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과 예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함을 받고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한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III. 적용: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까? 이것은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신의 주로 고백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주로 고백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주인이시라는 고백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주인으로 고백한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는 예수님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생각을 해도, 잠을 자도, 밥을 먹어도, 직장에서 일을 해도,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모두 예수님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처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삶은 모든 인생의 문제를 다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어떻게 해보려고 하다가 안되면 좌절하고 낙심하다가 하는 말이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나님이 있으면 왜 일이 이렇게 꼬이는 거야?”하고 비탄합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언제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 본적이 있습니까? 전부 자기가 할 것처럼 자기가 판단하고 자신의 힘으로 해보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안되니까 이제는 하나님 탓을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했다면 처음부터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고 예수님께 자신의 문제를 다 내어놓고 기도합시다. 그리할 때 예수님이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 아버지께 아뢰어서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과 시간을 보내고,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님 앞에서 하는 것처럼 마음을 예수님께 쏟으며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점점 우리는 자신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거나 생각하거나 행할 때 자기 멋대로 하지 말고 자기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의지해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고 생각하며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한다는 마음으로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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