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축복의 땅을 향하여
축복의 땅을 향하여
여호수아 3:1-17
2009년1월4일(신년예배)
“1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 2 삼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 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십 이명을 택하라.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15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쌔,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수 3:1-17)
들어가는 말
2008년이 저물고 200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첫날 사람들은 희망을 갖고 일출을 보러 가며 하츠모우데(1월1일 진자나 절에 가서 한해의 소원을 비는 일)를 하러 갑니다. 그리고 서로 만나는 사람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일본에서는 “좋은 해가 되기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한 해 동안 복을 받도록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그분이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기를 소원합니다. 새해를 맞아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새로운 해가 되면 새로운 마음으로 올해는 무언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새롭게 축복해주실 것을 기대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 앞에 살 것을 각오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어떤 자세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백성이 모세의 지도를 받아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한 땅 가나안 건너편 모압땅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모세가 죽은 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여리고성에 정탐꾼을 보내어 보고를 들은 후 축복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해야할 일을 듣습니다.
1. 축복을 받기 위한 준비
믿음으로 준비하라
여호수아는 여리고성 정탐군들의 보고를 듣고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대로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싯딤에서 떠나 요단강에 이르러서 그곳에 유숙합니다.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난 것은 대사(大事)를 앞두고 여호수아가 항상 영적으로 먼저 무장했음을 보여줍니다. '싯딤'은 아카시아 언덕이라는 뜻으로 디베랴 북서쪽 약 8km 지점으로 추측됩니다. 이곳에서 여호수아가 두명의 정탐군을 여리고에 보냈습니다(수2:1). 요단강은 급한 여울이라는 이름처럼 물살이 빠른 강이며, 팔레스틴의 가장 큰 강입니다. 북쪽 레바논산 헐몬산을 수원으로 하여 갈릴리 호수를 지나 팔레스틴을 세로로 갈라 남쪽 사해로 흐릅니다. 시발점에서 사해까지 약 900미터나 낮아지므로 중간에 급류가 많아 폭포 비슷한 급류가 27개소나 됩니다. 강 양편 요단계곡은 무성한 수목으로 경치가 아름답습니다. 이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널 것입니다(수3:7-4:14).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기를 준비하며 그곳에서 3일을 유숙합니다. 이처럼 요단 강둑에 이르러 3일을 유숙한 이유는 요단 강 도하(渡河)직전 최종 마무리 준비를 해야 했고, 또한 여호와의 지시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왜 이스라엘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야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땅이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가나안 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요단강을 어떻게 건너야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만 믿고 나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실 때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대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을 보여야합니다. 그것은 요단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라
삼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에 다니며 백성들에게 명합니다.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유사는 문자적으로는 '서기'(書記)를 뜻하며, 따라서 이들은 아마 군사 지도자들이라기보다는 고지, 회집, 기록 등 이스라엘의 제반 행정 업무를 담당한 관리들을 가리킵니다(신 20:5참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는 '법궤'(레 16:2), '증거궤'(출 30:6), '여호와의 궤'(수 4:11), '하나님의 궤'(삼상 3:3), '주의 능력의 궤'(대하 6:41)등으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언약궤는 출 25:10-22에 그 규모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이 궤 속에는 십계명 두 돌판과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담겨져 있었습니다(히 9:4; 왕상 8:9). 이 언약궤를 운반할 경우, 규정상으로는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어 운반하도록 되어 있었지만(민 4:4-15), 특별히 중요한 경우에는 제사장들이 직접 운반하기도 했습니다(신 31:9; 왕상 8:3, 6).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궤의 그 뒤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광야 생활 동안에도 줄곧 언약궤가 앞서 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 행진하였습니다(민 10:33-36). 여기서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바, 이를 뒤따르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따르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나아가야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 가려하면 실패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앞서 간 자들이 실패한 이야기가 많이 소개됩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은 끝내 성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를 기억하며 따르라
백성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따를 때 이천 규빗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라가야 합니다. 일'규빗은 통상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거리고 약 45cm입니다. 그러므로 2000규빗은 약 900m 정도의 거리입니다. 이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언약궤를 따라가게 한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에 대해 경외심을 심어 주기 위함이었으며, 둘째, 온 백성으로 하여금 언약궤를 충분히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언약궤에 가까이 하지는 말아야합니다. 후일 법궤 운반시 웃사가 무분별하게 법궤에 손을 댔다가 죽임을 당한 사건(삼하 6:6, 7)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명령은 언약궤가 거룩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할 때 항상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기억하고 결코 경고망동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자기 임의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결국 실패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힘들어도 항상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요 우리와는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겸손하게 말씀에 순종하게 될 것이고 축복의 길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성결하라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명령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 요단 강 도하를 앞두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결'을 명하였습니다. 여기서 성결의 구체적인 행위로 의복을 빤다든가(출 19:10, 14), 옷을 갈아 입는다는가(창 35:2), 또는 여인을 멀리하는 것(출 35:2)등과 같은 외부적 성결 행위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그러한 준비를 할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여호수아가 명령한 성결(聖潔)은 심령의 성결, 곧 영적 성결의 자세를 삼가 가다듬으라는 의미로 보아야할 것입니다. 백성들이 성결해야할 이유는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때문입니다. 기사는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 속에 개입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 가나안 정복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이기 때문에 백성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기 위해서 스스로 성결해야합니다.
요단강을 건너라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고 말합니다.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갔습니다. 실로 넘실대는 요단 강물에 발을 내디딘다는 것은 큰 믿음과 용기가 요구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상징인 언약궤가 함께 하였으므로 오직 믿음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믿음의 용기를 가져야합니다. 물론 속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들지라도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나가야합니다.
2. 축복을 땅을 향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게 됨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크신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용기를 주셨던 것처럼(1:9) 하나님께서 요단 강 도하 직전, 다시 한번 크신 능력의 말씀으로 여호수아를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하였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적적인 요단 강 도하 사건은 장차 여호수아를 영화롭게 할 일련의 기적적인 사건들의 시작에 불과함을 시사합니다. 홍해 도하(渡河)의 기적이 모세를 주의 종으로 확실히 인정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듯이(출 14:31), 요단 강 도하 사건의 기적은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신뢰할만한 지도자로 확실히 인정받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
하나님은 요단강 도하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명하십니다.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는 것입니다. 홍해 도하 기적에 있어서의 모세의 역할보다 요단강 도하 기적에 있어서의 여호수아의 역할은 간접적입니다. 즉 모세는 지팡이를 들므로써 직접 사역한 반면에(출 14:16, 21),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명령을 내림으로써 간접 사역을 하였던 것입니다. ‘요단에 들어서라’는 것은 요단강에 들어가 계속 서 있음을 뜻합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수아를 통하여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강에 들어가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적을 보는 길입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합니다.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위해 가까이 나아오라는 뜻으로, 이하 선포되는 말씀의 중요성을 암시할 뿐 아니라,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게 합니다. 물론 여기서 여호수아가 직접 말씀을 선포한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자들일 것입니다. 이어서 여호수아는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영원토록 살아계시사 우주 만물의 운행과 인간의 모든 역사에 친히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실로 여호와는 이방의 온갖 목석의 죽은 신과는 현격히 대조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살아계심을 특별한 사역을 통해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친히 나타내시는데,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가나안 일곱 족속을 진멸시키심으로써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실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그들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것입니다. 여기서 '쫓아내다'는 말은 '어느 특정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을 쫓아내고, 그 지역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는 이중적 의미의 낱말로서, 구약 성경, 특히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과 관련하여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을 정복하시고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리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법궤를 통하여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것을 말합니다.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당시대의 사람들은 모든 신을 민족신 내지는 지역신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느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들어갈 경우에 그 지역의 신을 따라 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여기서 분명 지역과 민족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을 어느 폐쇄적 공간이나 특정한 대상에게만 국한시키려는 시도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표현이 요단강 도하와 관련하여 사용된 것은 세상의 전 영역 즉, 바다와 강들도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각지파별로 한 사람씩 “십 이 명을 택하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 도합 열 두 명이 선발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통일성과 완전성을 뜻합니다. 이들은 전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여호수아, 혹은 제사장들 곁에서 요단 도하 사건과 관련하여 그때그때 주어지는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입니다(4:3).
이제 ‘온 땅의 주 여호와의 법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강을 밟고 멈추면 요단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설 것’입니다. 요단강은 헬몬 산 부근의 4개의 수원(水原)에서 시작되므로 '위'는 곧 '헬몬 산에서부터 발원하는 곳'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말은 출 15:8에 나타나 있는 홍해의 기적을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흘러내리던 요단 물이 분리되어 그 아래의 물과 합쳐지지 않았고, 멈춘 물이 점차 산처럼 쌓여갔음을 보여주며, 마치 사람이 자기의 몸을 일으켜 세우듯 물이 자기 자리에서 일어서 계속 불어났음을 나타냅니다.
3.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믿음
이스라엘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명을 듣고 이제 요단강을 건너려고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합니다.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었습니다. '모맥'은 '밀과 보리'를 뜻하며, 아열대(亞熱帶) 기후에 속하는 여리고 지역은 태양력 4,5월경이 그 수확기입니다. 요단이 언덕에 넘치는 것은 퇴적 작용으로 생긴 강의 양쪽 자연 제방이 가득 차 범람하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모맥 거두는 시기쯤에는 북쪽 헬몬 산의 눈이 녹을 뿐 아니라 또한 봄비가 내리기 때문에 갈릴리 호수는 최고 수위에 오르게 되고 요단 강물은 크게 불어 그 깊이는 3-4m, 그 넓이는 30m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전체 요단 강물이 만수가 되어 염해(사해)로 흘러가는 이때에는 요단강의 가장 좁은 나루터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방법으로 도강(渡江)하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더구나 처자식을 거느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엄두조차 못낼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완전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그 도강(渡江)이 오직 하나님의 기적임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진정 출애굽 당시나 광야 생활때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진입 때에도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출 14:21;16:13). 그리고 이는 향후 가나안 땅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조(前兆)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적을 체험함
법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위에서 흘러내려오던 물이 그쳤습니다. 강둑을 넘칠 정도의 거센 물결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궤를 메고 물속으로 담대히 들어간 제사장들의 용기는 아주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용기는 오로지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여호와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도 환경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강물에 잠기자 곧 요단 강물은 그 흐름을 멈추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의 섭리임에 틀림없습니다. 믿음으로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강으로 들어갈 때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강물에 닿자마자 방금까지도 넘실대며 흐르던 물이 곧 멈추며 뒤로 물러나 쌓였고,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 및 가축 떼까지 건너기 위해서는 상당량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추측해 볼 때, 요단 강물의 멈춤 사건은 순수한 하나님의 초자연적 이적 사건입니다. 물은 쌓여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까지 이릅니다. 흐르던 물이 그치고 쌓이는 바람에 일종의 역류(逆流)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르단'은 여리고 북방 약 20km 지점의 요단 강 기슭에 있는 성읍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넜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단지 '강가'에 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강바닥'에 서있었습니다. 여기서 '마른 땅'은 '물기 없는 땅' 뜻합니다. 강바닥인데도 물기 없는 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기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마른 땅에 굳게 서있었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다 건널 때까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자기가 선 자리를 확고부동하게 지켰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백성들이 요단강을 다 건널 때까지 자기의 위치를 지킨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굳게 서있는 동안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여기서 멈추었던 물이 다시 흐르게 되면 죽음을 면치 못할 상황에서 오직 믿음으로 요단강을 온전히 건너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를 도합 200만으로 추산할 때(민 26:51), 그들이 그 행군의 폭을 1-2km 정도로 했다면 요단강을 건너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반나절 정도 걸렸으리라 추정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백성은 믿음으로 요단강을 마른땅과 같이 건너는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부터 자신들이 직접 체험한 하나님의 기적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 가나안을 점령하기 위해 가나안 족속들과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대신하여 싸워주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환경을 뛰어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할 것을 깨닫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먼저 우리 스스로 성결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우리의 심령속에 더러운 생각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나님을 거역하는 마음이 들어오지 않도록 날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씻음을 받고 겸손하게 기도할 때 우리는 성결해집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아무리 설교를 많이 듣고 성경을 많이 읽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그 설교와 성경말씀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흘러가는 소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우리가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의 마음에 부딪히는 말씀이 있을 때 겸손하게 아멘으로 받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감사할 것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더 깊은 깨달음을 주시고 우리가 행할 일을 알게 해주시며 우리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올해 한해 동안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