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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새로운 피조물

kaporet 2006. 8. 30. 13:26
 

2006.4.23(주일 예배)

새로운 피조물

고린도후서 5:17

I. 들어가는 말


    우리는 늘 새것을 좋아합니다. 새 옷, 새 집 새 자동차, 새 책 등등 우리는 언제나 새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새 것이라도 사는 순간 이미 중고품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새 것을 좋아할까요? 이에 대해서 전도자가 기록한 전도서 1:9에 “해 아래는 새 것이 하나도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 세상에는 새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새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정작 새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새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진정한 새 것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 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II. 새로운 피조물


1.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1)그런즉 누구든지


    사도바울은 자신이 변화된 모습을 추억하며 이 말씀을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자신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5-6) 그러한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자신과 같이 구원받은 것을 생각하면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3) 사도바울은 자신과 같은 사람도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변화된 것을 생각하면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전의 모습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아무런 소망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위해 준비된 자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2)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다른 어떤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머리가 좋거나 지식이 많거나 배경이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배경이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지식이 많았습니다만,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 때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 자였습니다(갈 1:13).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음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먼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 알지 못하느뇨...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3,5)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으므로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 부활의 생명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3)새로운 피조물


    1)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새로운 피조물을 말할 때 우리는 이전의 창조된 모습을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셨을 때 흙을 빚어서 육체를 만드시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창2:7). 생령은 영과 육이 통일된 완전한 인격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기전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에게 온 땅을 다스리게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26).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말씀은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왕으로서 세움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지음을 받은 후에 즉시 하나님께서 지으신 에덴동산에서 살게 되었습니다(창2:8).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를 나게 하시고 동산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창2:9). 에덴동산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워 하나님 나라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창 2:10-14). 그 모습은 요한계시록 22장1-2절에 묘사된 하나님나라와 닮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에게 그 에덴동산을 맡기시고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창 2:15).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시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시기 위하여 사람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따 먹음으로서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모든 사람은 아담의 범죄로 다 죄인이 되었고 다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범죄를 그대로 두시지 않으시고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범죄한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한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롬 5:17)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 5:21)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것과 3일만에 부활 하신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요 1:12) 성령으로 거듭난 그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요3:5).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요3:16) 구원의 계획에 의한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갈 3:26).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갈 4:6).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습니다(갈 3:27).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새롭게 바뀌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입니다(골3:10).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새로워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그 지식까지도 새로워집니다. 이전에 가졌던 지식이 아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식으로 새로워집니다. 믿는 사람들은 원리상으로 그 믿는 순간부터 옛사람(부패한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새 사람(중생된 사람)을 입은 사실을 인식합니다(롬 6:6).

    “새사람”이란 말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된 자아(自我)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는 말은, “지식에 이르도록 새롭게 하심”이니 곧, 인간이 진리의 지식에 이르도록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영적 개조(靈的改造)를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새로 지으심에 있어서 그 모형은 자기의 형상인데, 그 방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진리의 지식(복음 진리의 지식)에 이르도록 그 심령을 새롭게 하심입니다. 복음 진리를 참으로 아는 데 이른 사람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형상(곧, 의와 거룩)으로 변환합니다. 여기서 “지식”은 통속적 의미의 지식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로만 받을 수 있는 영적 통찰을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식’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는 이론상 지식이거나 자연적 지식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의 연합한 생활에서 흘러나오는 신앙적 지식 곧, 영적 통찰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새로운 지식을 위하여 이전에 좋게 여겼던 것을 다 버렸다고 고백합니다(빌 3:7-8). 


2.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사도바울은 이제 변화된 성도의 모습을 보면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도 말씀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라는 말은 이제는 이전의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전에 우리의 연약하고 완악하던 모습이 이제는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변화된 성도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야합니다(엡 4:22-23).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엡 4:25).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가 지체가 됨”이기 때문입니다(엡4:25).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합니다,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입의 부끄러운 말”입니다(골 3:8).


    (2)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것이 된 성도는 새사람으로 입되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 4:24). 여기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란 말을 개역하면, “진리의 의(義)와 진리의 거룩함”이니, 곧, 진리가 소유한(혹은 산출하는)의와 거룩함을 말씀합니다. 복음의 진리는 죽은 해골과 같은 생명 없는 지식이 아니고, 그것을 참으로 믿는 자들로 하여금 의와 거룩함에 이르게 합니다. 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올바름이고, 거룩함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말씀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로 하나님께 바쳐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로마 성도들에게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고 말씀합니다(롬 1:6).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히 9:14).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으로 살아야합니다.

   

III. 적용 : 그리스도의 것으로 사는 삶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면 마땅히 그리스도의 것으로 살아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소유요 우리의 주인은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시라면 우리는 오직 주님의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할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때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주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육체와 물질이 모두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에서 시작합니다. 하루의 시간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을 주님께 드리고 하루 종일 주님을 생각하며 살며,  우리의 건강과 물질을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주님을 만나는 일과 하나님 나라 복음 확장을 위하여 힘쓰는 일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출처 : 동경센조쿠중앙교회-주님더알기
글쓴이 : kapore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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