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 설교

[스크랩] 예수님의 마음을 구하는 기도

kaporet 2009. 7. 20. 17:10

예수님의 마음을 구하는 기도

마태복음 8:1-4

2009.7.19(주일예배)


    어느날 길을 가다가 어린아이가 엄마한테 떼를 쓰며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자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떼를 쓰지만, 엄마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아이가 울음을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요구를 들어줄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요구가 엄마의 마음에 맞지 않기 때문에 엄마는 아이의 요구를 무시하고 아이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립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보입니다. 우리는 문제에 부딪힐 때 어떻게 하든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다가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여도 응답을 받지를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가 틀렸기 때문에 응답이 없었던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만을 부르짖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마음을 알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할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1. 예수님의 마음을 구하는 기도


    본문배경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관해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함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병든 자와 악령에 시달리는 자들을 고치시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하여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받을 축복인 여덟 가지의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는 내용들이 8장이하에 나타납니다. 그 중에 제일먼저 문둥병자를 치료하시는 내용이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실 때 허다한 무리가 좇아왔습니다(1절). 예수님께서는 산위에서 12명의 제자를 임명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원리를 가르치시고 다시 일반 백성들 속에서의 사역을 위하여 갈릴리 호수 근처의 낮은 지방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때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대해서 권세가 있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므로 놀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가르침을 듣고나니 자연히 예수님을 좇아가게 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나님께로 나온 권위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따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말씀과 더불어 베푸실 이적과 기사를 기대하며 따랐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갈 때 우리는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믿고 따라야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어떤 기적이 일어날 것인지 기대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것이 가장 큰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결코 예수님을 믿는 것조차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기적을 베풀실지 기대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야할 것입니다.


    예수님께 간구하는 자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실 때 한 문둥병자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절하고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2절). 여기서 ‘한 문둥병자’로 표현된 병이 병리학적으로 실제 문둥병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문둥병을 위시한 제반의 피부병을 일컫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레 13, 14장). 여하튼 유대인들은 제사장의 판정(判定)에 따라 문둥병이라 지목된 자를 몹시 꺼려했습니다. 왜냐하면 문둥병 자체가 혐오스러운 것이기도 했거니와 문둥병자와의 접촉 자체를 의식적으로 불결하다고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문둥병은 하나님의 징계로 받는 병으로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 문둥병자는 부정한 병이라 하여 이스라엘 진중 밖에서 살도록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둥병자들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금지되어있었습니다. 만약 이를 어긴 경우 그 문둥병자는 심한 제재 조치나 돌에 맞아 죽는 수모(受侮)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 사실을 고려할 때 본문의 이 문둥병자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것은 그자체가 이미 파격적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문둥병자는 목숨을 걸고 예수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문둥병자는 마침 예수님께서 산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내려오신 것을 보고 다른 무리 틈에 끼어 예수님을 좇아갔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이번이 단 한번의 기회로 생각되었습니다. 자신이 문둥병자로서 마을로 들어갈 수 없는데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신 것을 보고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문둥병으로 고통을 당하며 날마다 하나님께 구하였을 것입니다. 자신이 문둥병으로 고통을 당하며 가족과도 떨어져 살고 있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불쌍히 여겨주실 것을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산에서 말씀을 가르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시는 것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실 때 어떤 병자보다 먼저 달려나가서 예수님께 구한 것입니다.

    ‘주여’라는 말의 의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고백하는 믿음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예수님이야말로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기다려온 메시야 그분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나가면 자신의 문둥병이 깨끗하게 나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서에 메시야가 오시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주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하시면’이라는 말은 예수님에게는 자신의 병을 고칠 능력은 분명히 있는데, 다만 고쳐줄 의사(意思)가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일 뿐이라는 문둥병자의 강한 믿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 인격적 주체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일을 성취하려는  강한 의지와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동시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문둥병자는 예수님의 객관적 능력을 이미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능력을 자신에게 베푸셔서 자기를 고쳐주겠느냐고 그는 물었던 것입니다. 문둥병이 난치의 병이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한번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병은 간단히 치유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둥병자는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는 말은 예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자신의 문둥병 같은 것은 간단하게 나을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믿음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자신에게 주시기만 하면 자신의 병이 어떤 중한 병이라도 깨끗하게 치료하실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구하기만 하면 자신의 병이 중한 병인지 아닌지는 관계없이 어떤 병이라도 나을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구하는 기도


    사실 성도들에게는 문둥병자와 같은 이런 단순한 믿음이 요구됩니다. 우리는 때로는 자신의 구하는 것을 정말 예수님이 들어주실까 라는 의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기도에 대해서 예수님은 들어주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은 단순해야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요청하듯이 어떤 형편을 고려하는 것이 아닌 무조건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간구하는 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형편을 다 고려하여 기도하려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실지 걱정하며 기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으면 자신의 형편이 아무리 나빠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이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형편이 이래서 하나님이 들어주실지 모르겠다는 식의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격하게 말해서 기도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 자신의 신세타령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정말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이 자신의 구주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자신의 형편을 살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또 우리는 우리의 문제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예수님이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그 마음을 움직여 주시어 응답하실지 어떨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우리의 문제가 너무도 중요한 반면 예수님께는 우리의 문제보다 우리의 마음이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자 애쓰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마음을 쏟으실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이 기도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너무 많이 자신의 문제만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말 자신의 기도에 마음을 움직여 주실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당연히 자신의 기도에 하나님이 관심을 가져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면서도 정말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응답이 늦어지면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쏟아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옷을 찢지 말고 우리의 마음을 찢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에 관심을 갖고 마음을 움직여서 응답하시기를 구해야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응답


    기도의 응답을 원하시는 예수님


    문둥병자의 간청에 대해서 예수님의 대답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3절) 예수님은 문둥병자가 당신의 신성을 믿고 간구함을 들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대시며 ‘내가 원하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받는 것이 예수님의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깨끗함을 받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육체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병든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깨끗함을 받을 것을 원하십니다. ‘원하시면’이라고 예수님의 마음을 구한 문둥병자에게 주님은 ‘내가 원하니’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구하며 기도할 때 응답해주신 것입니다.

    구약 율법에 의하면 문둥병자와 접촉한 자는 문둥병자가 상징하는 죄성(罪性)에 오염된 것으로 간주되어 의식법상 똑같이 부정한 자로 취급되었습니다(레 11:40; 13:46). 율법대로라면 예수님은 이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심으로써 부정한 자가 된 것이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시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것입니다. 더욱이 구약의 제사장들이 문둥병자의 치유 여부를 판별할 때 그에게 접촉해도 부정하지 않았듯이(레13:2-8) 예수님께서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셔도 하나님 앞에서 부정하지 않게 된 것은 그분이 곧 인류의 죄를 대속키 위해 이 땅에 오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이 부정한 자에게 '대심으로' 부정해진 것이 아니라 역(逆)으로 부정한 자가 주님의 '대심으로' 정(淨)하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에 대한 응답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자 즉시 문둥병자의 문둥병이 깨끗하여 졌습니다. 믿음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즉각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깨끗함을 받을 것을 선언하심과 동시에 문둥병이 깨끗하게 낫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당신에게 나아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구하는 자의 소원을 다 들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응답을 너무도 오랜 후에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응답을 기대하지 못한채 기도를 마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도가 정말 믿음을 가지고 기도했다면 그 기도에 대해서 즉각적인 응답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의 응답이 더딘 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의 응답이 즉시 일어날 것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 기도한대로 즉시 주님이 들어주실 것으로 믿기만 한다면 즉각적인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3.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드리라


    예수님은 문둥병을 치료받은 그 사람에게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병을 치료받은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병을 고침받았음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병을 치유받았음을 자랑하지 말고 다만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병이 나았음을 알리고 모세의 율법대로 예물을 드려서 증거를 삼으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이 자신을 깨끗하게 해주신 것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유대인, 특히 종교 지도자들의 견제와 시기를 받고 이로 인해 복음 전파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치유받은 자가 율법의 예를 따라 제사장에게 나아가기 전에 미리 이적(miracle)의 소문이 전파됨으로써 나타날 제사장의 편견어린 판결을 의식하셨기 때문입니다. 실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반대하는 제사장들이 편견없는 순수한 의식으로 그 치유를 받아들이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 치료받은 자가 함구령을 무시함으로써 그후로 복음 전파에 많은 장애를 맞이하게 됩니다(막 1:45).

    여기서 성도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았을 때의 태도를 배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받으면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랑해야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자신을 긍휼히 여겨주신 것을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에 족하고 감사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고(고전 1:31) 말씀합니다.


4. 적용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문둥병자가 기도한 것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께 쏟으며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를 향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려면 성령을 의지하며 성령의 도우시는 기도를 드려야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단순하게 기도할 때 기도가 응답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그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감사하며 그에 합당한 예물을 드려야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의 마음을 구하는 기도를 통하여 응답받는 축복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출처 : 센다바중앙교회
글쓴이 : kapore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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