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 설교

[스크랩]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kaporet 2007. 12. 30. 16:18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누가복음 8:49-56

2007.12.30(주일예배)


들어가는 말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살다가도 조금만 어려움을 만나면 위축되고 비참하게 느껴집니다. 특별히 가족 중에 누군가가 중한 병이 들어있을 때 의사로부터 고칠 수 없다고 판정을 받았을 때는 더욱 낙심되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후에도 그런 태도가 바뀌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구주라면 자신의 모든 문제를 예수님이 다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믿어야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어떤 장로님이 믿음이 좋다고 평판을 받아왔었는데, 그만 암이 걸렸습니다. 오랜 병중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그 장로님의 믿음이 점점 약해져 갔습니다. 담임목사님이 병원심방을 할 때마다 “장로님 지금 돌아가셔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으시죠?”라고 물으면서 구원의 확신을 점검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병이 심해서 고통이 자주오자 그 장로님은 이를 갈면서 마음속에 원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면 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당해야하나?”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임종 때가 가까이 와서 담임목사님이 오셔서 임종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장로님의 구원을 확신하면서 “장로님, 예수님이 장로님의 구세주이심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시죠?”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그 장로님은 이제까지 이를 갈면서 생각하던 것을 내뱉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내가 왜 이처럼 고통을 당해야합니까?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못 믿겠습니다.” 목사님은 놀라서 다시 묻습니다. “장로님, 그러시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분명히 장로님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래도 그 장로님은 하나님을 부인하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내가 이렇게 고통당할 리가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만 숨이 넘어갔습니다. 그러자 그 가족들은 눈물바다가 되었고 함께 참석했던 교인들도 어안이 벙벙하다가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담임목사님도 안타까와서 눈물을 흘립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의 일면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빌 2:12).



1. 예수님께 문제를 아뢰며 간구하는 야이로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 두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옹위하더라”(눅8:41-42)


    가정의 위기를 당한 야이로


    41절에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 건너편 거라사인 지역의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돌아오시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야이로가 이처럼 예수님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병들어 죽어가는 딸을 살리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입니다(42절). 그는 예수님께 자기 집에 함께 가주시기를 요청합니다(41절). 그것은 예수님을 식사에 초청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집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원해서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이로의 직분은 회당장이었습니다. 회당장인 야이로가 예수님을 자기집에 초청한다는 것은 사실 부담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경계하여 예수님을 따라다니거나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을 접촉한 것이 알려지면 자신의 직분에도 문제가 생길지 모릅니다.    그러나 야이로에게는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열두살 먹은 외동딸이 지금 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42절). 외동딸이 죽어가는데 자신의 회당장 직분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이것은 부모로서 사랑하는 자녀에 대한 애정의 표현입니다. 야이로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어떻게 하든지 딸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초청해서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딸에게 안수하시도록 부탁하여 딸을 살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인생을 살면서 위기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려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람의 방법을 동원해도 해결방법을 찾지 못할 때 비상수단을 강구합니다. 그것은 종교의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간에도 가고 진자에도 갑니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빌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말의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위기를 당하면 다급한 나머지 도움이 될만한 것은 아무거나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러한 인간의 심리로부터 우상숭배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의지할 것이 못되는 우상을 의지하는 자마다 다 멸망할 것입니다. 우상은 도움을 줄 수 없고 우상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간구하는 야이로


    그러나 야이로는 자신이 누구에게 구원을 요청해야할지를 잘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식을 지금까지 듣고 있었습니다.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고 악령에 시달리는 자들을 치료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눈먼 소경을 보게 하시는 등 이적과 기사를 베푸신 이야기를 듣고서 늘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엎드려 자기집에 오시기를 간구합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의 신분입니다. 그런 그가 나사렛 목수출신의 예수님께 엎드려 간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사태를 잘 파악했습니다.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심을 알았습니다. 그가 이때까지 들은 정보로는 예수님은 분명히 유대인들이 그토록 갈망하면서 기다리고 있던 메시야(그리스도)였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께 자신의 문제를 아뢰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체면을 불구하고 예수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야이로가 예수님 발아래 엎드린 것은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무엇이라고 평가를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예수님이 분명히 메시야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이로가 예수님께 엎드린 것은 그의 신앙고백을 의미합니다. 엎드린다는 것은 예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라고 고백을 하면서도 주님 앞에 엎드리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형식적인 예배는 드리지만 예수님이 자신의 ‘주님’이시고 하나님이신 것을 망각하면서 살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하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또는 말씀을 듣기는 들었는데 잘 따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엎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잘 응답되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 응답하시는 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이 분명할 때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2.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이에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연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눅 8:43-50)


    믿음을 약하게 하는 사건들


    예수님은 야이로의 간청에 따라서 그를 따라가십니다. 그런데 도중에 열두해 혈루병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사건(43-48절)으로 시간이 지체 되었습니다. 혈루병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면 낫겠다는 믿음으로 옷자락을 만지고 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고백함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죄사함의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바쁜 야이로에게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모릅니다. 단 일초가 급한데 예수님은 여인의 이야기를 다 듣고 그 여인이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선언하시므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야이로가 마음에 염려하던 일이 드디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여인과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 집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그리고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하였습니다. “당신의 딸이 이미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49절)


    야이로는 그 순간 넘어질뻔 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빨리 모시고 가면 자기딸이 살아날 줄로 믿고 열심히 예수님을 모시고 가고 있는데 왜 갑자기 저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어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어서 우리 딸이 죽게 하다니.... 아마도 야이로는 속으로 좌절하면서 여인을 원망하면서 어떻게 할 줄을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당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문제를 아뢰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아직 문제의 해결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더 좋지 않은 소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자칫하면 믿음을 잃어버리고 예수님께 기도하던 일을 중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8장에는 끝까지 간청하는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믿음을 도와주시는 예수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 안절부절 하는 야이로의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를 위로하시면서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50절)

    딸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막 사라지려고 하는 순간 예수님은 다시 야이로에게 믿음을 회복시켜주십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심을 믿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야이로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계속 유지만하면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야이로의 딸의 생명이 회복될 것을 말하고 이차적으로 야이로의 딸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부모의 신앙이 자녀의 신앙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부모가 믿음의 생활을 잘 할 때 자녀는 부모의 신양을 보고 배우면서 점점 신앙생활에 깊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부모 못지않은 신앙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함으로 예수님이 야이로에게 말씀하신 것을 우습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애곡하는 자들에게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실 때 그들은 비웃었습니다(52-53).



3. 기적을 체험하는 야이로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및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하지 아니하시니라.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희가 그 죽은 것을 아는고로 비웃더라.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대,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계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눅 8:51-56)


    아이야 일어나라


    야이로의 집에 온 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비웃었어도 예수님은 야이로의 믿음 때문에 아이를 살리십니다. 예수님의 방문은 아무런 소망도 없이 비참하게 있던 자에게 소망과 생명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아담을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처럼 아이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예수님이 선언하신 말씀입니다. “아이야 일어나라

    우리가 절망가운데서 어찌해야 좋을지 방황하면서 죽음의 길에 앉아 있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애야 일어나라” 우리 주님이 부르시는 것은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요 10:10; 20:31).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주님 앞에 내려놓고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문제를 해결하시고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아이는 일어나서 앉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십니다(55절). 조금 전까지 생명이 없던 아이는 주님의 말씀한마디에 생명을 회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일어나서 걷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제와 같이 건강하여서 그는 자유롭게 출입하며 활동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로 생명을 잃은 것처럼 보일 때 우리 주님께 우리의 문제를 내어놓기만 하면 주님은 부드럽게 우리를 부르시고 일으켜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생명이 없었습니다만,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을 때 성령께서 그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심어주시고 그의 안에 오셔서 내주하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하여 주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생명은 전혀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성령을 의지하여 그리스도께 생명을 회복시켜주시기를 구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속에 예수님의 생명을 회복시켜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생명이 떡을 먹게 됩니다. 이 생명의 떡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우리에게 영의 양식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생명을 회복한 성도는 생명의 떡을 공급받으며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고 그의 활동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에 또한 참여할 것입니다.

    

나가는 말


    우리의 인생의 위기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지금 주님 앞에 가져와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다시 생명을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주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던 것이 회복되고 날마다 묵상하는 말씀을 통하여 생명의 떡을 먹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기도할 때 주님은 세밀한 음성으로 대답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일어나서 주님의 생명으로 열매를 맺으며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센다바중앙교회
글쓴이 : kapore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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