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를 드린 아브라함
창세기 14:17-24
2007.10.3(수요예배)
들어가는 말
아브라함은 그돌라오멜과 그 동맹왕들이 소돔성을 치고 그곳 사람을 잡아가고 재물을 가지고 갔다는 소식과 함께 포로들 속에 조카 롯이 포함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머물고 있던 지역의 마므레와 그 형제들을 동맹으로 하여 자신의 집에서 훈련시킨 군사들 318명을 데리고 추격하여 그돌라오멜 동맹군을 야밤에 습격하여 무찌르고 포로와 재물을 다시 빼앗아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소돔왕이 나와서 아브라함을 맞이하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영접하였습니다.
1.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과 십일조를 드린 아브라함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17-20절)
아브라함을 맞이하는 소돔왕
아브라함이 소돔성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던 그돌라오멜과 그 동맹왕을 쳐서 파하고 나서 빼앗겼던 재물과 포로로 잡혀갔던 롯과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올 때 소돔왕이 사웨골짜기 에 나와서 영접하였습니다. 소돔왕이 아브라함을 영접하러 나온 것은 예기치 않았던 아브라함의 도움에 감사를 표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을 영접하기 위해서 아무런 준비가 없었습니다. 소돔왕은 아브라함의 도움에 감사를 표하기는 해도 그를 높이는 마음이 아니라 왕으로서 신하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맞이하는 기분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돔왕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포로를 데리고 빼앗겼던 제물을 되찾아서 돌아오는 아브라함에게 전혀 존경심이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가 없이 빈손으로 나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맞이하는 살렘왕 멜기세덱
그리고 아브라함을 영접한 또 다른 사람은 살렘왕 멜기세덱이었습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살렘'을 갈릴리 바다 옆 스키토폴리스부근의 한 성읍으로 보기도 하나 아마르나 토판, 시76:2 등을 참고할 때 '살렘'은 예루살렘의 고대 명칭임에 분명합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자 제사장으로서 '의(義)의 왕'이란 뜻인데, 그가 정확히 누구였는지에 대하여서는 견해가 분분하지만 가장 타당한 견해는 문자 그대로 그를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순수하고 올바른 신앙을 가진 가나안의 왕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떡과 포도주는 일반적으로 왕의 음식중의 일부입니다. 이것은 멜기세덱이 전쟁에서 승리한 아브라함을 왕의 대우로서 영접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떡과 포도주는 지금 전쟁에서 지친 병사들에게 생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멜기세덱이 이러한 음식물을 가져 온 것은 아브라함이 그 땅의 평화와 자유, 재산 등을 회복시켜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감사는 그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은혜를 입은 자가 당연히 행해야 할 덕목입니다(살전 5:18). 멜게세덱의 이러한 행동은 소돔왕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멜기세덱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고 소개합니다. 멜기세덱이 왕과 제사장이란 이중신분을 갖고 있었던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도 미디안족의 통치자이자 제사장이었습니다(출 2:16;3:1). 그러나 유대인들의 제사 제도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왕과 제사장이란 이중 직무입니다. 당시의 부패상 가운데서도 하나님 경외하며 의와 평강으로 백성을 다스린 태도, 시작과 끝, 출생과 족보가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진 그의 신비적 출현 등은 아주 특이한 요소로 예수그리스도의 특성과 유사한데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강한 영감을 받아 그를 신약 시대 예수를 대표하는 자로 언급하였습니다(히 7:11-17).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멜기세덱
멜기세덱은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에게 축복합니다.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천지의 주재’는 하나님께서 천지의 창조자시며 동시에 역사의 주관자요 만물의 소유자이심을 고백하는 말입니다(마 11:25;행 17:24).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강한 능력과 초월성, 거룩성, 완전성을 강조하는 명칭으로(시 57:2;단 3:26) 모든 축복과 승리(20절)는 하나님께로부터 연유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말입니다(출 17:5;잠 10:22) 멜기세덱은 자신이 살렘왕으로서 가나안 지방의 평화를 위해서 전쟁에서 수고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빌고 있습니다. 이것은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라고 말합니다. 멜기세덱은 자신이 하나님께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것을 빌음과 동시에 아브라함이 그에 상응하는 믿음을 보일 것을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믿음으로 그의 대적들을 자신의 손에 붙이신 하나님을 찬양해야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때 그에 따른 마땅한 감사와 하나님께 돌리는 찬양이 있어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도 그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없음으로 계속되는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 대해서 믿음으로 반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하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시어 대신 죽게 하시었는데도 이에 대해서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자들을 언젠가 심판하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얻은 성도들도 믿음으로 날마다 감사치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실 수 없습니다.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하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이 자신을 축복하는 말을 듣자 자신이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 행위는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분을 인정하는 것이자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위입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이 섬기는 그 하나님이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먼저 감사했습니다. 더구나 그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셔서 승리하게 된 것을 감사하며 멜기세덱이 고백하는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시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즉 멜기세덱이 말한 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그가 전쟁에서 취득한 전리품중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림으로서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십분 일(1/10)은 십일조를 가리키는데 십일조는 본래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이나 소득 중 십분 일을 바치는 것으로 셈족 이외의 문화권에서도 널리 시행되던 제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훗날 모세율법으로 성문화(레 27:30-33;민 18:21-32)되기 이전에 본절에서처럼 시행되었다는 점은 이것이 어떤 형식에 얽매여 억지로 수행해야 하는 규례가 아니라 은혜를 입은 자가 행하여야 할 자발적인 감사의 표시이며 신앙고백임을 일깨워줍니다.
십일조의 정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에 대해서 구약의 율법에 의해서 정해진 것이므로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율법을 완성하신 후에는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지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축복하는 멜기세덱의 말을 듣고서 그가 섬기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승리를 주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십일조를 드린 것처럼, 신약의 성도들도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어 자신의 생업을 통하여 소득을 얻게 하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려야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생업을 통하여 소득을 얻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소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소득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신 소득의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따라서 십일조는 세금도 아니고 율법도 아니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고백이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또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실 때도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에게 십일조를 드리도록 하시면서 결코 그것을 강요하신 사실이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에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매년 드리는 십일조의 사용은 하나님의 성막에서 일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다른 지파와는 달리 기업을 얻지 못하게 하셨기에 그들의 생계를 위하여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매3년마다 드리는 십일조는 이스라엘공동체의 가나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과 성막을 위하여 사용케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오늘날 교회공동체를 위하여 수고하는 사역자들의 생계비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와 교회공동체의 예배처소인 예배당건물의 관리 및 유지와 성도들의 교육을 위하여 사용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일부 교회 목사들에 의해서 잘못 사용된다고 해서 십일조 자체를 드려야하느냐 마느냐를 논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2. 소돔왕의 제안을 거절하는 아브라함
“소돔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아브람이 소돔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오직 소년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찌니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21-24절)
소돔왕의 제안
소돔왕은 교만하게 아브라함에게 제안합니다.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물품을 취하라고 하는 것은 전투에서 노획한 전리품에 대하여 정복자의 권리를 인정해 주던 고대 관습에 따른 조처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소돔왕은 한가지 실수를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얻은 전리품은 아브라함이 임의로 취해서 처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임의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소돔왕이 마치 자신이 그 전리품의 처분권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고 말하는 것은 소돔왕이 아브라함을 통치할 수 있는 신하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실 아브라함과 소돔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에 살았고 전쟁에 포로로 함께 끌려갔다는 것뿐입니다. 더구나 소돔왕은 그돌라오멜과의 전투에서 패한 왕입니다. 당시에는 전투에서 패한 왕은 수치를 느끼고 자결하든지 적의 포로가 되든지 할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므로 왕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덱도 그를 왕의 대우로서 영접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소돔왕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왕이나 된 것처럼 명령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사람을 취하든지 물품을 취하든지 어느 것도 아브라함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소돔왕의 제안을 거절한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소돔왕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손을 들어 맹세하는 것’은 신적(神的)인 엄숙한 서약을 할 때 취하던 히브리인들의 일반적 행동 양식(신 32:40;단 12:7;계 10:5,6)으로 하늘을 향해 오른손 또는 양손을 치켜드는 것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맹세코 소돔왕이 말하는 것처럼 물품을 취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설령 아브라함이 전리품을 취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당한 그의 권리를 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를 거절한 것은 이기적인 롯의 태도와는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13:10,11). 이처럼 아브라함이 재물에 유념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삶을 지배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소돔왕의 하사품을 받았더라면 그가 군사를 일으킨 순수한 동기마저 희석될 우려가 있었고 동시에 향후 행동에 있어서도 소돔 왕으로부터 절대적인 독립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셨다는 신앙고백이 무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소돔왕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태도는 신앙인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보여야할 진정한 믿음의 태도입니다. 신앙인은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을 높이는 일에만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그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의 물질에 대하여 하나님이 주신 것만을 취한다는 태도입니다. 자신이 마땅히 가져도 되는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재물만을 얻으려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모습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대신에 자신의 동맹으로 자신과 함께 싸웠던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과 소년들이 먹은 것을 제한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태도는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다른 협력자(13절)들의 몫을 보장해 주기 위한 조처입니다. 아브라함은 비록 자신은 하나님만을 높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만을 갖겠다는 신앙으로 소돔왕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자신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던 동맹자들에게는 마땅히 받아야할 보상을 확보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잘못은 자신의 신앙 양심을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신앙인이 취할 태도는 아브람처럼 타인의 정당한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주며, 믿음이 약한 형제를 자신의 신앙척도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롬 14:1-3; 고전 8:9; 9:22,23).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브라함은 자신을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감사함으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즉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으로 자신이 승리하게 되었다는 신앙고백으로 드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십일조를 드린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삶의 십일조를 드려야할 것입니다. 단순히 소득의 십일조뿐만 아니라 우리의 시간의 십분의 일을 드려서 매일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일에 사용하며, 매주일 예배와 수요예배를 드리는 일과 기도회 등을 위해서 사용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건강한 몸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몸을 드려서 봉사하는 일에도 힘써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사는 성도의 진정한 예배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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