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 설교

[스크랩]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창 13:14-18)

kaporet 2007. 9. 29. 16:53
 

2007.9.19(수요예배)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

창세기 13:14-18


들어가는 말


    사람은 자신이 의지하던 것이 갑자기 사라지게 될 때 허전하게 됩니다. 특별히 믿었던 사람이 자신을 떠나면 배신감까지 느낍니다. 그리고 또다른 의지할만한 대상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떠난 후 허탈감이 들었을 것입니다. 땅이 비좁아서 자신이 롯에게 자기를 떠나라고 말은 했지만 막상 롯이 떠난 자리는 너무 커서 구멍이 뻥뚤린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아직 자식이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롯은 적지 않은 의지였는데 막상 그가 떠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의지해야할 대상은 롯이 아님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며 새롭게 비전을 주십니다.


1. 너는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14절)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 마음이 허전할 때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새로운 비전을 주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비록 롯이 택하여 간 요단 들판이 물이 넉넉하여 하나님의 동산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축복의 땅은 그곳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우쳐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을 계속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지시하신 가나안 땅이 아직은 아브라함이 소유할 만한 환경이 아니라도 가나안에 들어온 날부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실 것을 확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새로운 비전을 바라볼 것을 명하십니다. 사람들은 환경이 바뀌면 자신의 환경 때문에 금방 비전을 잃어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새로운 비전을 보기 위해 눈을 들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눈을 들어’라고 하신 것은 지금 있는 곳에서 좀 더 멀리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환경 때문에 가려진 부분을 놓치지 말고 좀 더 멀리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비전이라는 것은 멀리 바라보는 것입니다. 지금의 환경 때문에 갑갑해 있지 말고 삼년 오년 십년 후의 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지금의 환경에 집착해 있습니다. 그러나 좀더 멀리보고 나아간다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입니다. 


    현 위치에서 하나님을 의뢰하라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가 있는 곳에서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환경이 바뀐 뒤에 바라보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환경에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비록 부족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 같아도 그가 비전을 보기 위해 멀리 바라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축복해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환경의 탓을 합니다. 우리가 실력이 없는 것,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 돈이 없는 것 등이 우리의 비전을 가로막는 원인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내려놓고 주님만 의지하면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비전으로 받고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아브라함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아브라함이 현재 처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할 때 약속하신 축복을 그대로 받을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며 있는 곳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곳입니다. 


    비전을 멀리 그리고 넓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최대한 시야를 넓혀서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지식이나 사고범위에서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이나 경험이나 사고력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갖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있는 곳으로부터 동서남북을 바라보면 그 사방의 땅을 다 아브라함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면서 그가 원하는 만큼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고대근동에서는 땅을 계약할 때 땅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원하는 곳을 다 돌아보고 그것을 사기로 확정하면 그 땅이 그의 소유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아브라함이 동서남북을 보고 자신이 원하는 곳은 다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확인시켜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서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라


    그리고 아브라함이 지금 롯의 공백 때문에 마음에 허전함을 느낄지라도 아브라함의 의지할 대상은 롯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젊은 롯이 있으면 의지가 되고 만일의 경우 롯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 실제로 아브라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도우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 땅을 거쳐서 가나안땅까지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말미암은 것입니다. 실제로 14장에서는 롯이 포로로 잡혀간 것을 아브라함이 자신의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318명을 데리고 가서 구출해온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롯이 아브라함의 도움이 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아브라함이 롯의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실 비전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2. 하나님의 약속(15-17)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5-17절)


    구체적인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서 있는 곳에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한 뒤, 땅과 후손의 약속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나님은 막연한 축복이 아닌 시각적으로 보이는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그대로 믿기만 하면 금방 다 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약속은 구체적으로 400년이 지난 후에 성취될 것입니다(창 15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금방이라도 성취될 것처럼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비전을 보다 구체적으로 그릴 때 그 비전이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꿈이 아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지금 비전을 주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의 눈에 보이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직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이 자식을 얻을 수 있는 소망을 갖고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자손은 “땅의 티끌같이”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비전을 주신대로 행해야할 아브라함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실 땅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도록 명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비전을 주시고 이제는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행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비전대로 그에게 수많은 자손이 있을 것을 믿고 또한 가나안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으면 이제는 그가 받을 땅을 직접 종과 행으로 다니며 확인해보라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넘기실 준비가 다 되어있습니다. 이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그 땅을 밟는대로 하나님이 그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훗날 아브라함의 자손 여호수아에 의해서 성취됩니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밟는대로 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입니다(수 1:3).


3. 믿음으로 응답하는 아브라함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18절)


    믿음으로 응답하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믿고 명하신대로 마음속에 그 땅을 차지할 것을 그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헤브론으로 장막을 옮기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신뢰한다는 신앙고백으로서 하나님께 예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표로서 단을 쌓아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에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은 없어도 하나님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말씀되어졌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질줄 믿고서 감사한 것입니다. 이 믿음에 대하여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축복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응답하는 성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어 아브라함의 축복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은 성도는 누구나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아브라함의 축복의 참여하는 자입니다(갈 3:7,29). 그러므로 성도는 아브라함의 축복에 참여하는 자로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으로서 하나님께 응답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는 축복을 해주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사실 기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것을 교회사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밀러 목사님은 고아들을 3000명 양육하면서 늘 아이들이 먹을 것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고 고아원 건물을 지을 때도 기도로서 모든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의 축복에 참여하기 위해 하나님께 믿음으로 응답해야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여 주신 것과 영생을 주시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심을 감사하면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시편의 기자들이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이시고 나의 산성이시라고 고백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문 앞에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의 주시는 비전을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꿈꾸는 비전을 보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을 보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동경센조쿠중앙교회
글쓴이 : kapore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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