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 설교

[스크랩] 세례 받은 자의 축복

kaporet 2009. 1. 27. 16:00

세례 받은 자의 축복

갈라디아서 3:23-29

2009.1.25(주일예배)


들어가는 말


    2008년도 북경올림픽 때 개막식에 참석하는 각국의 선수들이 입장할 때 자신들의 나라의 상징하는 복장으로 입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각국의 선수들은 입장식에는 물론 각 시합때도 각국 선수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상징하는 유니폼으로 출전합니다. 멀리서도 우리는 그 선수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대충 알게 됩니다. 유니폼은 나라의 대표뿐만 아니라 회사의 사원이나 학교의 학생들의 복장도 됩니다. 그들의 복장을 보고 우리는 그들이 어느 회사의 사원인지, 어느 학교 학생인지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이나 소속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식이 됨을 압니다. 그러므로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분에 맞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선택하고 그의 후손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과 그들을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시고 그 표식으로서 그들에게 할례를 주었습니다. 할례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표식이었습니다. 그리고 430년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의 종에서 해방시키시고 가나안땅을 향해 갈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시고 할례를 시행할 것을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인식하며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백성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을 자랑하며 할례를 자랑하고 율법을 자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와 율법을 자랑만 했지 율법을 순종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이 율법으로 인해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하나님의 유업 즉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시대에 들어서 세례로 바뀌었습니다. 성도는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후 교회 안에 들어 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표로서 세례를 받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세례 받은 자의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1. 예수님을 믿기 전의 우리의 모습


    율법에 갇힌 자(23절)


    이스라엘백성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할례를 잘 못 이해하고 자랑하며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처럼 말하였으나,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에게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이 제시되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구약의 율법에 의하여 갇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얻는 줄 알고 열심히 율법을 행하려고 힘을 썼으나, 그들은 율법을 다 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법에 의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단지 자신의 죄를 속함받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희생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이 분명하게 복음으로 제시되었으니 더 이상 그림자와 같은 율법에 갇힐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까지 유대인들에게 사슬처럼 얽매이던 율법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자유롭게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로 주어진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율법에 의해서 그리스도께로 인도 됨(24절)


    사도는 율법이 믿음의 때까지 우리를 가두었는데 그때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었다고 말씀합니다. ‘몽학선생’은 ‘아이를 돌보는 자’, ‘어린아이에게 시중드는 자’라는 의미로 원래 6세에서 16세까지의 아이들을 돌보는 노예 신분의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몽학 선생은 가정교사로서 가정의 예법을 가르치기도 하며 아이가 학교에 오고 갈 때에 길을 인도하는 노예입니다. 몽학 선생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교사’로서의 개념으로만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즉 몽학선생은 주인의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교사이지만, 그의 신분은 어디까지나 노예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고, 주인의 아들이 성년이 되면 그의 교사로서의 임무는 끝나고 다시 주인과 노예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가르치지만, 어디까지나 참된 구원의 복음인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만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이 그리스도보다 낮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율법을 몽학 선생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시는 ‘의의 교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몽학선생이 된 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함”입니다. 즉 율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가르치시는 교사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진리가 무엇인지 가르치지만 구원얻는 길로 정확하게 인도하지 못합니다.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밖에 없습니다. 율법은 바로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게 하는 것이 그 역할인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 받은 자


    믿음이 온 후(25절)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었음으로 “믿음이 온 후로는” 더 이상 율법이 우리를 속박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는 역사적인 성육신 사건에 의하여 율법의 임무는 끝났습니다. 율법으로부터 믿음으로 옮겨지는 역사적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든 자들에게 있어서 되풀이 되어 나타나는 구체적인 사건입니다. 따라서 궁극적인 목표가 성취된 율법은 더 이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숙한 자녀들을 지배하지 못합니다(롬 7:6). 이미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율법은 더 이상 구원얻는 길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제시하는 몽학선생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진학하도록 가르치던 과외선생이, 그 학생이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합격한 후에는 더 이상 필요 없음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됨(26절)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은 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곧 '양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죄 아래 놓여 있던 자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창조주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회복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만물을 만드신 자이시며(행 17:28) 모든 인간들의 아버지가 되시나, 죄 아래 매인 인간들을 이제 죄로 부터 해방되어 회복된 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성령에 대한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14절). 왜냐하면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하시기 때문입니다(롬 8:14-16).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됨을 말씀합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27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사람들,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고 세례 받는 자가 물속에 잠겼다가 일어나는 의식입니다. 물속에 잠기는 것은 물속에 잠길 때 사람이 호흡하지 못함으로 죽게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상징합니다. 물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은 물속에서 일어날 때 다시 호흡하므로 살아나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와 같이 세례는 믿음을 통해서 이미 이루어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나타내는 외적 의식(儀式)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즉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새 생명에 연합하게 되고 이로써 삶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라는 말은 ‘세례 받은 자’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옷 입었느니라’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겉옷을 입는다’는 의미로 사용되나 바울 서신에서는 새로운 인격과 연합한 삶의 모습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곤 하였습니다(롬13:14).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입었다는 의미입니다. 예부터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것은 우리의 인격이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변화해야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살아야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세상 가운데서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따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은 세상의 정욕과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며(엡 4:22,24)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며(엡 6:11,14) 구원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사 61:10). 그리스도의 인격을 입을 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처럼 말하고 그리스도처럼 행하게 될 것입니다.


3. 세례 받은 자의 받은 축복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 됨(28절)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믿음으로 세례를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이며,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교회 안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하나가 됩니다. 즉 '믿음'을 공통분모로 하는 자들은 인종이나 신분이나 성별의 차이에 상관없이 하나이며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교회가 통일성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아마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가 혼란과 분쟁 가운데 빠져있음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는 유대주의자들의 독선적인 우월주의를 의식하였을 것입니다. 즉 하나라는 말은 구별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교회공동체 안의 성도들은 누가 더 낫고 못한 것이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합니다. 물론 믿음의 성숙도는 차이가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성도는 다툼이나 분쟁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됨(29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선언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여기서 사도바울은 성도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통해서 만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유대인이 되려면 먼저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즉 할례를 행하는 자들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으며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유업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태에 있는 갈라디아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율법이 갖는 역할과 의미를 아브라함의 약속과 견주어 설명하고 나서 지금까지의 논쟁을 결론짓습니다. 곧 진정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나 인종에 관계없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主)로 영접한 자를 가리키는 관용구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아브라함과 함께 약속의 유업을 받을 자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약속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로 옷 입을 때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옷 입은 자의 삶을 살려면, 첫째, 나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사실을 날마다 확신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생명을 받고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옛사람의 영역에 속한 일들을 버리기 위하여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신의 옛사람을 의식하며 살아야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살기를 힘써야합니다. 물론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사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질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 안에 와 계신 성령을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인격으로 이 땅에서 사셨는지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위하여 성경을 읽으면서 성령께서 깨닫게 하여주심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배웁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 안에서 새로운 인격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성령의 요구하심에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세밀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요청하십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단지 “예”라고 답하며 순종해야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변명이 소용없습니다. 우리의 환경을 운운하며 자신을 변명해보았자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연약해서 말씀에 순종하기 힘든 것을 주님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께 솔직히 고백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주님의 능력을 달라고 간구하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실 것이고 우리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옛사람의 모습이 사라지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또한 주변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증거해줄 것입니다.

출처 : 센다바중앙교회
글쓴이 : kapore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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