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삭
창 26:12-25
2008.10.1(수요예배)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창 26:12-25)
들어가는 말
이삭이 그랄 땅에 거하면서 비록 그의 아내 리브가로 인하여 실수는 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호하시고 아비멜렉왕을 통하여 그 백성들이 이삭과 그 아내를 건들지 못하도록 조치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그랄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이삭의 모습은 이방인인 블레셋사람들이 보기에는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심으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이삭에게 평안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삭이 왕성하게 되는 것을 시기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축복과 시련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삭
이삭은 아내의 일로 실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수확을 얻게 됩니다. 이삭의 농사는 가인(4:2)과 노아(9:20)에 이어 세번째로 나타나는 족장의 농사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삭은 유목민인 아브라함과는 달리 반(半)유목민으로 간주될 만큼 농사일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처럼 유목민이 땅을 개간한다는 것은 힘들고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니 자연히 그들은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백배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백배는 문자적으로는 '백배의 분량'입니다. 이처럼 이삭이 동일한 경작 조건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족속에 비해 백배의 수확을 얻었다는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우리는 비록 인간은 연약하고 불완전하며 종종 하나님의 뜻을 거스릴 때가 많으나 하나님께선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들에게 긍휼을 덧입히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애 3:31-33). 여기서 ‘얻었다’는 말은 이삭이 들에 나가 수확할 것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발견하고 놀라는 모습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어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는 하나님이 일전에 약속하신대로 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3절). 이는 하나님의 이름에 있어 언약관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여호와'란 명칭이 사용된 점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이 왕성하다는 것은 갈수록 '그가 계속 번창하게 되어갔다'란 뜻입니다. 양과 소는 '양떼의 재산과 소떼의 재산'입니다. 이와 같이 양과 소를 따로 구분함은 이삭의 살림살이가 심히 증대된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은 소유하고 있는 가축의 수로 부를 가늠했었기 때문입니다(12:16, 30, 43; 욥 1:3). 노복은 주인에 예속된 종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당시 이삭 가문에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모인 종들은 주로 비히브리계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
이로 인해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였습니다.” ‘시기하다’는 말은 크게 질투하며, 시샘하는 것을 뜻합니다. 타인의 번영이나 성공에 대해 이처럼 까닭없이 배 아파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성의 일면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우리 성도들은 이러한 옛 성품을 벗어 버리고 오직 새사람을 입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대인 관계에서도 성숙한 모습을 지녀가야 할 것입니다(엡 4:22). 블레셋사람들의 시기는 바로 이삭에게 방해공작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종들이 판 우물을 막기 시작합니다. 물이 귀한 팔레스틴에서 이런 행위는 곧 전쟁 도발 행위요(왕하3:25;사15:6), 간접적인 추방 명령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네가 우리보다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고 합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의 왕성해가는 모습을 보면 위협이 될 정도임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에게 ‘떠나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네 모든 권속과 가산을 가지고 이곳에서 떠나라는 강제 추방 명령입니다. 성도들의 축복받는 모습을 시기하는 사람들은 성도들이 자신들의 무리에 있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무리에서 떠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맹세한 바를 죽기까지 준수하는 고대인들의 관습에 의거해 볼 때 아브라함과 맺은 호혜 조약(互惠條約)을 이처럼 쉽게 파기한 본절의 아비멜렉은 아브라함 당시의 아비멜렉이 아닐 것입니다(21:22-27). 이러한 사실은 아브라함 당시(B.C.2060년경)와 지금(B.C.1990년경)간에는 이미 70여년의 시간차가 있고 '아비멜렉'은 '아버지의 왕'이란 뜻으로 고유인명이 아닌 역대 블레셋 왕들의 공식 칭호였다는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됩니다.
그랄 땅을 떠나 새로운 우물을 파는 이삭
결국 이삭은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합니다. '그랄 골짜기'는 가사에서 남동쪽으로 약 15Km거리에 위치했으며, 골짜기는 산기슭 아래쪽, 물을 구할 수 있는 평평한 분지를 의미합니다. 우거하는 것은 오랫동안 머물러 있거나 거주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삭은 블레셋 땅에서 약 15년 동안 거주하였습니다.
그곳에 머물면서 이삭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다시 팝니다. 이것은 이삭이 오래 전 아브라함이 거하던 그랄 골짜기로 되돌아와 아브라함이 팠었던 브엘세바 우물 및 다른 몇몇 우물들을 다시 팠다는 뜻입니다(21:22-34). 그리고 그 우물의 이름을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이삭이 우물들의 본래 이름을 회복시킨 이유는 이 우물들에 대한 그의 권리를 확인함과 동시에 부친을 향한 그의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비록 시기하는 자들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막혔던 우물을 다시 판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자신을 시기하는 자들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종들이 골자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습니다. 샘 근원은 ‘살아있는 물’, 즉 ‘생수’란 뜻입니다(레 14:5,6; 계 21:6). 이는 풍부하고 수질이 좋은 새로운 샘을 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삭이 아브라함 당시에 팠던 우물들을 복구시킨 외에도(18절)이처럼 새로운 우물들(20-22절)을 팠다는 사실은 그의 권속과 가축이 나날이 증대되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결코 머무는 것이 아니고 날마다 새로운 샘을 파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축복은 기도를 통하여 샘을 팔 때 하나님의 생수가 우리 안에 넘쳐흐르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도 마시게 할 만큼 풍성한 것입니다.
우물을 인한 다툼과 이삭의 양보
그때 그랄 목자들이 와서 이삭의 목자들과 다투며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고 칭합니다. 각 우물에 기념될 만한 이름을 부여한 것을 볼 때 팔레스틴내에서 우물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얼마만한 지를 짐작케 합니다(21:31). 에섹은 '억압하다', '강탈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일반적인 다툼보다 '불공평하게 강탈을 당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우물의 이름에서 우리는 이방 땅에서 겪은 이삭의 고초와 비애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이 우물을 포기한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관대한 마음으로 양보한 것일 뿐입니다. 사실 이삭에겐 마음만 정하면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는 많은 인력(人力)이 있었습니다(16절). 이삭은 다른 곳에 우물을 팠는데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합니다. 싯나는 적대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같은 이름은 새로운 우물을 파려는 이삭의 두번째 시도가 처음보다 더 악의적인 도전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며 나갈 때 원수마귀는 우리를 방해합니다. 특히 성도가 영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면 마귀는 방해합니다. 그러나 이에 굴복하면 안됩니다. 성도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며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더욱 풍성함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새로운 우물과 다툼의 종식
이삭은 거기서 옮겨 다른 곳에 우물을 팠습니다.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들의 영토라고 합법적으로 주장할 수 없는 지역으로 이전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다투지 않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칭합니다. 이는 '넓은 공간'이란 뜻으로, 이삭이 새로운 우물을 르호봇이라고 명명(命名)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가족과 가축들을 위해서 적절한 장소를 제공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였음을 암시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삭의 온유함에 따른 하나님의 축복과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으리라는 예수님의 팔복 교훈의 성취를 보게 됩니다(마 5:5). 이곳은 현재 브엘세바 남서쪽 약 30Km 지점에 위치한 엘 로케바와 동일시됩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곳에서 번성하리라고 고백합니다. 번성하다는 것은 '열매를 맺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풍성한 수확을 일컫기 보다는 숫적인 증가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삭의 외침은 블레셋인들의 갖은 훼방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양보해 온 그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최후 승리, 번영을 기뻐한 개가(凱歌)라 하겠습니다. 성도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인내하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 원수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어 더 이상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마음껏 누리게 됩니다.
2.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삭
브엘세바로 올라간 이삭
그 후 이삭은 그곳을 떠나 브엘세바로 올라갔습니다. 이삭이 또다시 브엘세바로 이주한 원인은 분명치 않으나 블레셋인들의 끊임없는 압력이 주원인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르호봇에 거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올라갔다’는 말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거나 낮은 지위에서 높은 지위로 격상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브엘세바는 실상 그랄보다 낮은 지역에 위치합니다. 따라서 이 말은 지중해 지역에서 팔레스틴 지역으로 접근될 때 통상 '올라간다'고 말하는 것에 근거한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삿 11:13). 성도는 현재의 환경에 만족하며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환경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을 향하여 보다 한 걸음 내딛어야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더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약속
그 밤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서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어진 언약이(17:7) 지금도 변함없이 유효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아브라함 자손이 된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계속 적용됩니다(롬 4:16). ‘두려워말라’ 말은 낮선 땅 브엘세바에 이주한 이삭의 마음에 일어날 수 있는 불안과 동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주신 위로와 평강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선 과거 아브라함이 가나안 왕들과 싸운 후에도 이러한 권면을 주셨습니다(15:1). 하나님은 계속하여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종’으로 일컬어진 곳은 이곳뿐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소명받은 이후 줄곧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았음을 대변해줍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이삭을 통하여 이루어져 감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성도가 연약하여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확신을 잊어갈 때 다시 말씀하시며 확신케 하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마음에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자신감을 잃어갈 때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확신해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삭
이삭은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부친의 신앙을 본받아 이삭이 하나님께 단을 쌓은 최초의 기록입니다. 여기서 '단을 쌓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공개적으로 엄숙한 제사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이는 이삭이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총과 약속에 대해 감사하였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셨던 장소를 성별하여 기념하였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는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하여 그분의 권능과 섭리와 성품을 찬양하는 공식적인 경배를 의미합니다(4:26). 이것은 이삭의 신앙이 보다 더 하나님 중심주의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는 좋은 증거입니다. 성도의 신앙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약속을 구체적으로 주실 때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경배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의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그곳에 장막을 치고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습니다. 여기서 우물은 판 것은 앞에서 샘의 근원을 탐지하며 판 것과는 달리 단지 땅을 '판 것을 말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은총으로 쉽게 물을 얻을 수 있었음을 암시합니다(32절). 유목민이 우물을 팠다는 것은 그 지역에 오랫동안 정착할 의도를 갖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실제로 이삭은 헤브론으로 이주, 그곳에서 죽기 전까지 떠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35:27).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이삭에게 시기하는 블레셋사람들의 모습은 오늘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성도들을 시기하는 사단의 추종자들을 연상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으면 아무런 걱정이 없이 하나님의 축복만을 받는 줄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가르칩니다. 성도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적인 축복과 육적인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축복을 받는 것이 단지 편안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고난도 받습니다. 아니 예수님을 믿기 전보다 더 고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축복을 받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의 원수인 마귀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옛날에는 자신을 추종하며 죄를 짓던 우리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우리로 하여금 신앙을 버리고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우리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때때로 유혹과 고난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하는 것은 우리의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롬 8:18). 장차 우리가 부활의 영광의 몸으로 하나님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광의 모습과 현재의 우리가 받는 고난은 비교대상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고난을 받아도 인내로 나아가야합니다. 그때 성도의 유익은 인내를 통하여 믿음을 견고케 하고 하늘의 소망을 더 붙잡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내해야함은 후에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입니다(히 10:36). 오늘도 우리 안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인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며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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