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신앙
2006.4.16(부활주일)
부활의 신앙
빌립보서 3:10-16
I. 들어가는 말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저주와 심판을 받으시고 죽으신지 3일 만에 무덤에서 살아나셔서 사망권세를 깨드리신 날입니다. 부활주일을 맞아 우리가 다시 한 번 부활의 신앙을 갖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사는 부활의 신앙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부활의 신앙이란 어떤 것일까요?
II. 부활의 신앙
사도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한 후(8-9절),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한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세 가지를 알려고 합니다. 먼저 그리스도를 알려고 합니다. 바울은 이미 8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자신이 유익하게 생각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이미 바울은 그리스도를 구약성경 말씀의 조명을 통하여 상당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구약에 능통한 사람인지라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롭게 해석하는 법을 깨닫고 모든 구약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말씀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지식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당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이 알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성경의 지식이 아닌 실제로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얻게 되는 체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자신과의 만남을 통하여 계시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더 많이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교제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그런 지식을 바울은 원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하는 신앙(10-11절)
(1)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하여(10절)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기 위하여 그의 부활의 권능을 알려합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의 능력이 어디까지 미치는가 알기를 원했습니다. 부활의 권능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사도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묵상하면서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자신을 변화시킨 것을 회상합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시절 부활하신 주님이 자신에게 나타나시므로 자신이 변화된 다메섹 사건을 기억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후 자신이 변화된 삶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의 능력입니다. 그것은 창조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그 부활의 권능에 참여한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아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이 없이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자신의 죄가 처리된 곳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그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체험이 없이는 자신의 새로운 부활의 삶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로마서 6장에서 잘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2)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10하반절)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 5:6).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자기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없었다면 자신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였을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자신의 옛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자신을 살리심으로 지금은 부활의 생명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기를 소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먼저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과 같이 사도바울은 성도의 구원을 이루도록 자신의 사람을 전부 주님께 드리고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그의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행 20:24).
(3)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함(11절)
사도바울은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함을 알기 위해서 그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기를 원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를 깊이 묵상했고 주님의 죽으심으로 자신이 살아난 것을 생각하며 자신도 성도의 구원을 위해서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자신의 부활의 생명으로 사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부활의 새 생명으로 사는 그의 삶은 완전하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미 자신의 삶이 자신이 것이 아닌 것으로 고백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20절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미 그리스도만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처리되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기에 자신의 삶을 주님이 자신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자신의 삶을 처리한 사람만이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전 생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일만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처리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바울이 자랑하는 것은 십자가뿐입니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가 자신의 삶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2.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신앙(12-14절)
(1)예수께 잡힌바 된 것을 좇는 신앙(12절)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에 이르는 생명의 삶을 체험하고 나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자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삶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또한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은 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자신은 붙잡는 것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많이 수고하였지만 그 수고는 모두가 주님의 은혜로 되어졌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2)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13절)
바울은 자신이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간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조금해놓으면 다된 것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울은 잡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앞에 것을 잡기 위하여 좇아간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어떤 것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붙잡힌바 된 것을 잡기 위하여 좇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주님이 붙잡지 않으신 것을 잡기 위하여 좇아갑니다. 세상의 명예나 돈이나 권력이나 성적 욕망 등을 좇아갑니다. 바울은 그러한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3) 푯대를 향하여 좇아감(14절)
사도는 우리에게 예수께 잡힌바 된 것을 잡기위해서 앞에 것을 잡기 위해서 푯대를 향해서 좇아간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바라고 나갑니다. 사도는 자신이 평생에 수고한 것은 오직, 장차 예수님의 재림의 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모든 수고를 인정하시고 상을 베푸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서 달려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세상의 어떤 고난도 능히 감당할 수 가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소망이 없으나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것은 장차 상을 주시기 위해서 부르셨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기에 주님만을 바라고 좇아갈 수 있었습니다.
(4) 온전히 이룬 자들의 행할 일(15-16절)
사도바울은 자신이 주님께 잡힌바 된 것을 잡기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면서 주님의 부르심의 상을 바라며 좇아간다고 고백한 후, 빌립교인들에게 요청합니다. 온전히 이룬 자들, 즉 온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자신과 같이 생각을 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바라고 주님만을 바라며 나아가기를 촉구합니다. 만일 다르게 생각한다면 그에게 하나님께서 부르심의 상에 대하여 나타내실 것을 말씀합니다.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이 자신과 같이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며 종말에 베풀어주실 상만 바라며 나아갈 것을 요청하고서, 자신이 어디에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좌표가 어딘지 먼저 깨닫고 자신이 주님께 잡힌바 된 것을 좇고 있는지, 아니면 부르심의 상을 바라고 주님만 바라며 나아가고 있는지, 현재의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여 그대로 행할 것을 요청합니다. 무엇보다 사도가 원하는 것은 빌립보 교인들이 자신을 모범으로 삼아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고, 하나님의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바라며 온전하게 그리스도만을 바라고 나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도의 삶은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데 가장 모범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자신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후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에 맞추어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자신의 삶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삶만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가장 닮은 사람은 바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대부분의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복음서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확장하여 해석하고 삶에 적용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의 서신서의 대부분은 십자가의 설교들로 넘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기러 왔다고 하시면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여러 번에 걸쳐서 예고하신 것처럼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메시지를 반복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적용하고 있습니다.
III. 적용: 푯대를 향하는 삶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 후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난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그 주님을 닮아가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빌 3:1-9).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고백하고 자신 안에서 사는 분은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항상 주님과 함께 살며 주님을 닮고 주님의 인격으로 살려고 힘썼고, 이를 위해서 끝없이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면서 자신 안에서 올라오는 정욕을 성령의 능력으로 제거하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역사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부활주일 예배를 통하여 우리 각 사람들도 동일한 은혜를 구하면서,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함께 죽은 것을 확신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새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사는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좇아서 가고 있습니까? 자신의 정욕을 좇아갑니까, 아니면 사도바울처럼 예수님께 붙잡힌바 된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만을 좇아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바라며 나아갑니까? 오늘도 주님을 좇아가는 자신 속에 주님이 말씀하시는 음성에 순종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불순종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주님을 푯대로 하여 그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지 살피고, 만일 그러하지 못하며 우리의 삶의 궤도를 수정해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푯대로 하여 사는 삶은 매일 매일의 순간을 주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가르쳐주신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시간을 내어서 성경을 읽습니다. 그냥 읽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도록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하며 읽습니다.
그리고 읽은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별도로 메모해서 묵상합니다. 하루 종일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에서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기도한대로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힘을 쓰는 것입니다. 물론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하면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삽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실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비전을 주시고 마음에 감동되면 그대로 살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삶의 목표는 주님의 형상을 닮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한 걸음씩 걷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