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 마태복음 16:13-20 2008.2.3(주일예배) 들어가는 말 교회는 성도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중심은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성도들과 교제를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 이처럼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교회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생각할 때 교회 건물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의 건물을 가리켜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성전은 구약시대의 예배장소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하던 곳을 성막이라고 불렀습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대로 지은 곳으로서 항상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성막을 대신하여 솔로몬이 지은 곳이 성전입니다. 구약에서의 성전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므로 신약에서의 교회의 예배당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지만, 신약에서 성전을 가리켜 말할 때 교회의 예배당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당신의 몸을 가리켜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음으로 예수님의 몸이 성전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 한사람 한사람을 성령의 전이라고 하여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 마음에 성령을 모신 성도들 각 사람이 성전인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성경에서 교회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아야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최초로 교회라는 말을 사용한 곳이 바로 오늘 읽은 마태복음 16장입니다.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교회라는 말(헬라어로 에클레시아)을 사용할 때 무엇을 말하고자하는지 살펴봅시다. 1.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3-16절) 세상 사람들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예수님은 복음 전파를 하시다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갈릴리 호수 북방 약40km 지점, 헬몬산 기슭 해발 약 345m에 위치한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입니다(막 8:27). 이 마을은 원래 조그마하였으나 헤롯 대왕의 아들 분봉왕 헤롯 빌립(눅 3:1)에 의해 확장되었습니다. 빌립은 로마 황제 '디베료 가이사'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이곳을 '가이사랴'라 하였고, 거기에 자기 이름을 추가하여 '가이사랴 빌립보'라 불렀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이 이방인으로 우상 숭배자들이었습니다. 그중 원주민들은 바알을, 헬라계 사람들은 산림과 야수(野獸)의 신(神)인 '판'(pan)의 산당을 지었으며, 헤롯은 가이사 아우구스도에게 아부하기 의하여 이곳에 황제 신전을 건립해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공생애를 중간 결산하시고 이제 본격적으로 십자가 수난 사건을 위하여 제자들을 훈련시킬 필요성을 느끼시고 그들에게 제자로서의 핵심적 사항을 문답식으로 교육시키셨습니다. 그 첫째 질문은 예수님 자신, 곧 인자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자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나타내실 때 즐겨 표현 하신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인자'라 표현하신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위격과 성품을 가지신(요 5:26), 즉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골 2:9)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신 완전한 사람이심을 암시합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다니엘서 7:13, 14에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구약에서 예시하고 있는 구원자이신 메시야 또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키 위해 오신이심을 암시합니다(21절; 20:18,19,28). 제자들이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평가에 대하여 대답합니다. ‘더러는’ 세례요한으로 더러는 엘리야로 더러는 예레미야로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인자'이신 예수님께 대하여 온전한 지식을 갖추지 못했음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비록 대부분이 다시 오기로 약속된 예언자적 인물이나 메시야와 연관이 있는 인물로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아무도 예수님의 메시야이심을 정확히 간파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세례요한이라고 생각한 것은, ‘세례 요한’이 하나님을 위해 가장 최근에 폭발적인 영과 능력(눅 1:17, 80)으로 일한 자이며, 그의 메시지가 예수님의 천국 선교 메시지와 거의 일치했던(4:17) 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엘리야로 생각한 것은, ‘엘리야’가 구약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백성들의 타락과 종교적 불의를 꾸짖었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왕상 19:10), 말라기에서 바로 그가 메시야가 오시기 이전이 그분의 선구자로서 와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한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말 4:5,6).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엘리야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11:14). 이처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엘리야로 오해한 것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보지 못한 비신앙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예레미야로 생각한 것은, ‘예레미야’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가장 많이 눈물을 흘리며(렘 9:1; 14: 17; 31:16; 애 1:2,16) 애쓴 선지자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을 향해 눈물지셨던 예수님을 예레미야와 쉽게 연결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눅 19:41). 또한 예수님을 ‘선지자중의 하나’라고 말한 것은, 그 당시 종말론적 기대들이 매우 고조되어 있었음을 입증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신 18:15), 이사야(에스드라하 2:18), 에스라(에스드라하 14:9)처럼 다시 부활하여 일련의 종말을 예비하는 큰 선지자가 나타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 제자들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고백을 들으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십니다. 이는 분명 예수님께서 앞에서 말한 사람들의 견해들(14절)에 대해 못마땅해 하셨음을 암시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정확히,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자들에게 던지신 것입니다. ‘너희는’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한 두 제자에게만 질문한 것이 아니라 특별히 12제자들 각자에게 관심을 두시고 강조하여 질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고백은(16절) 자신을 위시한 12제자 모두를 대신하는 답변인 것이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다른 제자보다 먼저 대답을 합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주 예수에 대한 고백 중 가장 완벽한 것 가운데 하나로서 기독교 신조(信條)의 핵심을 이릅니다. 이 고백 가운데에 예수님의 인성('그리스도')과 신성('하나님의 아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으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며 하나님의 종이시라는 뜻입니다. 이는 그분의 인성(人性)을 대변해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21절; 20:28; 눅 24:7). 구약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은 제사장, 왕, 선지자들이었습니다(출 29:29; 30:30; 삼상 16:13; 26:11; 왕상 19:16; 시 89:20; 사 45:1).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 왕,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실 참 메시야이셨던 것입니다(1:1; 눅 1:32,33; 행 3:22, 23; 히 4:15; 5:6,10).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은 그분의 신성(神仙)을 강조하는 말로서 그분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보냄 받으신 분(요 7:28, 29;8:18,19)이요, 하나님과 하나되신 하나님의 본체시라는 점(요 5:17,18;10:29,30 33)을 나타냅니다. 2. 신앙고백 위에 세워지는 주님의 교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7-18절)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기뻐하시면서 그를 칭찬하십니다. ‘바요나 시몬아’라는 말은 ‘요나의 아들 시몬아’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라고 부르신 것은, 갈릴리 호수의 어부출신인 시몬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참다운 신앙고백을 한 것이 자신의 지혜, 신분, 지식 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몬베드로의 신앙고백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였음을 분명히 깨닫게 하기 위해 그의 옛 이름을 그의 아비의 이름과 더불어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복이 있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 이유는,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던 원인이 베드로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게 하신 결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게 하다'('아포칼류토')라는 말은 '계시하다', '보여주다'는 뜻으로서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뜻을 스스로 알리실 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알게 하심으로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에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혈육’은 타락한 본성을 가진 죄인된 인간 그 자체와 그의 본성적인 재능, 지식, 지혜 등을 뜻합니다(갈 1:16;엡 6:12;히 2:14). 베드로의 이러한 천성으로서는 도무지 영적 진리를 알 수 없었습니다. 즉 타락한 이성, 거듭나지 못한 분별력으로는 복음의 비밀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알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즉 성부하나님이십니다. 영적 진리는 성부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영적 능력의 소지자에게 한정적(限定的)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고전 2:11-14). 이러한 영적 분별력이야말로 베드로가 받은 '복'의 핵심적 요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을 뜨거운 사랑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서 ‘내 아버지’란 호칭을 사용하셨습니다(11:27; 20:23: 26:39, 42).
신앙고백위에 세우시는 주님의 교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의 신앙고백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라고 하십니다. '베드로'('페트로스')라는 말은 '돌' 또는 '반석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돌멩이, 돌덩이' 등을 의미합니다. 이는 아람어 '게바'(요 1:42; 고전 15:5; 갈 1:18)에 해당하며, 이 '게바'는 예수님 당시에 널리 통용되던 이름입니다(4:18). 예수님께서는 일전에 그를 향해 이같은 이름을 주실 것이라 예언하셨는데(요 1:42), 이제 그것을 실현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 반석(盤石)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하십니다. '반석'(페트라)은 베드로가 증거하는 ‘신앙고백’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고백위에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가 예수님께 속한 교회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교회'(에클레시아)라는 말은 세상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구성되었음을 암시합니다(요 1:16,19). 예수님은 이제 당신이 메시야로 인정되자, 당신의 에클레시아, 자기의 백성, 곧 자기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비록 당시 쿰란 공동체가 스스로를 언약 백성으로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오직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자기의 백성, 곧 자기의 교회(에클레시아)라 말씀하십니다. 정녕 예수님을 믿고 그의 피로써 확립된 새 언약의 백성만이 예수님의 ‘교회(에클레시아)’라 자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26:28). 구약에 이미 '교회'라 불리우는 광야의 이스라엘 무리가 있었지만(행 7:38) 이는 장차 주님께서 세우실 교회의 예표(豫表)였고, 실제는 주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성도들 위에 임하신 오순절 때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근거하여 새생명으로 거듭난 성도들 위에 임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로 연합하여 주님의 몸, 즉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행 2:1-4;4:32;고전 12:13).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예수님은 신앙고백 위에 세우신 주님의 교회에 대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에서 '음부'('하데스')라는 말은 ‘지하 세계’, ‘죽은 자의 거처’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음부의 권세’란 '음부의 문'(gate of Hades)이라는 의미로서, 음부로 들어가는 문에는 항상 죽음이 따르게 됩니다. 결국 죽음의 세력이 교회의 한 부분도 이길 수 없거나, 비록 잠시 이긴다 하더라도 곧 패망하여 영원히 굴복할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하고 있습니다. 실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설립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육체적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문’을 깨뜨리시고 죽음의 정복자로서(롬 6:9;계 1:18) 군림하시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물리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생존하셔서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保證)이 되실 뿐 아니라 교회의 영속성의 영원한 지지자(支持者)가 되십니다(고전 15:50-58). 교회는 신앙고백을 하는 공동체 예수님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세우신 교회공동체는 베드로와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하므로 구원을 받아서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요 하나님’이시라고 신앙고백을 하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공동체는 주일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릴 때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립니다. 또한 교회공동체에 속한 성도들은 세상을 향하여 신앙고백을 합니다. 교회공동체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주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신앙고백을 해야합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3. 주님의 권세를 받은 교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19-20절) 이 땅에서 매고 푸는 권세를 가진 교회 예수님은 베드로와 사도들의 신앙고백위에 세우시는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본문은 이사야서 22:22에서 유래한 내용으로서 그곳에는 다욋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의 절대 주권을 예언하고 있습니다(계 3:7). 여기서 '열쇠'는 청지기로 임명된 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서 창고관리에 대한 전권(全權)을 위임하는 표식, 문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천국'은 지금까지 이야기되고 있는 교회, 곧 넓은 의미에서의 그리스도 교회를 가리킵니다. 실로 예수님께서는 바른 신앙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장차 세워질 교회에서 어떤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12사도를 대표하는 베드로와 12사도,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 교회 전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의 열쇠'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베드로로 대표되는 교회가 계시에 의해 점차 깨달아지는 천국 복음을 선포함으로써(4:23) 상당수의 사람들에게는 천국을 열어 주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에게는 천국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위탁하신 '천국의 열쇠'는 사도들을 위시한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인정과 함께 자신들의 사역을 수행하고 그 권위를 세우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입니다. 전통적인 랍비들의 용어 사용법에 의하면 '매다'(데세스)란 '금지하다' 또는 '금지하여 불법임을 선포하다'라는 뜻을, '풀다'(뤼세스)란 '허락하다' 또는 '허락하여 합법임을 선포하다'라는 뜻을 내포한다고 합니다. 본문의 '풀고', '맨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약속하신 교회 치리권과 그의 권위의 탁월함을 근거로 해서 그가 제정하는 규칙과 그의 사도적 권위에 합당하게 권면하고 실행한 내용들이 하늘에서도 인정되고 비준(比準)될 것입니다. 주님의 권세를 나타내는 교회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복음전파를 통하여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복음전파에 의하여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는 곳에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성취되고 천국의 삶이 보장되지만, 복음을 배반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거부하는 자들은 천국으로부터 배제될 것입니다. 비록 어떤 사람이 교회공동체에 속했던 자라 할지라도 그가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교회(천국)로부터 추방당할 것입니다. 이 모든 권세를 사도들에게 주어졌고 그것은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들에게 계승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공동체에 속하여 목사의 지도에 따라서 복음을 듣고 배우며 복음전파를 통하여 주님의 권세를 나타내는 일에 힘을 써야합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사도들의 신앙고백 위에 주님이 세우시고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사도들과 동일한 신앙고백을 할 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고백은 바로 주님의 교회로서 존속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주는 그리스도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고백을 잊어버린다면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온전히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온전한 신앙고백을 통하여 주님의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서가게 됩니다. 또한 교회가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음을 생각하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여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길을 인도해야할 것입니다. 바로 나를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을 위해서 주님께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