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7.4(수요예배)
심판 중에 하나님의 돌보심
창세기 8:1-12
들어가는 말
하나님의 홍수심판으로 땅위에 움직이는 생물은 다 죽었습니다. 사람과 육축과 기는 것과 새들도 다 죽었습니다. 육체의 코로 호흡하는 생물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던 그 가족과 짐승들과 새들은 살아남았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엄위하신 심판 중에도 자비를 베푸시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던 자들과 선택받지 못한 짐승들과 새들은 다 죽임을 당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던 노아와 그 가족과 노아를 통하여 선택받은 모든 짐승과 기는 것과 새들은 살아남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살아남은 노아와 그 가족들 그리고 함께한 들짐승들을 방주에서 하루빨리 내어놓으실 것을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심판의 기간을 하루속히 줄어들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홍수심판은 엄위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한 노아와 함께 방주에 들어간 들짐승과 육축을 마음에 두신 하나님은 물이 지상에서 빨리 줄어들게 하십니다.
1. 하나님의 권념하심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노아와 그와 함께한 생물을 권념하십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1-5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시었습니다. 여기서 ‘권념하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아보시고 마음에 두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구원의 대상자를 언제나 마음에 두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을 항상 마음에 두셨습니다. 비록 그들이 죄악을 범하여 심판하시어 그들을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어도 바벨론에서 이스라엘백성을 기억하시고 보호하시고 그들을 다시 유대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돌아보시지 않으면 우리중에 살아남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을 생각하시고 지상의 물을 줄이실 것을 생각하십니다. 노아의 가족과 들짐승과 육축과 새들이 방주를 통하여 구원을 얻었지만 계속하여 방주생활만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방주 생활은 제한된 공간이기에 불편합니다. 그리고 준비한 식량도 언젠가는 다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들을 생각하시고 바람으로 땅위 불게 하시어 물이 줄어들게 하십니다. 그리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비가 그칩니다. 홍수 심판의 주요한 도구가 되었던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비가 그침으로 심판이 중단된 것입니다. 이제 물이 땅에서 점점 물러나고 150일에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홍수심판이 시작한지 다섯달만에 방주는 드디어 아라랏 산봉우리에 머물렀습니다. 아라랏산은 지금의 터키지역의 산입니다.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날은 7월 17입니다. 그리고 10월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물이 어느 정도 줄어든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심판의 날을 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엄위하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와 그 가족들과 노아들 통해서 선택된 들짐승과 육축과 새들은 구원을 받지만, 그 나머지는 모두 다 지면에서 쓸어가게 됨을 당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은 심판으로 고통을 당하는 노아와 함께한 가족과 모든 들짐승과 육축들을 기억해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불로 마지막 세상을 심판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 일어날 일들을 가르치시면서 만일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를 감해주시지 않으면 육체로 심판을 견딜 자가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너무 엄위하여 그것을 견디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날을 감하여 사랑하는 자들의 고통을 줄여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사랑의 풍성하심을 나타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며 살아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사는데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고백하고 하나님께 자비하심을 구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심으로 솔직하게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고 마음에 두시어 우리를 어려움에서 건져주십니다. 이러한 삶을 가장 살았던 사람은 다윗입니다. 시편을 통하여 다윗의 신앙고백을 살펴보면 그는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자신을 구원하셔서 원수의 손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고백을 듣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우리 자신이 일하는데 익숙합니다. 그러므로 누구의 충고도 듣기를 싫어합니다. 다른 사람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만의 지식과 경험을 의지하면서 가다가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도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시오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오 우리의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심을 고백하지 않고 스스로가 왕이 되어서 자신의 의지대로 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해야만 합니다.
2. 물의 줄어듬을 알아보는 노아
노아는 물 심판이 끝나고 물이 줄어든 것을 알기 위해서 까마귀와 비둘기를 이용합니다.
“사십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 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또 칠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놓으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줄 알았으며, 또 칠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 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6-12절)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고 산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한 후 사십일이 지난 후 노아는 물어 어느 정도 줄어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까마귀를 내어 놓습니다. 까마귀는 땅에서 물이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습니다. 까마귀는 물이 어느 정도 줄었는지 알기를 원했던 노아의 요구를 들어주질 못하고 그냥 왕래만 한 것입니다.
노아는 이제 지면의 물이 어느 정도 감했는지 알기 위해서 비둘기를 내어 놓습니다. 그러나 아직 온 지면에 물이 있어 앉을 곳이 없음으로 비둘기는 방주로 다시 돌아옵니다. 노아는 비둘기를 다시 받아들이고 칠일을 기다렸다가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 놓았는데 저녁때 비둘기는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입에 물고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물이 지면에서 많이 빠져나가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땅에 물이 감한 것을 알게 됩니다. 노아는 칠일을 더 기다리가 비둘기를 내어 놓았는데 다시는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이것은 비둘기가 땅에 앉을 수 있음으로 돌아오질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노아는 이제 땅에서 물이 완전히 빠지고 땅이 말랐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노아에게서 지혜를 배웁니다.
노아는 땅에서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 알기 위해서 비둘기를 사용한 것을 봅니다. 비둘기를 통하여 땅의 지면이 마를 때를 기다리며 정보를 분석하는 노아의 지혜를 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노아는 자신들이 방주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지만 다시 땅으로 나갈 때 까지 얼마를 기다려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밖의 정보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직접 문을 열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비둘기를 놓아서 그때마다 밖의 상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혜는 노아 자신의 지혜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깨닫게 하신 지혜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지혜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있지만 한편 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것을 모른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귀를 닫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것에 온 마음을 기울일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에 관심을 갖다보면 마음을 세상에 빼앗겨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정보는 알아야하되 그것을 분별하고 성도로서 올바로 사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을 알기 위해서 뉴스를 보고 신문을 보아야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분석을 해야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소식을 보고 듣고 분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 그렇게 지혜로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왕이 되고 난후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로 제사를 드리고 난 후 그날 밤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솔로몬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솔로몬이 지혜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자신의 왕궁을 짓고 삼천잠언을 짓고 시를 쓰고 각종 건축과 의복의 양식을 고안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는 너무나 영적으로 혼탁합니다. 마귀는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서 믿는 자들을 유혹해서 넘어드리려고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사탄의 꾀임에 빠져서 죄를 짓고서 고통을 당하면서도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지혜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세상에서 필요한 각종지혜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는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감동으로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것대로 행한다면 분명하게 지혜로 행할 수 있습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지혜로 이 세상을 분별하며 살아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씀을 통하여 지혜를 얻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하게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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