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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교회, 과연 위기인가(3.完)
kaporet
2006. 8. 3. 13:17
한국교회, 과연 위기인가(3.完)
서재경 : SPR경영연구소 대표
위기를 감지하고 대책 마련을 서두르는 교회도 있습니다. 최근 열린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교회 컨퍼런스’도 그런 움직임 중의 하나로 보여 집니다. 그는 이번 집회에서 “세속적인 성공을 넘어선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달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또 교회와 교인은 사회봉사에 앞장 서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이야기가 토픽이 된다는 것 자체가 한국교회의 허약함을 드러냅니다. 이 집회를 계기로 6천여 명이 단체로 장기기증을 서약 했습니다. 장기기증이 드문 한국사회에서 이만한 일은 큰 사건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집회에 빌리 그래엄 목사의 부흥회 때와 같은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움직임이 언론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고 있다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경영전문가들이 분석한다면
이동원 목사를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은 지난해 ‘한국교회 미래리포트’를 펴냈습니다. 이 자료에는 유의할만한 통계가 많이 있습니다. 책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장세가 다소 주춤한 것은 사실이나, 90년대보다 덜 비관적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며, 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불만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 한국교회의 장래는 밝다고 말합니다. 과거 서양의 교회들도 그런 낙관론이 우세했고 미국교회의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낙관론이 대세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사물이나 현상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교회지도자들이 교회의 현상을 진단하는 것은 처음부터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제라도 경영전문가들로 하여금 냉정하게 한국교회를 진단하도록 하는 것이 해결의 첫걸음입니다. 그렇게 해야 한국교회의 정확한 문제점과 그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들이 교회개혁안을 만들게 하고, 이 초안을 교회지도자회의에서 심도깊은 토론을 거쳐 인준하고, 최종안을 국민투표에 준하는 전교인투표를 통해 확정하는 세 단계의 접근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회부흥에 필요한 대안은 크게 보아 ①세상에 답을 주는 지성기독교로의 전환 ②평신도 참여가 보장된 지도체제의 개편 ③교단과 개교회의 강점을 융합한 조직개혁 ④이웃사랑을 생활화하는 프로그램 확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래학자 캐롤린 코빈은 ‘위대한 리더는 미래를 먼저 본다’라는 저서에서 21세기에는 성품의 훌륭함만으로는 리더가 될 수 없고, 영리 조직이든 비영리 조직이든 상관없이, 모든 리더들은 경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지난 60년대 말 일찍이 퍼스널컴퓨터의 대중화를 예언하여 적중시킴으로써 유명해진 인물입니다. 물론 교회 문제에 경영전문가들을 동원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거나 혹은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문제를 교회지도자들에게 맡기는 것보다 낫다는 점에서 차선책은 됩니다. 교회지도자들은 효과를 상실한 종전의 처방만을 반복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인구센서스 결과는 양식 있는 크리스천들을 공분하게 만들었습니다. 입만 벌리면 1200만 신도라고 떠들던 설교자들 말이 거짓임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따르면 1995년에서 2005년에 이르는 10년 사이에 가톨릭 신도는 74.4% 증가하여 514만으로 늘어난데 반해 개신교는 1.6% 감소한 861만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신도가 줄어든 종교는 유교(-50.4%)와 개신교뿐입니다. 불교는 같은 기간 3.9%가, 원불교는 49.6%가 증가했습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10년 이내에 가톨릭이 개신교를 앞지르게 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결단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몰락한 서양교회의 전철을 밟을 것이냐, 아니면 경장(更張)을 통해 거듭날 것이냐의 비장한 선택입니다.
가톨릭의 발전전략 vs 개신교의 성장전략
김진홍 목사는 한국 교회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가톨릭은 일사불란한 조직력과 결속력을 가지고 있어 국민이 신뢰하고 있다. 또 기독교가 물량주의를 앞세운 부패 이미지를 갖고 있는 데 비해 가톨릭은 사제들의 삶 자체가 청빈하다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가 급속도로 성장하던 1970년대에 가톨릭은 세 가지 정책을 수립했습니다. 첫째, 신도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고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 훈련에 집중 투자하며, 둘째는 교회 지도자인 사제들의 수준을 높이는 데 힘쓰며, 셋째는 가톨릭의 대사회적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복지활동과 사회 정의 실현에 앞장서는 것이었습니다. 개신교가 외적 성장에 주력하는 동안 내적 발전을 선택한 가톨릭이 돋보입니다. 그동안 개신교와 가톨릭은 정반대의 길을 간 셈인데 이제부터 개신교가 가야할 길은 과연 어디일까요?
수년전 강남의 한 교회로부터 창립25주년을 맞아 비전설정과 함께 발전전략수립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의 장기비전으로 ‘나누는 교회’의 컨셉을 제안했습니다. 거기에는 동네 노인들을 위한 노인대학, 동네 아이들을 위한 영어교실, 동네 주부들을 위한 문화교실운영 등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사업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지도부는 이런 사업을 지우고 그 대신 성지순례, 25주년 특별헌금, 교인 배가운동, 해외개척교회설립을 집어넣었습니다. 이것은 그 교회만의 행태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평균적인 모습입니다.
교회의 위기, 과연 해결할 수 있는가
미국정부의 파산은 한 사람의 똑똑한 대통령만 나오면 해결되는 재앙입니다. 대통령이 의회를 설득하고, 국민을 다독거려 지금의 제도를 바꾸면 일거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위기는 해결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개교회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현재의 제도아래서, 누구도 누구를 존경하지 않는 성직자 사회에서, 기복과 물신에 휘둘리는 비이성적인 신앙풍토아래서, 유효한 지도력을 상실한 교단체제에서,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 나선다고 해도 리더십 발휘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기에 가치 있는 일입니다. 또 위기에는 어려운 ‘위험’만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기회’도 숨어있습니다. 교회가 위기를 잘 극복하면 뜻하지 않은 큰 선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서양교회의 맥없는 추락 때문에, 끝까지 살아남은 한국교회가 기독교 세계의 마지막 등불이 되리라는 사실입니다.
이 글을 연재하는 동안 국내외의 많은 독자들이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의견을 보내주신 분들은 한 결 같이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너무 많아 평범한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종교개혁이 일어나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분들의 의견이 이 글을 완성하는데 용기와 함께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속이 시원했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그런 진솔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종교 이야기는 꺼내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습니다. 특히 비판하는 것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여름날의 돼지고기와 같아서 잘 해야 본전이기 때문이지요. 욕을 먹더라도 이 글을 쓰기로 한 이유는 한국교회의 내일이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미 무너진 서양 교회와 똑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타이태닉호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되겠지요. 그런데도 지금 교회는 머지않아 가라앉을 호화로운 갑판에 은성한 파티 테이블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제 글을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글의 마지막 관심은 교회가 위기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에 모아집니다. 그럴 경우 교회는 필경 프로이트 이론의 신세를 지게 될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심리에 대한 지식을 쌓아갈수록 인간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비합리적인 부분이 너무도 많아 합리가 비합리를 도저히 이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직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성적인 생활을 꾸려갈 뿐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환상과 미신을 좇는 생활을 추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변하지 않는데도 위기가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의 은총이나, 지도부의 적절한 대응 덕분이 아니라 프로이트가 지적한대로 환상과 미신을 좇는 대다수의 비이성적 신도들의 열광 덕분일 것입니다. 그때쯤 엘리트 교인들은 속속 교회를 떠나고 그 빈자리를 품격 낮은 목회자와 사이비 종교지도자들이 차고 앉아, 철없는 교인들의 피해는 하늘에 닿을 것입니다.(끝)
서재경 : SPR경영연구소 대표
위기를 감지하고 대책 마련을 서두르는 교회도 있습니다. 최근 열린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교회 컨퍼런스’도 그런 움직임 중의 하나로 보여 집니다. 그는 이번 집회에서 “세속적인 성공을 넘어선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달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또 교회와 교인은 사회봉사에 앞장 서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이야기가 토픽이 된다는 것 자체가 한국교회의 허약함을 드러냅니다. 이 집회를 계기로 6천여 명이 단체로 장기기증을 서약 했습니다. 장기기증이 드문 한국사회에서 이만한 일은 큰 사건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집회에 빌리 그래엄 목사의 부흥회 때와 같은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움직임이 언론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고 있다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경영전문가들이 분석한다면
이동원 목사를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은 지난해 ‘한국교회 미래리포트’를 펴냈습니다. 이 자료에는 유의할만한 통계가 많이 있습니다. 책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장세가 다소 주춤한 것은 사실이나, 90년대보다 덜 비관적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며, 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불만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 한국교회의 장래는 밝다고 말합니다. 과거 서양의 교회들도 그런 낙관론이 우세했고 미국교회의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낙관론이 대세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사물이나 현상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교회지도자들이 교회의 현상을 진단하는 것은 처음부터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제라도 경영전문가들로 하여금 냉정하게 한국교회를 진단하도록 하는 것이 해결의 첫걸음입니다. 그렇게 해야 한국교회의 정확한 문제점과 그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들이 교회개혁안을 만들게 하고, 이 초안을 교회지도자회의에서 심도깊은 토론을 거쳐 인준하고, 최종안을 국민투표에 준하는 전교인투표를 통해 확정하는 세 단계의 접근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회부흥에 필요한 대안은 크게 보아 ①세상에 답을 주는 지성기독교로의 전환 ②평신도 참여가 보장된 지도체제의 개편 ③교단과 개교회의 강점을 융합한 조직개혁 ④이웃사랑을 생활화하는 프로그램 확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래학자 캐롤린 코빈은 ‘위대한 리더는 미래를 먼저 본다’라는 저서에서 21세기에는 성품의 훌륭함만으로는 리더가 될 수 없고, 영리 조직이든 비영리 조직이든 상관없이, 모든 리더들은 경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지난 60년대 말 일찍이 퍼스널컴퓨터의 대중화를 예언하여 적중시킴으로써 유명해진 인물입니다. 물론 교회 문제에 경영전문가들을 동원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거나 혹은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문제를 교회지도자들에게 맡기는 것보다 낫다는 점에서 차선책은 됩니다. 교회지도자들은 효과를 상실한 종전의 처방만을 반복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인구센서스 결과는 양식 있는 크리스천들을 공분하게 만들었습니다. 입만 벌리면 1200만 신도라고 떠들던 설교자들 말이 거짓임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따르면 1995년에서 2005년에 이르는 10년 사이에 가톨릭 신도는 74.4% 증가하여 514만으로 늘어난데 반해 개신교는 1.6% 감소한 861만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신도가 줄어든 종교는 유교(-50.4%)와 개신교뿐입니다. 불교는 같은 기간 3.9%가, 원불교는 49.6%가 증가했습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10년 이내에 가톨릭이 개신교를 앞지르게 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결단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몰락한 서양교회의 전철을 밟을 것이냐, 아니면 경장(更張)을 통해 거듭날 것이냐의 비장한 선택입니다.
가톨릭의 발전전략 vs 개신교의 성장전략
김진홍 목사는 한국 교회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가톨릭은 일사불란한 조직력과 결속력을 가지고 있어 국민이 신뢰하고 있다. 또 기독교가 물량주의를 앞세운 부패 이미지를 갖고 있는 데 비해 가톨릭은 사제들의 삶 자체가 청빈하다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가 급속도로 성장하던 1970년대에 가톨릭은 세 가지 정책을 수립했습니다. 첫째, 신도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고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 훈련에 집중 투자하며, 둘째는 교회 지도자인 사제들의 수준을 높이는 데 힘쓰며, 셋째는 가톨릭의 대사회적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복지활동과 사회 정의 실현에 앞장서는 것이었습니다. 개신교가 외적 성장에 주력하는 동안 내적 발전을 선택한 가톨릭이 돋보입니다. 그동안 개신교와 가톨릭은 정반대의 길을 간 셈인데 이제부터 개신교가 가야할 길은 과연 어디일까요?
수년전 강남의 한 교회로부터 창립25주년을 맞아 비전설정과 함께 발전전략수립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의 장기비전으로 ‘나누는 교회’의 컨셉을 제안했습니다. 거기에는 동네 노인들을 위한 노인대학, 동네 아이들을 위한 영어교실, 동네 주부들을 위한 문화교실운영 등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사업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지도부는 이런 사업을 지우고 그 대신 성지순례, 25주년 특별헌금, 교인 배가운동, 해외개척교회설립을 집어넣었습니다. 이것은 그 교회만의 행태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평균적인 모습입니다.
교회의 위기, 과연 해결할 수 있는가
미국정부의 파산은 한 사람의 똑똑한 대통령만 나오면 해결되는 재앙입니다. 대통령이 의회를 설득하고, 국민을 다독거려 지금의 제도를 바꾸면 일거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위기는 해결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개교회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현재의 제도아래서, 누구도 누구를 존경하지 않는 성직자 사회에서, 기복과 물신에 휘둘리는 비이성적인 신앙풍토아래서, 유효한 지도력을 상실한 교단체제에서,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 나선다고 해도 리더십 발휘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기에 가치 있는 일입니다. 또 위기에는 어려운 ‘위험’만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기회’도 숨어있습니다. 교회가 위기를 잘 극복하면 뜻하지 않은 큰 선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서양교회의 맥없는 추락 때문에, 끝까지 살아남은 한국교회가 기독교 세계의 마지막 등불이 되리라는 사실입니다.
이 글을 연재하는 동안 국내외의 많은 독자들이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의견을 보내주신 분들은 한 결 같이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너무 많아 평범한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종교개혁이 일어나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분들의 의견이 이 글을 완성하는데 용기와 함께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속이 시원했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그런 진솔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종교 이야기는 꺼내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습니다. 특히 비판하는 것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여름날의 돼지고기와 같아서 잘 해야 본전이기 때문이지요. 욕을 먹더라도 이 글을 쓰기로 한 이유는 한국교회의 내일이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미 무너진 서양 교회와 똑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타이태닉호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되겠지요. 그런데도 지금 교회는 머지않아 가라앉을 호화로운 갑판에 은성한 파티 테이블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제 글을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글의 마지막 관심은 교회가 위기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에 모아집니다. 그럴 경우 교회는 필경 프로이트 이론의 신세를 지게 될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심리에 대한 지식을 쌓아갈수록 인간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비합리적인 부분이 너무도 많아 합리가 비합리를 도저히 이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직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성적인 생활을 꾸려갈 뿐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환상과 미신을 좇는 생활을 추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변하지 않는데도 위기가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의 은총이나, 지도부의 적절한 대응 덕분이 아니라 프로이트가 지적한대로 환상과 미신을 좇는 대다수의 비이성적 신도들의 열광 덕분일 것입니다. 그때쯤 엘리트 교인들은 속속 교회를 떠나고 그 빈자리를 품격 낮은 목회자와 사이비 종교지도자들이 차고 앉아, 철없는 교인들의 피해는 하늘에 닿을 것입니다.(끝)
출처 : Coram Deo
글쓴이 : 에이레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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