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노아의 실수(창 9:18-29)
2007.8.1(수요예배)
노아의 실수
창세기 9:18-29
들어가는 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을 축복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증거로서 무지개를 구름 가운데 두시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물로 이 땅을 심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노아와 세 아들을 통하여 온 땅에 인류가 번성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새로운 인류의 조상으로서 후손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야할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계속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계속하여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그 조상 에녹처럼 죽음을 당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노아에게 약점이 들어났습니다.
1. 술에 취한 노아의 실수
노아의 후손들의 번성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18-19절)
하나님께서 노아와 세 아들들에게 축복하신 대로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 즉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은 점점 번식하여 온 땅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함이 가나안의 아비라고 소개된 것은 다음에 일어날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노아의 술취함과 벌거벗음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20-21절)
노아는 농사를 짓고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성경에서 포도나무는 항상 풍요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또한 포도주는 죄악과도 연관되어 나옵니다. 포도열매로 포도주를 만들어서 마신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성경에 나오는 최초기록은 노아시대입니다. 아마도 노아는 홍수전에 사람들이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포도주를 만들어 마신 것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노아는 세월이 지나면서 안락한 삶이 계속되자 마음에 즐거움을 찾은 것 같습니다.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였습니다. 아마도 노아는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하고 포도주 한잔 정도야 건강에도 좋으니까 마셔도 괜찮다고 마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세 잔이 될 때 노아는 술에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자기 억제능력을 상실합니다. 그는 이제 이성을 잃어버리고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습니다. 노아의 아내가 곁에 있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는 수치심을 잊은채 벌거벗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 때문에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고 경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에서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있어도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씀이 없으므로 술을 마시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말을 합니다만, 술을 마시면 취하는 법입니다.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술은 취하기 마련이고 술에 취하면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실수를 하지 않고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술 취하지 않는 것이고, 술 취하지 않기 위해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책입니다.
아비의 수치를 알리는 함과 감추는 셈과 야벳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22-23절)
노아가 술 취하여 벌거벗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발견한 사람이 잇습니다. 그는 노아의 차남인 함이었습니다. 성경이 함을 가나안의 아비라고 굳이 소개한 것은 아마도 가나안이 먼저 노아의 벌거벗은 것을 보고 그 아비 함에게 알린 것 같습니다. 함은 그 아비 노아가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그 하체를 보고 두 형제에게 알렸습니다. 고대근동에서 아비의 하체를 보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그런데 함은 아비의 하체를 보고서 그 모습을 가려주기는커녕 두 형제에게 그 사실을 알린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서 알리므로 비방하는 것이 됩니다. 더구나 아비는 자기의 생명의 근원인데도 불구하고 아비의 수치를 드러내고만 것입니다.
그러나 함으로부터 아비의 벌거벗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를 가려주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눈으로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을 친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아비의 하체를 보는 것을 스스로 금한 것이고, 또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면 그것을 말하기 쉬운 법이므로 아예 보지 않으려고 작정한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허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으려고 합니까? 스캔들이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 일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스캔들은 싫지만 다른 사람들의 스캔들은 재미있어합니다. 그래서 주간잡지사는 연예인들의 스캔들을 취재해서 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은 것을 추측해가면서 기사화하고 있어서 연애들은 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입니다. 요즘에는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스캔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줄 것을 말하며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줄 때 언젠가 자신이 실수할 때 다른 사람에 의해서 자신의 허물이 가려지는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2. 가나안을 저주하고 셈과 야벳을 축복하는 노아
저주받는 가나안과 축복받는 셈과 야벳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24-27절)
노아가 술이 깨어서 상황을 알고 보니 함이 자기의 수치를 드러내게 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화가 나서 가나안을 저주합니다. 가나안은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가나안의 후손들이 영원히 종의 신세로 전락할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종들의 종이 되니 그들의 신분을 비천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나안은 노아의 후손인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에 의하여 멸족을 당하거나 그들의 종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함이 형제들에게 아비의 일을 알렸는데 가나안이 저주를 당해야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됩니다. 이에 대하여는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먼저 함이 노아의 하체를 보고 형제에게 알리게 된 것은 가나안이 먼저 보고 아비 함에게 알렸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두 번째는 만일 노아가 함을 저주하면 함의 후손 모두가 저주를 당하므로 가나안만 저주한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어찌됐든 노아는 자신이 수치를 감춰주지 않고 그러낸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함으로서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을 남깁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서 말하는 자는 결국 그 일로 자신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신이 판단한 그 판단으로 판단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결코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 안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노아는 셈에게 축복합니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장막에 거하시게 될 것입니다. 27절의 말씀에 대해서 두 가지로 해석이 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셈의 장막에 거하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 한글성경대로 하나님이 야벳을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전자의 해석은 하나님이 셈에게 영적인 축복을 주시어 셈의 후손을 통하여 하나님이 축복이 전달될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이 축복을 받을 것(창 12:3)을 말씀하신 것을 예언하는 것으로 봅니다. 후자의 해석은 야벳이 셈의 장막에 거하므로 셈의 후손에 의해서 야벳의 후손이 복을 받을 것을 예언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즉 셈의 영적인 축복이 야벳을 통하여 전 세계에 전파될 것을 말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상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출발했지만 로마에서 꽃피웠고 그것이 미국을 통하여 아시아에까지 전파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지 셈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은 그가 장자로서 아비의 실수를 감추려고 노력한 것이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노아의 죽음의 의미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 오십년을 지내었고, 향년이 구백 오십세에 죽었더라.”(28-29절)
노아는 홍수 후에 350년을 지내고서 950세에 죽었다는 기록으로 노아의 일생을 끝을 맺습니다. 그가 홍수전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에녹과 같은 축복을 받을 가능성이 보였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실수를 함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잘 이뤄지질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주님과의 계속적인 교제가 온전히 이루어지질 못할 때 죽음을 맞보질 않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축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는 인류에게 계속하여 영향을 미칠 것을 보여줍니다. 이제 노아의 시대는 막을 내립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셈과 야벳이 아비 노아의 허물을 감추어 준 결과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감추어주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