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성도의 영적생활
성도의 영적 생활 골로새서 4:2-6 2008.5.18(주일예배) 들어가는 말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후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은 현재의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어떻게 사느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알고는 있지만 실제의 삶속에서 적용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도 육체로 사는 모습이 많습니다. 성령으로 사는 것을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영적인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적인 삶을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육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과 삶의 갭을 어떻게 메꾸어 나가야하느냐가 우리의 관건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삶은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은혜를 구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영적인 삶을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합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신앙생활의 실제로서 가정에서의 삶과 직장에서의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설명한 후 보다 더 깊이 영적인 삶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성도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기 위하여 영적으로 더 깊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 먼저 기도할 것을 말씀하며, 세상을 향하여 우리 안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경건의 삶과 말을 할 때의 태도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1. 항상 기도하는 생활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골 4:2-4) 항상 기도하는 생활 사도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기도를 항상 힘쓸 것’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경건생활의 가장 기초는 기도생활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대하여 성경은 우리에게 여러 곳에서 지속적으로 기도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눅 18:1; 롬 12:12; 엡 6:18; 살전 5:17; 벧전 4:7). ‘항상 기도하라’ 함은, 어떤 특정의 소원을 가지고 그것을 위하여 심령으로 부단히 기도하는 동시에, 일정한 기간을 내어 그 소원이 간절하여 힘쓰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셔야만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모습이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만일 기도의 주요 목적이 사고(事故)를 만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구하는 것이라면, 사고가 생긴 그 때에만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주요 목적은 그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영적 생명력을 섭취하는 방편의 하나로서 잠시라도 정지하면 안되는 것이니, 마치 우리 육신의 호흡을 일시라도 정지해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읽는 것을 음식에 비유한다면, 기도는 호흡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는 일에 힘을 써야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위에 훈시된 항상 기도함에 관한 두가지 긴요한 주의(注意)을 말합니다. 첫째는 항상 기도를 힘쓰는 자는 간구에만 몰두하고 감사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미래의 축복을 갈망하는 것만이 기도의 목적이 아니고, 과거에 받은 축복을 기억하여 감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잠잠하신 때에도 우리는 역시 감사해야 됩니다. 아버지의 잠잠하심도 자식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항상 기도함에 있어서의 또 한가지 주의할 것은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에 성도들도 낙심하거나 피곤을 느끼는 시험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때에 성도의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는, 기도하는 자의 유익을 위하여 응답의 시기를 먼 장래의 어느 때로 정하신 까닭이겠고, 혹은 그런 기도의 응답은 그 기도하는 자에게 무익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 밖에 다른 선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오묘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자는 혹시 기도 응답을 못 받는 때에도 실망이나 영적 피곤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는 도리어 전보다 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기를 시작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한번 더 각성한 태도로 기도를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감사함으로 각성하는 자라야 기도를 계속 실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할 문을 열기를 기도하라 성도가 기도할 때에 자신만을 기도할 것이 아니라 목회자를 위해서도 기도할 것을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라고 기도의 요청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번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고 신자들에게 부탁한바 있습니다(롬 15:30; 고후 1:11; 엡 6:19; 살전 5:25; 살후 3:1-2).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 특히 복음사역을 위해서 수고하는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고 요청합니다. 사도가 교회에 자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부탁하는 목적은, 자기의 이 세상 생활의 안락이나 형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목적은 복음 전파를 위한 것입니다. 여기 ‘전도할 문’이란 말은 ‘말씀의 문’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전도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가리킵니다(고전 16:9;고후 2:12). 사도 바울은 오랫동안 감취었던 그 진리 곧, 복음을 참으로 알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진리를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아 깨달은 그는(갈 1:15-16), 구원을 알지도 못하고 멸망으로 달음질하는 뭇 영혼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소원이 어찌 그 심령에 불타지 않았겠습니까? 더욱이 그는 하나님에게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해 내는 복음 전도의 큰 사명감 밑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전도할 기회만 찾았습니다(롬 1:14; 고전 9:16). 그가 옥중에서도 바라는 것은 어서 석방되어 자유로운 생활을 좀 누려보자는 것이 아니고, 오직 복음 전도의 기회만을 갈망하고(빌 2:24)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옥중에서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행 28:30-31).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복음이 달음질하듯이 속히 온 세계에 전파되기를 희망하는 때도 있었습니다(살후 3:1). 바울이 로마옥에 갇힌 것도 복음을 위한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중보기도의 결과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부탁한 기도의 결과를 말해줍니다.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그의 부탁대로 골로새신자들이 그를 위하여 기도해 준다면 그의 선교는 잘 성취될 것이라고 합니다. ‘마땅히 할 말’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바울이 마땅히 말해야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붙잡아 그것을 전파하게 하신 까닭입니다(고전 9:16; 마 28:19-20; 행5:32). 그리고 복음은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한 말씀으로서 천상천하에 유일한 진리이므로 이것을 아는 인간은 누구나 그 진리를 전파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복음 이외에 구원의 길이 절대로 없는 것을 아는 자는 그것을 남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밀’은 역시 복음을 가리킵니다(1:26). 그런데 이 복음을 나타내는 방도는 사람의 지혜와 수단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도의 말과 같이(고전 2:1-2,4-5) 성령의 계시와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마11:25). 그러므로 이것을 위해서는 하나님께 의뢰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따라서 바울은 교회의 기도 원조를 요청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의 중보기도가 목회자의 복음전파에 힘을 더해줄 것입니다. 2.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는 생활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골 4:5) 사도는 교회의 할 바 책임으로서 기도를 권장하는 중, 특히 불신자들에게 사도의 전도할 기회가 있기를 기도하라 말씀하고, 골로새교인들에게 불신자들 앞에서 지혜 있게 행하여 전도에 도움이 있기를 희망합니다. 바울은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합니다. 여기 “외인”이란 말은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고전 5:12-13; 살전 4:12; 딤전 3:7). 성도가 불신자들 중에서 가질 행동 원리는 무엇보다 먼저 ‘지혜’인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비판할 때에, 성경을 연구하는 정당한 순서를 밟지 않고 먼저 성도들의 행동과 신분(身分)을 살핍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 행동과 처신에 있어서 성경 진리(지혜)를 실현해야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역시 그렇게 교훈하시면서 순결의 덕을 부가하여 말씀하시며,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이리 가운에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고 하셨습니다. 칼빈은 불신자들 중에서 지혜로 행해야 될 이유 세 가지를 제시하였습니다. 첫째, 성도가 불신자들 앞에서 여간 실수하면,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이 더욱 그리스도의 종교를 멀리하고 구원의 길에 들어서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런 실수는 작은 것 같으나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은 것”(레 19:14)과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그런 실수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음에 비방을 돌립니다. 셋째, 성도가 불신자들 중에서 조심하지 아니하면 그만 그들과 융화되어 믿음에 손해를 받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지혜로 살게 될 때 ‘세월을 아끼는 것’이 요구됩니다. ‘세월을 아끼는 것’은 “기회를 사서 가지라”라는 말입니다. 즉, 빨리 흘러가고 마는 기회를 나 자신이 선한 노력과 희생의 댓가를 냄으로 사서 내 것을 만들라는 말입니다. 성도들은 불신자를 상대하는 시간을 의미 없이 흘러 보내지 말고 그 시간에 지혜롭게 행하면, 무언중에라도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사 둔 시간은 내세에 이르러 영원한 행복을 가져올 것입니다(눅 14:13-14,16:9; 엡 5:16). 3. 말을 은혜 가운데 하는 생활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성도가 지혜롭게 살게 될 때 무엇보다 말을 조심할 것을 권면합니다. 성도가 불신자를 대할 때에 말을 선하고 아름답게 행하기 위하여, 우선 교회 안에서부터 성도들끼리 언사를 선하고 아름답게 하는 습관을 배양해야 될 것을 말합니다(엡 4:29). 그렇게 말을 선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은혜 가운데서’란 말은 ‘은혜롭게’라는 의미로서, 성도는 모든 말에 있어서 ‘친절하게’ 혹은 ‘인자하게’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말을 은혜 가운데서 할 때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고 말합니다. ‘소금으로 고루게 함’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소금을 방부제로 보는 해석으로서(마 5:13; 막 9:49-50; 눅 14:34-35), 부패하고 더러운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의미입니다(엡 4:29). 또한 ‘소금으로 고루게 함’은 모든 사람들에게 말의 영향력이 나타나도록 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의 인격적인 말 한마디가 주변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이 자신들도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말을 할 때 은혜 가운데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언사는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말일 것입니다. 은혜로운 말은 인간의 지혜로는 할 수 없으며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신자들끼리 언사를 친절하게 하면, 대외적으로도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친절한 말로 서로 말을 주고받을 때 그곳에 성령이 역사하시고 성령께서 각 성도들에게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알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도들 사이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친절한 말로 대답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5을 보면, 기독교에 관한 불신자의 질문에 대한 성도의 답변 태도는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 증인으로서 중대한 위치에 섰다는 것을 의식하는 태도입니다. 성도는 항상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을 해야합니다. 이런 신중한 태도가 있는 자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나하나 말을 할 때 말씀을 통하여 조명하시고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4. 영적생활의 증진을 위하여 그러면 우리의 이러한 영적생활이 증진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기도중심의 생활입니다. 기도의 원리를 가르치는 성경 중 마태복음 6:6에 말씀하시는 것처럼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골방은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을 갖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의 가장 귀한 시간을 내어 하나님과만의 은밀한 시간을 가지며 교제하는 기도의 습관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은 우리 주님의 경우 새벽미명을 택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새벽시간을 주님께 드리며 기도할 때 우리의 영성은 날마다 향상 될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1:5-13에 강청하는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할 때 끝까지 기도하는 태도를 가져야합니다. 이것은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항상 기도할 것을 말씀한 것과도 상통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지속적인 기도를 하는 것과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기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 없는 기도는 자신의 생각을 내어놓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분명하게 깨닫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함으로서 우리의 영적생활이 더욱 성숙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이웃과 불신자들을 향한 삶의 모습입니다. 마태복음 5:44에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우리의 사랑을 보여줄 때 우리의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3:8에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또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삶이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성령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사는 삶만이 우리로 하여금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말은 거룩한 말을 하고 진실한 말을 하는 삶이어야합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 새사람을 입은 자의 삶의 태도중 성도의 말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데, 거짓을 말하지 않고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할 것(엡 4:25)과 무릇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여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할 것을 말씀합니다(엡4:29).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말을 위하여 스스로 힘쓰지 아니하면 다른 사람은 물론 우리의 말하는 것을 우리의 심령이 듣고 우리가 도리어 더렵혀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