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는 삶 골로새서 2:8-15 2008.11.2(주일예배)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8-15) 들어가는 말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줄을 서야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버스나 전차를 타기 위해서, 영화관에 들어가기 위한 표를 사기 위해서, 또는 값이 싼 물건을 사기 위해서 줄을 섭니다. 그런데 줄을 잘 못 서서 낭패를 당한 경험을 한 두 번은 갖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서있던 줄이 나중에 알고 보니 새치기한 줄이거나 잘 못된 줄 인줄 알고서 어이없이 새로운 줄을 찾아합니다. 신앙생활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진리인줄 알고 따라다녔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거짓이요 이단이라면 얼마나 애통하겠습니까? 오늘날 이단 교회에 들어가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이단의 말이 진짜처럼 들리고 진리보다 더 진리같이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들의 말이 거짓임이 밝혀질 때 낭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골로새교회에 편지하면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을 것을 권고한 뒤, 골로새교회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좇고 있는지 점검하도록 합니다. 그리스도를 좇지 아니하면 결국 파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좇을 때는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1. 그리스도를 좇지 않는 자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 중에 그리스도를 좇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진리의 말씀인 복음과 대조 개념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골로새 교인들을 거짓 교훈으로 이탈시키려 하는 영지주의 철학을 가리킵니다. '노략할까'라는 말은 본래 전쟁에서 포로로 사로잡아 그들을 노략물로 취하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헛된 속임수와 철학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나가 죄의 노예로 전락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대해 두 가지로 정의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입니다. 사람의 유전을 좇는 자 ‘사람의 유전’은 골로새 교인들이 에바브라에게서 전해받은 유전인 사도적 전승(6절;1:7)과 정반대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인간들이 꾸며낸 거짓 교훈을 가리킵니다(막 7:8;벧전 1:18).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을 왜곡하여 해석하고 그 해석이 진리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난 해석들은 다 헛된 사람의 유전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좇는 삶을 살려고 한다면 마땅히 그런 사람의 유전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경말씀보다 더 권위를 가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누구도 성경 말씀이상의 권위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초등학문을 좇는 자 ‘세상의 초등학문’은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영들과 마귀 혹은 종교적 지식의 미숙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갈 4:3)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거짓 교훈에서 비롯된 '천사 숭배'와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18절). 거짓 교사들이 골로새 교인들을 미혹한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거짓 영과 같은 것을 섬기는 데서 비롯된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서도 그리스도를 좇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자들이 이단에 빠져서 고통을 당하며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해도 나오지 못하고 고통 속에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이 이단에 빠져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 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국은 파멸입니다. 이단은 반드시 끝이 다릅니다. 처음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끝에 가서는 본색이 드러나는데 결국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강요합니다. 돈과 육체의 희생과 시간을 요구합니다. 2. 그리스도의 충만하심 육체에 거한 그리스도의 충만(9절)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주이신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신성의 모든 충만이 그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그분 안에 있는 자는 모두가 충만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고양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본질로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질적이고 적절한 형상임을 시사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 그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십니다(1:19). 그리스도의 모든 신성의 충만함이 육체로 거하십니다. 여기서 ‘거하시고’는 현재 시상으로서 '계속적으로 거주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성의 충만이 부활하시고 고양된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육체로'는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지 않았다는 가현설(假現設)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분명한 반박으로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지니고 오셨음을 나타냅니다(요 1:1,14).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10절) 바울은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함에 참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신성의 충만함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즉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함을 소유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성취됩니다(요 1:16;엡 3:19).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어떤 것 즉 골로새 교인들이 당면한 거짓 교사들의 철학이나 모세의 율법 의식이나 이방인들이 섬기는 천사 숭배 같은 것들을 채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성의 충만하신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과 더불어 연합하시며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기”때문입니다. 바울은 당시 골로새 지역에서 천사 숭배를 하던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말씀합니다. '정사와 권세'는 당시 골로새 교회에 존재했던 거짓 교사들이 주장한 천사 계급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는 이런 천사들의 '머리'가 되십니다. '머리'는 '통치'나 '다스림'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은 물론 천사들까지도 다스리시는 권세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정사와 권세들'까지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1:16). 3.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자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자(11절)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그리스도의 충만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할례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할례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에 참여합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간에 맺은 언약을 나타내는 외적 표징입니다(창 17:10-14, 23-27; 출 4:25; 12:44-48; 레 12:3). 구약에서 '육체적 할례'가 '마음의 할례'로 전이되어 윤리적 요소를 강조하였으나(신 10:16;렘 4:4;겔 44:7) '마음의 할례'가 '육체적 할례'를 대신하지 않았습니다. 바울도 본절에서 '손으로 행한 할례'인 '육체적 할례' 대신에 '손으로 행하지 않는 할례' 곧 '영적 할례'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바울은 '영적 할례'를 두 가지로 정의합니다. 첫째, “육적 몸을 벗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례와 관련된 것으로 세례를 통해 옛 본성 또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고 의미합니다(3:9;롬 6:6;7:24;갈 3:27). 성도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면서 세례를 받을 때 물에 잠기게 되는데, 이것은 호흡이 멈추는 것으로 죽음을 상징합니다. 즉 물속에 잠길 때 죽는 것처럼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할례”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할례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아기 때 받으신 할례는 예표에 불과하며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할례인 자신의 죽음심과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적 할례를 시사합니다. 즉 성도는 할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함께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의 생명인 부활의 생명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은 성도(12절) 골로새 교인들이 경험한 세례는 단순한 의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을 동반한 것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사실을 확신 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갖고 있었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게 되며 죄의 종노릇에서 풀려나게 됩니다(롬 6:3). 그리고 성도는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다시 살리신 사실을 믿음으로 자신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 새 사람을 입으며 새 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롬 6:4,11).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부활 사건이 미래에 일어날 일로 언급되었으나(3:1;엡 2:6) 본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인의 부활이 과거에 일어난 일이며 현재 경험하고 있는 일임을 시사합니다. 4.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13절) 하나님은 “우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기 이전의 인간은 죽은 상태입니다. 이 죽음은 ‘범죄와 무할례’로 말미암은 것으로 ‘범죄’는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타락의 길에 들어선 것을 의미하며(히 6:6), '무할례'는 골로새 교인들이 과거에 이방인으로서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던 상태였음을 말씀합니다. 이렇듯 골로새 교인들은 과거에 영적으로 죽은 인간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과거 이방인으로서 무할례자였던 골로새 교인들은 이제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11절)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으로 진정한 할례당이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현재 새 생명을 누리고 있습니다(12절). 하나님께서 성도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실 때,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사하시고'는 '카리스'('은혜')에서 파생한 것으로 '은혜로 인정해주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으로 과거의 죄악이 사해졌습니다. 이러한 속죄는 하나님께서 거저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너희'에서 '우리'로의 인칭 대명사 변화는 골로새 교인과 같이 유대인들은 물론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게서 속죄 받았음을 말씀합니다.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심(14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증서'는 문자적으로 '손으로 쓴 문서'를 뜻하는 것으로 고소장, 자술서, 채무증서 등 세 가지로 해석됩니다. 여기서 '의문에 쓴 증서'는 '규례나 율법적인 계명을 쓴 증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율법'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범죄함으로 타락한 인간의 죄를 고발하고 죄의 결과를 규정함으로 대가를 치르어 형벌을 받아야 함을 선고하여서 인간을 공격합니다(롬 3:20).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고발하고 괴롭히는 율법을 무효화시키셨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폐지를 두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도말하시고'는 문자적으로 '문질러서 지우다'라는 의미로 증서에 기록된 내용들을 모두 지우고 새롭게 출발함을 뜻합니다. 둘째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는 문자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으사 제하여 버리시고'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율법을 제하신 효력이 지속적인 것임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율법이 십자가에 못박힘을 의미하여 율법의 완전한 폐지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며 율법의 제약이나 율법의 고발에 제한받지 않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심(15절) 하나님께서 의문에 쓴 증서를 십자가에 못 박으실 뿐만 아니라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리셨습니다.” '정사와 권세'는 적대적인 초자연적 존재들 즉 악한 천사들을 의미합니다(10절;1:16;엡 6:12). 여기서 '벗어 버려'는 하나님께서 정사와 권세들의 세력을 쳐서 완전히 무장 해제 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정사와 권세를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드러내시고’는 ‘본보기로 보이다’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정사와 권세들의 진정한 특성 즉 정체를 보여주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패배당해 무장 해제된 정사와 권세의 모습을 온 세상에 드러냄으로 수치를 당하게 하심을 시사합니다. '승리하셨느니라'는 당시에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로마 거리를 행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적대 세력인 정사와 권세를 완전히 패배시켰음을 암시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정사와 권세들에 대하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상에서 승리를 거둠으로 승리자의 자리에 동참하게 됩니다. 5. 적용: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는 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리스도의 할례에 참여한 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에 동참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할례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은 것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은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이제 옛 모습의 육적 생활을 벗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이제 그리스도의 승리를 확신함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그 승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체험한 자는 자유합니다. 과거의 죄로부터 자유하고 육체의 정욕으로부터 자유하고 이 세상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자유합니다. 성도의 삶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놓으신 승리를 만끽하며 살게 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가진 성도는 이제 이 땅의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늘의 것을 바랍니다. 이 땅의 것은 없어질 것이여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것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2)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로지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을 바라볼 것을 말씀합니다. 비록 이 땅에서 육체로 살고 있으나 우리의 영은 날마다 하늘의 것으로 풍성하게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 3:20)고 말씀합니다. 비록 육체의 연약함과 물질의 부족함으로 일시적으로 어려움이 있어도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그리스도의 승리를 자신의 승리로 확신하는 성도에게는 그러한 어려움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따라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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