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위하여 심는 사람 갈라디아서 6:6-10 2008.8.31(주일예배) 들어가는 말 농부들이 씨를 뿌리는 것은 열매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농부가 자신이 뿌린 씨에 대해서 아무런 열매도 얻지 못한다면 더 이상 씨를 뿌리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NGO활동 중인 일본인 청년이 현지 테러단체에 의해서 살해되었습니다. 이토 가즈야(伊藤和也)라는 이 청년은 농업고교와 전문대를 나와서 자신의 농업 기술로 아프카니스탄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될 꿈을 안고 그곳에 가서 활동하며 척박한 땅에 우물을 파서 물을 공급하여 농사를 가능하게 함으로서 그 지역에 차밭을 만드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뼈를 묻어도 좋다고 할 만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다 이루기 전에 운명을 달리 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위하여 심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라를 위하여 심습니다. 이런 사람은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족을 위하여 심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을 위하여 헌신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오직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심고, 돈을 위하여 심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신으로 섬기기 때문에 결국 파멸로 빠집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심는가에 따라서 얻는 결과가 전혀 다른 것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도 자신이 무엇을 위하여 심느냐에 따라서 그 열매가 다른 것을 알게 됩니다. 1. 심는대로 거두리라(6-8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6-8)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으로 함께 하라(6절) 사도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서로 사랑으로 섬길 것을 말하고 이를 위해서는 성령으로 사는 삶을 살아야한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사는 것은 성령으로 행하는 것이고 성령으로 행하여야 할 것 가운데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서로 짐을 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어서 서로 짐을 지는 삶과 연관해서 사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심는 삶을 설명합니다. 성도의 삶은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서로 섬기며 성령을 위하여 심어야할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예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심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이 땅을 위하여 심는 것과는 달리,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심어야합니다. 그런데 성도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심을 때 먼저 생각해야하는 것은, “가르심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치심을 받습니다. 성도가 가르침을 받을 때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통하여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말씀을 가르침을 받아야합니다. 이것은 성도가 한번 말씀을 듣고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말씀을 가르침을 받아서 성도 안에 말씀이 역사할 때까지 배워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인가 심을 것을 생각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가 말씀을 가르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웁니다. 따라서 성도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을 배울 때 가르치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받지 못하면 자칫 그 말씀은 지식으로 흘러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을 받는 성도는 가르치는 자와 항상 마음을 같이 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말씀을 배울 때만이 아니고 성도가 받는 은혜와 하나님의 축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가르침을 받는 자’는 어떤 특정한 단체나 조직 속에 있는 자들을 가리키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교훈 아래 있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즉 말씀을 배우는 것은 어떤 특정 그룹만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도라면 누구나 말씀을 배워야함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하여서 성도를 믿음이 강건하게 서도록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배우지 않는 사람은 그 믿음이 자랄 수 없고 결국 생명력까지 잃어버려서 나중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나가는 경우도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들의 신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듯이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의 신분도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이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로서 다른 서신서에서는 ‘교사’라고 표현되었습니다(고전 12:28;엡 4:11). 그러나 본서가 다른 서신들보다 일찍 기록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볼 때 '가르치는 자'는 교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임명된 직분자들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본절에서 '가르치는 자'들은 보다 초기의 직분자들로서 바울을 포함한 사도들과 바나바와 디도같은 사역자들과 교회가 임명한 장로들을(행 14:23) 가리킵니다. 이들은 '교사'들과는 달리한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전도 여행자들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가르침을 받는 자가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배우는 자에게 영적인 은혜가 임할 때 간증을 통하여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과 그 은혜를 나누며, 육적으로 무슨 좋은 것이 있으면 말씀을 배우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에게 그것을 나누며 즐거워할 것을 말씀합니다. 즉 말씀을 배우는 자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을 통하여 영적인 은혜를 받으므로 자신들의 좋은 것으로 나눌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한국교회 성도들이 목사님들을 잘 섬기는 것과 연관됩니다. 성도들이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목사님들을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은 영적인 은혜를 받은 성도가 육적인 것으로 목사님과 좋은 것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심는대로 거둠(7절) 그러면 ‘모든 좋은 것으로 함께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성도가 무엇을 위해서 심을 때 주의할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속이다'라는 말은 '길을 잃게 하다', '진리에서 벗어나도록 하다', '잘못되게 유인하다','미혹하다' 등을 뜻하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어떤 유혹에 미혹되어 믿음을 잃게 되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똑똑한 척하고 적당하게 하고자 할 때 그것이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어 우리의 심령상태를 제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결국 적당하게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을 제일 잘 아시는 분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적당히 하면 하나님을 적당히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면서 우리의 적당주의를 경계합니다. '만홀히 여김'은 '바보 취급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의 그릇된 본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의하여 저질러진 행위는 결국 하나님을 모독하거나 등한시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여기서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꿰뚫어 보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시 139:1-6;겔 11:5)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공의로운 심판을 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본절에서 바울은 율법을 지킨다고 자부하며 할례를 행하는 자들이 오히려 진정한 율법의 정신인 사랑과 선행을 무시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는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것은 인간의 행위를 자연 법칙에 비유한 것입니다. 이렇듯 행위와 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씨 뿌리고 거두는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혤라 문화와 성경에서 자주 발견됩니다(마 7:16;막 4:26;눅 19:21;고후 9:6). 바울은 고린도후서 9:6에서 적게 심는 것과 많이 심는 것의 차이에 대하여 설명하였으나 본절에서는 심는 것과 거두는 것의 '질'에 대하여 논합니다. '심는 것'은 인간이 지속적으로 행하는 각각의 행위를 말합니다. 또한 인간의 모든 행위가 미래의 결과, 곧 하나님의 심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그것을 어떻게 실생활에 실천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가 미래의 심판대 앞에서 어떠한 결과를 거둘 것이냐 하는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8절) 심고 거두는 비유는 구체적으로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일반적인 법칙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경우에 적용됩니다. 심는다는 것은 열매와 관련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열매를 바라며 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무엇인가 열심을 내면 그것은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고 육체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무엇인가 행했다면 그것은 성령을 위하여 심은 것이요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며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살아야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성령을 위해서 심어야합니다. 성도가 세상끝의 추수를 바라보며 살아가야합니다. 타락한 육체의 본성을 따라 규모없이 생활한다면 육체적 부패와 도덕적 타락을 초래하게 되며 영적인 성품들을 잃게 될 것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자기의 삶을 성령에게 맡기고 성령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롬 8:14). 이러한 삶은 인간 내면세계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는 육체적인 생명전체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부활 후에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영화(榮華)로운 생명을 의미합니다. 2. 심는 자의 자세(9-10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갈 6:9-10)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9절) ‘심는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설명하면서 육체를 위해 심을 것인지 성령을 위해서 심을 것인지 결단을 촉구한 후에 사도바울은 성령을 위해서 심는 자의 자세를 설명합니다. 성령으로 심는 자는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 것’입니다. 이 구절은 마지막 추수의 때가 지연된다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임박한 종말을 눈앞에 두고는 누구든지 긴장하게 마련이지만, 간사한 인간은 이 '지연'으로 인하여 스스로 피곤해 하며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선을 행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할 것은 ‘때가 이르매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으로 행할 때 당장 열매가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계속하여 선을 행하여 갈 때 언젠가 주님의 때에 열매를 거둘 것이고 종말에는 주님 앞에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회 있는 대로 착한 일을 행함(10절)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 것”입니다. 성도의 ‘심고 거두는 삶의 원리’를 들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이제부터 해야 할 것은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믿음의 가정들에게 더욱 할 것’입니다. ‘기회 있는 대로’는 '기회가 있는 동안'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한 개인의 생애 가운데 제한되어 있는 기회의 제한성을 나타냅니다. 즉 우리에게 언제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 안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섬기며 착한 일을 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착한 일’은 9절의 ‘선’대신에 쓰여졌습니다. 선(善)이 '윤리적인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라면, 착한 일은 철저하게 '이웃과의 관계'속에서 이해되는 단어입니다. 착한 일은 선한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집합적 의미로 해석해야합니다. 이렇게 할 때 착한 일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베푸는 자비와 동정심을 가리킵니다. 착한 일은 일방적으로 베푸는 선행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성도는 착한 일을 모든 사람에게 행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 것’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믿는 자들에게 특별히 잘해주라고 권면하는 것은 갈라디아 교인들속에 있는 거짓 교사들과 유대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가정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무리들은 신앙 공동체의 불가분리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성도들을 하나의 대가족 단위로 파악한 것은 성도들을 '이웃'보다 긴밀한 '형제'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3.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 성령이 원하시는대로 행하는 것 우리는 성령을 위하여 심어야합니다. 먼저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은 성령께서 원하시는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욕심을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순종하여 하는 것입니다(갈 5:16). 아무리 선을 행하고 착한 일을 행한다고 하더라고 그 목적이 자신의 명예를 얻고자하면서 행할 때 그것은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끔 주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주님의 마음과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대로 하고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자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자 봉사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의도가 없었어도 일을 하면서 점점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정말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고 있는지 점검해야만 합니다. 자신 안에 헛된 영광을 구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 둘째,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심는 것이고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시고자하는 것을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시고자하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이며 긍휼과 사랑의 마음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하면서 6절부터 8절 사이에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도 스스로 낮아지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의 그리스도의 겸손의 마음입니다. 히브리서 4:15에는 우리 주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분으로 소개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낮아지심과 같이 우리를 긍휼하심으로 도우심과 같이 우리가 겸손과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심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령을 위해 심는 자로서 살기 위해서 성령의 원하시는 대로 행하며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하여야합니다. 그런데 인간인 우리가 성령의 원하시는 대로 행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당신의 원하시는 것을 명하시지만 우리의 육체는 이를 거절할 때가 많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고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해야지 라고 결심해도 어느 틈인지 자신도 모르게 우리의 욕심의 마음을 따라서 행동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원하시는 대로 행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매일 성령이 원하시는 것을 말씀을 통하여 깨달으면 그 중에 한 가지라도 실천하려고 마음에 결심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할 때 자신의 마음이 아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려고 자신의 양심에 호소합니다. 즉 성령께서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꿔주시기를 기도하면서 행합니다.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엄하게 체크합니다. 실패했으면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솔직히 고백하고 다시한번 기회를 요청하고 다시 도전합니다. 이와같이 자신이 성령의 원하시는 대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적으로 훈련을 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어서 실제로 성령의 원하시는 대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
'생명의 말씀 -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새사람을 입은 자 (0) | 2008.09.14 |
---|---|
[스크랩] 복음을 다시 들어야할 이유 (0) | 2008.09.07 |
[스크랩] 세상을 이기는 지혜 (0) | 2008.08.29 |
[스크랩] 죄를 이기는 성도의 삶 (0) | 2008.08.29 |
[스크랩] 성도의 영적 예배 (0) | 2008.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