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스크랩] 제11장 십자가에 못박힘

kaporet 2017. 8. 17. 15:19


11장 십자가에 못박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2:20)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6:5)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더불어 교제하고 그 죽으심의 모든 축복과 능력에 동참하는 확신을 위와같이 표현합니다. 이것은 그의 진정어린 고백이며 참으로 이제는 자신이 죽었음을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계속하여 말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그분의 죽으심을 진정 나의 죽음으로 여길 수 있음은 곧 하나님께 대한 주님의 온전한 순종, 죄를 이기신 그분의 권세로부터의 온전한 구원을 나의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 죽음의 능력이 매일 나의 육신을 죽이는 신적인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을 믿음으로 깨달으며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에 합당하도록 나의 모든 생활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은 새로 태어난 생명이 본성의 죽음을 통하여 새롭게 성장하는 비결입니다.

   “그의 죽으심에 연합하였으니라는 암시적인 표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자안에 거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표현해줍니다. 내적 생명 안에 다른 가지를 받아들이도록 몸을 찢고 맨살을 드러내는 상처가 없이는 접붙일 수 없습니다. 오직 이러한 상처를 통해서만 양분의 수수가 가능하고 보다 더 튼튼한 가지로 자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죄인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죽으심에 심기워질 때에야 비로소 그분 안에 있는 생명과 능력에 동참하는 자로서 그 부활의 형상 속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에서 그리스도는 상처를 입었으며 그분의 열려진 상처 안에서 우리가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처소가 예비되었습니다.

   또한 접붙임을 받을 가지가 그 본래 자라던 줄기로부터 다른 가지에 맞도록 잘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와같이 믿는 자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은데 알맞도록 만들어져야합니다. 상처가 난 가지들은 서로에게 알맞도록 깎여져 맞추어집니다. 그리스도이 고난과 당신의 고난에도 교제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체험이 당신의 것이 되어야합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지고 고통을 견디고 또 십자가를 선택하는데서 나타내주신 특성들이 또한 당신의 것이 되어야합니다. 당신은 죄에 대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이 내리신 저주와 의로운 심판에 대하여 주님이 가지셨던 전적인 동의와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안에 거해야합니다. 십자가를 하나님께 대한 속죄로서 바라볼 뿐만 아니라 마귀를 이긴 승리로서 보아야하고 죄책감으로부터의 구원뿐만 아니라 죄의 권세로부터의 해방으로 보아야합니다. 주님은 나와의 밀접하고 친밀한 연합과 교제를 위하여 그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십니다. 또 내가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으신 능력에 동참하는 자가 되도록 십자가의 죽음을 나 자신과 동일시해야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승리의 새 생명에 참여하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기도의 간절한 소원을 품고 일편단심으로 자신을 맡기며 그분의 죽으심과 성령 안에서 하나로 일치된 친밀한 교제를 위하여 자신을 주님께 위탁해야합니다.

   또 우리는 십자가가 왜 연합의 장소가 되는지 이해해야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과의 충만한 연합으로 들어오셨으며 거기에서 저주아래 있는 족속의 일원으로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실을 마음껏 체험하셨습니다. 생명의 왕자이신 주님이 십자가 위의 죽음에서 사망권세를 정복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나누누어주신 생명은 죽음에서 일어난 생명이요, 그 죽음과의 교제를 통하여 그 생명의 능력을 각각 체험한 것입니다. 구원자되신 예수께서 주신 모든 은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나를 대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자신을 주님의 자리에 내놓아 거기에서 거해야합니다. 주님과 내가 공유하고 있는 유일한 처소는 십자가 위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자의로 선택하신 것이며 나는 죄로 인한 저주를 받아 거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나를 찾아오셨으며 나는 거기에서만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이 거기에 있는 나를 찾으셨을 때 그것은 저주의 장소였습니다. 주님은 이 저주를 체험하신 것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곳을 축복의 장소로 만드셨습니다. 내가 그 축복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저주로부터 해방하시고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하였을 때에도 그분은 여전히 본래대로 성부 하나님의 사랑스런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와 교제하시면서 나의 저주와 나의 죽음에 참여하신 것입니다. 내가 주님과 하나가 되고자할 때 나는 십자가를 피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외에 다른 곳에서는 생명과 구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신 축복 또한 주님과 연합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서 십자가를 통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십자가를 그분 자신의 것으로 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분의 십자가를 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의지를 전적으로 포기하고 모든 육체의 욕망과 쾌락을 완전히 부인하며 모든 언행심사에 세상과 완전히 결별하여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고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또 타인을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자의 특성입니다.


출처 : 주님을 더알기 원하는 사람들
글쓴이 : kapore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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