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 설교

[스크랩]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

kaporet 2008. 4. 28. 12:29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

요한복음 4:19-26

2008.4.27(주일예배)


들어가는 말


    성경의 인물 중에서 예배를 잘 드리므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그대로 성취된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나이 75세나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그는 발붙일만한 땅을 얻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자 그는 자신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단을 쌓았다는 말은 그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함으로 그의 평생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은 100세나 되어 얻은 아들 이삭에게 이어졌고 이삭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축복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또 이삭의 믿음은 야곱에게 이어졌고 야곱도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430년 후에 그의 후손들인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린 사람들의 축복받은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이 말씀은 성도들이 예배를 잘 드림으로 축복을 받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1. 예배란 무엇인가?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매주일 마다 주일예배를 드리고 수요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기도회로 모입니다. 기도회도 형식은 예배의 형식으로 드리고 기도회를 계속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교회의 공적인 모임은 예배의 형식으로 모인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들이 예배에 대해서 잘 모른채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의 형식이나 방법은 교회를 다니면서 조금씩 배우지만 예배의 본질을 몰라서 실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예배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배의 개념을 살펴보면, 예배란 ‘엎드려 절하다’ ‘섬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주일날 드리는 공예배는 유형교회가 함께 모여서 함께 하나님께 절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섬기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은 먼저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을 인식하면서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분이시니까 우리의 경배를 받아 마땅하십니다.”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우리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무릎을 꿇어서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하는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계4:11;5:9-12). 즉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속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요?


2.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19-21)


    본문의 내용의 시작은 요한복음 4장3절로부터 시작합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우물가에서 예수님께서 한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면서 시작한 대화는 점점 깊은 수준으로 가면서 예수님께서 “내가 주는 물은 생명의 물, 그것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물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얻을 수 있기를 구한 여인은 예수님께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는 말에 자기의 남편이 없음을 말하고, 예수께서 “네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배에 관한 질문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과거를 아신 예수님을 선지자로 이해하면서 예배에 관해 질문합니다. 인간은 초자연(하나님)을 접촉하기 전에는 진정한 종교심과 영적 사색을 가져보지 못합니다. 그 여인은 이제부터 정상적으로 예수님에게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여인은 종교에 대해서 생각할 때 먼저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여야 할 것을 본래부터 주장하여왔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한 곳을 정하여 예배할 것을 가르쳤고(신 12:5, 16:2, 26:2) 이것을 후대에 다윗에 의해서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막과 법궤를 옮기고 나서 예루살렘이 예배의 처소로서 정하여진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음으로서 예루살렘은 예배의 처소로서 확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할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앗수르에 의해 멸망되었을 때 앗수르 사람들은 사마리아에 이방인들이 이주하여 살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방인들과 이스라엘사람들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이들 사마리아 사람들은 게르심산에서 예배하여야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전을 게르심산에 세웠습니다(400 B.C). 이것은 아마도 유대인들이 스룹바벨 성전을 지을 때 사마리아인들이 참여하려한 것을 반대한 유대인에 대해서 반발하여 지은 것 같습니다. 그 뒤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께 예배할 때


    그 여인의 예배장소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신약적 예배를 보여 주시므로 문제 해결을 주십니다. 즉 이제부터는 게르심산이니 예루살렘이니 할 것 없고, 오직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영적 예배를 드릴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예배할 때"란 말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신약적 예배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대하는 예배는 어떤 장소의 제재를 받는 외부적 예배가 아니고, 성령을 받은 자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의식하고 부르면서 드리는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때까지 유대인들이나 사마리아인들이 예배의 장소나 형식에 치우쳐서 예배를 드리는 본질을 잊어버렸으나 이제부터는 예배의 장소나 형식보다 더 중요한 예배의 본질을 알고 예배를 드려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배가 하나님이 원하시고 찾으시는 예배인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요 4:22-26)


    알지 못하는 예배와 아는 예배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찾으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 5경만 믿고 다른 선지서들을 버렸으니만큼,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에 있어서 잘못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구약을 전부 가졌으니 만큼 진정한 종교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받아 보수하였고 메시야(그리스도)도 그들 중에서 나오실 것인 만큼,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고 말씀하시게 되었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예배를 드리는 대상이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예배를 드리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배의 형식은 유대인들을 흉내 내서 예배를 드렸으나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채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지 않는 자들도 자기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섬긴다고 했을 때 그 예배하는 행위에 대해 아주 깊이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종교는 예배할 때 정성을 다하지만 자기의 삶과는 관련이 별로 없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예배에 심각한 잘못은 예배의 대상이 잘못되어있고, 그 예배 행위와 삶을 분리시킨다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 때


    예수님은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드리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게 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여기서 "신령으로 예배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위의 21절에 벌써 말한 "아버지께 예배함"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어떤 지방, 어떤 민족이 독점적으로 소유할 신(神)이 아니십니다. 어디서든지 누구든지, 성령으로 거듭 난 자이면 그를 아버지로 섬길 수 있습니다. 거듭 난 자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벧전 1:23). 사람의 거듭난 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성경 말씀을 듣기 좋아하며, 읽기 좋아하며, 순종하기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가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가 영적인 자녀로서 영적인 아버지에게 예배하게 되는데, 그것이 신령한 예배입니다. 또한 ‘신령으로’ 라는 말은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구속의 공로로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야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내 영으로’ 존재 전체로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만 예배 장소에 참석하고 마음은 딴 곳에 있다면 그 사람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습니다. 온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며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배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진정"이란 것은, 예수님이 22절에 말씀하신 이스라엘의 "아는 것"(22절 하반) 곧, 구약적 계시가 신약 시대에 성취된 형태입니다. 이것이 유대인에게서 난 구원 사건, 즉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에 근거한 예배가 "진정"으로(진리로)예배함입니다. 그것은, 실상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메시야가 나시리라는 약속의 성취를 내포한 구원사적 진리에 순종하고 드리는 예배입니다. 참된 예배는 결코 사람들의 추측이나 깨달음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啓示)에 근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이란 말은 "진리"를 의미하는데,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메시야 약속)이 성취된 사실, 곧,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었습니다(고후 1:20).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신앙적 예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적 예배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히브리서 11:6에 말하기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진정으로’ 라는 말은 ‘진리 안에서 ’라는 의미로 성경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가르침에 따라서 예배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때가 오는데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어 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한 자들이 예배하는 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때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드리는 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할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자가 적당하게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몸은 예배하는 장소에 나왔으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면 이것은 신령으로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할 때 온 마음을 다하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고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대로 우리에게도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면 가르치시리라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 깨달으며,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메시야를 대망하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신명기 18:15-18에 있는 모세의 예언에 기준하여, 사마리아인들도 메시야를 대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 5경만을 성경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대해서 막연하나마 기대하면서 그리스도가 오시면 분명하게 하나님께 드릴 온전한 예배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실 것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라고 알려 주십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이것은 사마리아 여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그대로 나타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심리가 이제 진정한 종교로 바로 움직이는 것을 보시고 그 여인의 믿음을 도와주시려고 당신이 메시야이신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여인은 그 순간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바로 마을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참 예배를 드리는 삶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 즉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어떠한 모습으로 나아가야할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예배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같이 드리기로 한 것이니까 함께 드리는 일에 신경을 써야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정말 예배와 관련된 사람다운 삶이 되어야합니다. 기본적인 원리는 ‘예배와 삶이 하나가 되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로마서 12:1).

    둘째,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리는 자들은 예배시간마다 모이기를 힘써서 예배를 드립니다. 자신의 환경을 핑계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예배시간에 모이기를 힘써야합니다.

    셋째,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드리는 것이며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줄로 믿고 드리는 예배입니다.

    넷째,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시간마다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감사에는 마음만으로도 표시 되지만 우리의 마음을 담은 예물이 귀중합니다.

    다섯째, 우리의 감사를 담은 예물을 드리는 헌금은 구속받은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속해 주신 것에 감사하는 표로 드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구속을 근거로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뜻으로 움직여 나가기를 구하며 드려야 합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실 것을 확신하고 기원하는 것입니다. 매주일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매일의 삶을 주님께 드린다는 의식을 가지고 상징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한 주일을 주님의 것으로 나를 드린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헌금을 했을 때 복 받는 기원을 가지고 드리면 안됩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에 대한 감사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나가는 말


    우리가 하나님께 참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평강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롬 14:17). 그것이 이 땅에서 맛보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출처 : 센다바중앙교회
글쓴이 : kapore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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