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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을을 찾아 떠난 하코네 (箱根, Hakone)

kaporet 2006. 5. 19. 08:42
 


            가을을 찾아 떠난 하코네 (箱根, Hakone)



 


일본에 온 후론 제대로 된 가을을 보지 못한지라 이대로 가을이 마감될까봐 조바심을 치며 하코네로의 여행을 계획했다.


Charlotte라고 하는 팬션을 2박3일로 예약을 하고는 버스를 타고 고마에역(狛江驛)으로 가서 오다큐센(小田急線)을 타고 드디어 하코네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아침부터 서둘렀으나 워낙 하루의 시작이 늦은지라 12시가 넘어버려 밤이 되어서야 도착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약간 초조했다.

일본은 오후 4시만 지나면 컴컴해지기 시작하고 4시 30분을 지나면 정말 어둠이 내리기 때문이다.


3일동안의 자유로운 여행을 위해 우선 하코네 프리패스를 5000엔을 주고 구입했다.

各停열차를 타고 두정거장을 지나서 다시 급행으로 갈아타는 방식으로 가다보니 2시간 가까이 걸려서야 하코네유모토(箱根湯本)역에 도착했다.


 

                                  

고라(强羅)역에서부터 숙소로 가기로 방향을 정한 우리는 바로 이어지는 협궤열차인 하코네 등산전차(Tozan Train)를 타기로 했다.

숙소까지 등산버스를 타면 시간이야 덜 걸리겠지만 첫날부터 하코네의 아름다움을 일별이라도 하기위해서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이 등산전차를 타면 늦여름과 초가을 그리고 늦가을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아직 단풍이 제대로 들지 않은 터라 푸른 잎이 무성한 곳도 있고, 마악 단풍이 들기 시작하여 어설픈 색깔을 입고 있는 지역도 있으며, 빨갛고 황금색으로 물든 단풍나무 사이를 지나가기도 하니 참으로 생뚱맞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기도 하다.

 


아주 좁은 철길을 따라 빨간색 전차가 달리는데 3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철길이 왕복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주로 외길이어서 전차끼리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기다리는 시간도 있고, 막다른 길까지 와서 기관사가 자리를 바꿔 뒤쪽으로 가서 다시 운전을 하여 거꾸로 달리기를 서너 번쯤 되풀이 하니 어린 시절의 놀이동산에 온 그런 기분도 드는 약간의 유치함이 오히려 상쾌하다.

 

 


인구가 2만명을 넘지 않는다는 하코네는 거의 전역이 칼데라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칼데라는 백두산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화산폭발 시 화산 밑에 고여 있던 마그마가 지표면 위로 솟아오를 때 생긴 구멍(분화구) 속으로 수많은 세월이 지나는 동안 마그마를 덮고 있던 산이 또 다시 무너져 내리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다보면 처음 화산폭발 때 생겼던 분화구 보다 더 큰 구멍이 생기게 되기 마련이고 그런 것으로 형성된 지형을 칼데라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산과 호수와 삼림의 수려한 풍경과 많은 온천이 있으며, 게이힌(京濱) 지방에 가까운 탓에 교통도 좋아서 전형적인 관광지역으로 발전하였다고 들었다.

            


고라(强羅)역에 도착하자 바람이 약간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숲이 많아서인지 정말 상쾌하다.

폐 속까지 말끔히 청소되는 기분이어서 몸이 가뿐하다.


바로 이어지는 등산케이블카를 타고 소운잔(早雲山)에 내려서 다시 하코네 로프웨이를 타고 토겐다이(桃源台)선착장에 도착하니 어느새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 내려오고 있었다.

해적선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유람선을 타니 이것이 마지막 배란다.

아시노코(LakeAshi)호수를 보고 싶었지만 깜깜해진 탓에 자신의 모습을 끝내 내게 보여주질 않는다.

암팡진 고양이 같다.

물에 비친 불빛만으로 어렴픗이 자태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내일만 되어보라지. 아주 눈이 뚫어져라하고 아시노코를 바라볼 테니까.

 

 

하코네 선착장(箱根町)에 도착하자마자 하코네모토(元箱根)행 버스를 갈아타고 아시노코 ( 芦ノ湖 )정거장에 내려 10분 쯤 걸어서 산속에 숨어있는 숙소인 Charlotte에 도착했다.

참으로 숨 쉴 틈도 없이 계속 갈아타고 갈아타면서 드디어 임시로 정해진 나의 요람에 온 것이다.

기차에서 숙소까지 단 한번도 같은 형태의 운송수단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친절한 팬션관계자에게 5분 후에 저녁식사를 하겠노라고 하니 선선히 허락하면서 2층의 깨끗하고 아담한 객실로 안내해 주었다.

작은 팬션이라 그런지 직원들도 모두 가족같다.


특히 우리를 안내해 준 여직원은 까만 눈동자에 까만 피부를 지닌 혼혈족처럼 보였는데 아름다웠다.

거기다가 친절과 환한 미소는 약간 피곤해지려고 했던 나의 컨디션을 금방 회복시켜주는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했을 정도다.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또 얼마나 행운인가?


배가 몹시 고팠던 우리는 서둘러 식당으로 내려갔는데, 식탁위에 208호실이라는 팻말이 정갈하게 놓여져 있었고, 미리 주문한 샤브샤브가 준비되어 있었다.


한 가지가 마음에 들면 모든 것이 줄줄이 사탕처럼 기분 좋은 것들로만 엮어지게 마련인지라 식사도우미인 청년도 썩 괜찮았다.

미소년처럼 생긴 인상도 그렇거니와 부드러운 말씨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거기다가 싱싱한 소고기와 야채를 얼마든지 더 청하시라고 하는데 정말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일본에 와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토비타큐역 앞에 커피점이 있는데, 커피가 정말 엄청나게 진해서 에스프레소처럼 여겨질 지경이었다.

난 워낙 진한 커피는 감당하지 못하는 체질인지라 뜨거운 물을 달라고 했더니 조그만 커피 잔에다 뜨거운 물 2잔을 주더니 3잔째부터는 값을 내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뜨거운 물을 돈을 내고 마시라니...

그것도 자기네 커피가 너무 진해서 타서 먹느라고 그러는 것을.

내가 주문했을 때 아메리칸 스타일로 해 달라고 명확하게 말했는데도 말이다.

그때 정말 질려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론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일부러 주인과 눈을 맞추며 심사의 불편함을 여지없이 드러내놓는 심술을 부렸더니 나중에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숙이는 단계까지 되었던 터라 마음의 독함을 풀어버리고 그 집 앞을 지나칠 때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두는 친절함을 베풀고 있는 중이다.

생각하면 웃음이 배시시 나오는 유치한 일이지만, 난 가끔 이런 유치함이 상쾌하다.


도우미 청년의 호의를 기꺼이 수락하고 싶었지만, 워낙 질이 좋은 고기와 야채를 풍성히도 주었던 터라 아무리 공짜라도 더는 먹기가 어려워 정중히 사절하였다.

하지만 기분만은 최고였음은 물론이다.

 

 

이 팬션은 개와 함께 오도록 허락된 곳이어서 그런지 모두들 개와 함께 식사도 하고 산책도 하고 목욕도 한다.

난 개를 좋아하지만 생활을 함께 하는 것에는 아직 익숙하지 못하고 더군다나 식당에 개를 데리고 들어오는데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 곳 팬션이 그러하다는 것을 미리 알고 예약한 것을.

 

 


다행히 대부분 커다란 몸집을 가진 멋진 개들이었으므로 바라만 보기에는 그다지 싫지 않았다.

1시간 남짓 산책을 한 후 노천탕에서 노천 욕을 마음껏 즐기고 엉터리 망원경으로 하늘의 별도 관측하며 시간을 보내노라니 이곳이 세상 같지 않다.


 

다음날은 간단하게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는 모토하코네(元箱根)로 가서 해적선을 타고 어제 온 길을 되집어 가기로 한다.

미술관도 많고, 여러 가지 사적도 있지만 모두 둘러 볼 시간이 없는지라 금년 5월에 왔던 곳을 자세히 살펴보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던 것이다.


유람선에 올라 삼층 갑판 꼭대기에 올랐다.

오늘은 날씨가 청명하니 후지산을 보기에 아주 적당할 것 같아서 한껏 욕심을 내기로 했다.

우리가 꼭대기로 올라서자 사람들도 덩달아 올라오는 바람에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여러나라 사람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바람을 맞는 모습은 그런대로 보기에 좋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경계가 사라져버린 느낌을 아주 짧은 순간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노코(LakeAshi)호수의 초록빛이 눈부시다.

호수주변을 따라 예쁜 별장이며, 호텔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과 인공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멋진 풍경화를 이루고 있다.


카메라 샷터를 열심히 누르고 있노라니

순간 열망하던 후지산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두들 환성을 내지르며 우람하고 위엄 있는 후지산을 향해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눈덮힌 산꼭대기와 산 중턱을 에워싸고 있는 흰 구름 그리고 느리게 내려오는 산등성이까지 정말 굉장하다.

 

 


후지산의 높이는 3,776m이고, 산정 화구 지름이 약 700m, 깊이는 약 240m로 일본의 최고봉으로, 후지 화산대의 주봉이며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원뿔형의 성층화산이란다.

저지에서 솟아 있으므로 화산체 그 자체가 높고 밑면은 지름이 35∼40km에 달한다하고,

북서쪽 산자락에는 오무로산(大室山)을 비롯하여 기생화산이 많으며, 남동쪽 사면에는 1707년에 호에이산(寶永山)의 폭발 화구가 생겨 산용에 변화를 주고 있단다.


후지산의 화산활동에 대하여는 781년부터 1707년까지 천년동안 10여 차례의 기록이 있었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며 예로부터 일본 제일의 명산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바라보니 더욱 더 기이하고 신성한 느낌까지 드는 것을 보면 인간의 감성이란 참으로 간사하다 싶기도 하다.



토겐다이(桃源台)선착장에 도착하자 선착장 주변의 공원에서 호수와 어울려 예쁘게 물든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촬영을 한 후 곧바로 케이블카를 타고 그 유명한 오와쿠다니(大涌谷)로 향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침엽수림과 활엽수림이 적당히 어울려져 있어 보기에 좋았다.

더군다나 비가 자주오는 지역이라 나무의 키가 로프웨이 바로 밑에 까지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외에는 그런 나무를 보기가 어렵다.


낙엽이 떨어져 쌓여 있는 모습이 나무에 달려있는 단풍보다 오히려 아름답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단풍의 색깔이 선명하지가 않다.

색종이처럼 빨간색의 강렬함도 없고, 노란색의 화려함도 없다.

불그레하거나, 불그죽죽하거나, 누렇거나 누렇다가 옅은 브라운 색이다가 그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색으로 서로 어울려져 있어 처음엔 참으로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단풍나무도 황금색으로 변종을 했는지 노란 손바닥이 햇빛아래 눈부시다.

전체적으로 파스텔톤이라고 생각하면 사실과 아주 가깝다.

회색과 브라운과 옅은 노란색과 채도가 낮은 붉은색이 짙푸른 침엽수림과 함께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인지 자꾸 쳐다보니 나름대로의 멋스러움이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던 일본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紅葉’이 좋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일본의 단풍은 전통적으로 이런 빛깔인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와쿠다니(大涌谷)계곡은 소운잔(早雲山)에 속해 있는데 그다지 높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걸어서 올라가기에도 부담이 없다.

오와쿠다니(大涌谷)에 도착하여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5월에 왔을 때는 독한 유황냄새에 두통을 앓은 기억이 있다.

두 번째라 그런지 유황냄새도 그리 싫지 않았고, 독하다는 느낌보다는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을 나오자마자 산 전체를 휘감은 연기(사실은 ‘김’이다)의 하얀색이 탄성을 지르게 한다.

 

 

오른쪽으로는 후지산이 아까 배에서 보던 것보다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여전히 멋지다.

한 번쯤 오르고 싶은데 일 년에 잠깐(7,8,9월)만 등산을 허락한다고 하니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닌지라 바라보기만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왼쪽의 소운잔(早雲山)자락은 공사를 하느라 전부 파 헤쳐 놓았다.

하기사 이처럼 온천물이 펑펑 솟아나는 곳을 그냥 두기를 바란다는 사실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어차피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인간 스스로는 믿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곳에 멋진 온천장이 세워진다면 나도 한 번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이중적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조금 걸으니 마치 시멘트를 물에 풀어놓은 것과 같은 색을 지닌 물이 지독한 유황냄새와 함께 김을 모락모락 내면서 흘러내린다.

사람들의 행렬이 대단하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뒤섞여 있어서 조금도 단조롭지 않다.

낯선 말들이 크고 작은 소리에 묻히기도 하고 튀어나오기도 하면서 제멋대로 오와쿠다니(大涌谷)를 휘 젖고 다니지만 그 또한 정겹다.

사람들의 표정과 미소가 하나같이 밝다.


사람이 올라갈 수 있도록 돌계단을 만들고 시멘트로 손잡이도 만들어 놓아서 걷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잘 배려한 것으로 생각되긴 하였지만, 기왕이면 통나무로 손잡이를 만들었더라면 자연과의 조화로움이 이루어져 보기에도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니 맙소사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구멍에서 김이 솟아오른다.

뜨거운 온도로 보글보글 끓는 소리까지 들린다.

이곳의 명물인 구로타마고(검은 달걀)는 바로 이 천연온천에 직접 넣어 삶아낸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철사로 만든 바구니에 가득 담긴 익은 달걀을 끄집어 올리는데 정말 까만색으로 변해있다.

 

 


이 명물을 맛보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한 봉지에 6개가 들어있고 500엔이다.

달걀 한 개에 우리 돈으로 1000원인 셈이다.

달걀을 삶아내는 연료비도 전혀 들지 않는데 말이다.

비싸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 달걀을 사먹지 않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어 보인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열심히 달걀을 까먹는다.

함께 넣어 준 소금으로 적당하게 간을 해서 먹으니 시장해서인지 맛은 괜찮다.

물에다 삶은 것과의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몸에 좋다니까 먹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여러 곳에서 김이 솟아오르기 때문에 오와쿠다니(大涌谷)계곡 전체가 떡을 찌는 시루같다.

내려오는 길에는 끓어오르는 온천물에 데워 진 차를 한 병 샀다.

손에 쥐기에도 벅찰 정도의 온도다.

햇살은 따사했지만 바람은 차가웠는데 차를 데운 병이 주는 온기가 고맙고 정겹다.


목을 축이고, 손도 녹이면서 케이블카를 타고 하코네의 대표적인 정원인 고라코엔(强羅公園)을 향해 출발한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아는 사람들만으로 팀을 만들어 로프웨이를 출발시킨다.

여행의 즐거움을 위한 직원들의 배려다.

이런 작은 배려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여행의 피로를 가시게 한다.

로프웨이는 케이블카 모양의 작은 상자와 같은 것이 굵은 쇠줄을 타고 매달려 가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처럼 생각된다.

 

    

 

소운잔(早雲山)역에 도착하자 등산 케이블카로 재빨리 바꿔 탔다.

이 등산 케이블카는 3량으로 구성 된 빨간 색의 작은 전차 모양을 하고 있다.

귀여운 꼬마열차다.

예쁘고 앙징맞은 느낌이어서 일본분위기가 많이 난다.

이 케이블카를 타고 우리는 公園上이라고 적힌 역에서 하차했다.



고라코엔(强羅公園)을 가기 전에 먼저 하코네비주쓰칸 (箱根美術館)을 들리기로 했는데 그 까닭은 이 하코네비주쓰칸(箱根美術館)은 본래 고라코엔(强羅公園)의 일부였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 미술관은 소운잔(早雲山)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일본 정원과 고대의 도자기로 유명하다.

또한 아타미(熱海)에 있는 MOA 비주쓰칸(美術館)의 전신이기도 하다.

 

 


하코네비주쓰칸(箱根美術館)에는 5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일본 고대의 도자기를 50여점이나  감상할 수 있고, 미술관 내에 있는 일본 정원에서는 사계절의 변화와 산책을 즐길 수 있다고 들었다.

기실 난 도자기는 큰 관심이 없었으므로 대충 둘러보고 서둘러 정원으로 나선다.


이끼를 잘 입힌 뜰이 보기에도 정갈하다.

일본 정원의 상징인 빨간 반달형 다리도 그렇거니와 여기저기 보기좋게 심겨진 나무들도 일본풍의 인공미를 잔뜩 뽐내고 있었다.

나이가 많이 들었음직한 할머니들이 중간중간 안내원 표지를 달고 서 있어서 사람들이 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었다.

 

 


조그만 새롯길을 통해 조심조심 걸으며 그들이 조성해놓은 작품을(정원이라고 할 수 없다) 숨죽이며 보아야하는 분위기는 내 타입이 아니다.

그래도 눈은 즐겁다. 가슴의 답답함을 조금 억눌러야지 어쩌겠는가?


중국과 일본은 유난히 붉은 색을 즐긴다.

선명한 빨간색 우산과 빨간 카페트를 깔아놓은 정원안의 작은 마루도 그렇고, 다리도 그러하며 심겨진 나무들도 붉은 단풍이 일색이다.


이곳의 단풍은 우리나라 단풍과 매우 많이 닮아있어 붉은 색이 선명하다.

공연히 반갑다.

내 나라를 잠시 훔쳐 본 기분이다.

콧등이 찡할 정도로 붉은 단풍이 곱고 예쁘다.



미술관을 나와 5분쯤 걸으면 고라코엔(强羅公園)이다. 

고라코엔(强羅公園)은 동양에서 가장 큰 암석 공원으로, 일본 최초의 프랑스식 공원이다.

1914년 개원 당시에는 주로 상류 계급을 대상으로 한 정원으로서 약 36,300m2라는 어마어마한 부지에 기획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처음 조성될 때에는 프랑스식정원과 일식정원이 함께 있었지만 일식정원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세계구세교에 양도되고 현재에는 하코네비주쓰칸 (箱根美術館)의 정원으로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다.

메이지 다이쇼시대에 조경된 프랑스식 정형정원의 유일한 예로서 남아 있다고 한다.


이 공원을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하는데, 프리패스를 가진 사람은 무조건 공짜다.

아니면 500엔씩 내야한다. 우리 돈으로 5000원이다.

일본의 물가를 생각하면 매일 물만 먹고 살아야 할 판이다.

프리패스를 호기롭게 들어보이고는 정원 안으로 성큼 들어서는데 가장 먼저 장미꽃밭이 눈에 들어선다.


이 늦가을에 장미가 지천이다.

흰 장미와 붉은 장미는 싱싱하기까지 하다.

노란 장미, 분홍 장미...아, 이 세상 모든 장미가 한데 모여 만개한 모습은 계절을 의아하게 한다.

예쁘다. 그래도 추워 보인다. 그래서 가엾다.

 


정원 중앙에는 분수대가 있다.

조각이 아름답다.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는 물줄기를 바라보노라니 오싹하는 한기가 솟는다.

계절과 맞지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봄이나 여름에 오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정말 좋다.

5월에도 이 정원에 왔었다.

물론 그때도 화려하고 좋았었다.

좋은 것은 기억에 남는 법이고, 다시 찾고 싶어지는 것이니까 나도 다시 이곳을 찾아 온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계절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니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사람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활용될 때만이 빛을 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원 안의 열대식물관은 작은 규모이고,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일본에 와서 느낀 것 중 하나.

한국에서 듣기로는 일본인은 깔끔하고 조용하며 남을 배려하는 민족이라고 한다.

그런데 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첫째, 창문을 제대로 청소하는 건물(큰 건물은 제외하고)을 별로 보지 못했다.

벽전체가 창문으로 되어 있는 가게도 창문을 청소하지 않아 지저분해 보인다.

하다못해 아름다운 꽃을 파는 꽃가게조차 예외가 아니다.

나는 정말 그런 곳에서는 물건을 사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청소만 좀 더 잘하고, 조명만 3배정도로 밝히면 매상이 10배는 오를 것이라고 생각되어 공연히 안쓰럽다.


둘째, 일본말은 너무 빠르고 날카롭다. 둥글게 굴러가는 발음이 거의 없다.

내 귀에는 너무 시끄럽다.

작은 소리로 말할 때는 입속으로 우물거려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다.


셋째,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는 물론이고, 어떤 장소에서도 아이나 노인 그리고 여자를 배려하는 광경을 아직까지 목격하지 못했다.

그들은 친한 사람들이나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다정하고 친절하다.

그러나 모르는 타인에게는 너무도 냉정하다.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우린 너무 참견이 심해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난 그래도 그 편이 좋다.



열대식물관은 청소상태가 대단히 불량스러워서 냄새가 심했다.

물이 썩은 것 같은 고약한 냄새며 지저분한 유리를 바라보는 심정은 정말 낭패다.

 

 

 

하지만 공원 안의 하쿠운도 다원(白雲洞茶苑)은 일본의 전통 다도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생각되었다.

국가 유형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할 정도로 옛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곳에 가면 기모노를 입은 여인은 아니지만, 아주 단정하고 친절한 일본 여인이 차를 대접한다.

한잔에 500엔이다.

아주 진한 스프같은 말차(末茶)와 찹쌀이 아닌 밀가루로 된 모찌를 한 개씩 대접받는데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아주 정중하게 잔을 건네며 차를 마시는 방법까지 조근조근 설명해준다.

미소가 아름답다.

손님도 무릎을 꿇고 다도에 맞도록 차를 마셔야 한다.

잠시 경건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맛보는 것도 싫지 않다.


다원 아래로 내려가니 예전에 온천이 나왔던 장소가 있다.

지금은 말라버려 형태만 남아있지만 집안에까지 온천물이 나왔다는 것이 신기하다.


공원을 나와 10분 쯤 걸어가면 强羅역이 나온다.

어제와 같이 오늘도 하루 종일 온 길을 되 집어 숙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토겐다이(桃源台)선착장으로 가기위해 타야하는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일몰도 그런대로 괜찮은 장면이다.

웅장하거나 거대하진 않아도 수채화를 보는 것처럼 맑고 깨끗한 느낌이 든다.

 

선착장에서 해적선을 타고 보니 아시노코(LakeAshi)호수는 첫 날처럼 벌써 검은 색이다.

바람이 어제보다 차다.

마지막 밤이다.


Charlotte팬션에선 유난히 별이 많이 보인다.

별을 헤면 언제나 낭만적인 기분이 된다.

아주 푹~ 단 잠을 잘 것 같은 밤이다.

내일이 되면 난 이 곳 하코네를 떠나게 될 것이다.

오늘과 같은 코스의 길로 다시 동경으로 돌아간다.


같은 코스를 3일동안 다녔으니 이제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해 낼 수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겁먹음과 익숙한 것에 대한 편안함이 나로 하여금 여행코스를 단조롭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또 다른 곳을 여행한다 하더라고 똑같은 방법으로 할 것이다.

낯설음을 익숙함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내 나름의 방식이므로.





출처 : 향기의세계
글쓴이 : 불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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