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 설교

[스크랩] 우리를 부르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

kaporet 2007. 5. 28. 11:50
 

2007.5.27(주일예배)

우리를 부르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12:1-3


들어가는 말


    우리는 때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일에 대해서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계명에 따라서 살도록 강요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구속하는 굴레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구원하신 것은 우리를 축복하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할 때 그들을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생명나무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셔서 에덴동산에 근접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시고 여인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 구원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벌거벗은 몸을 가리기위해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어야했던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그들의 죄를 가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오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의 모든 죄를 가려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신 후 다시 하나님의 동산으로 우리를 부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의 이름은 아브라함입니다.



1.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축복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먼저 아브라함이 자기의 고향을 떠나야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절)


    하나님께서 구원의 약속을 이루시고 인류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축복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서 받을 축복이며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이 자기의 고향을 떠나야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인 것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란 이름은 창세기 기자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선택된 백성을 향한 그 분의 언약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말씀합니다(2: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일반 사람들도 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아브라함이 계시를 받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의 심령 속에 내적으로 임했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이르시되’(‘아마르’)라는 말의 의미가 대개 ‘말한다’, ‘이야기한다’란 점에 비추어볼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직접 말씀하셨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를 떠나라고 말씀하실 때, 본토에 대해서 칼빈(Calvin)은 아브람이 구체적 소명을 받은 것을 우르에 있을 때였다고 주장합니다(11:31). 그러나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 떠난 곳이 '하란'인 점에 입각할 때(4절) 이는 하란, 더 나아가 우르와 하란을 포함하는 메소포타미아 전지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본토는 친척과 아비가 있는 곳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배경이 되어줄만한 곳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배경이 되어줄 그 곳을 떠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인간적인 힘을 의뢰할만한 것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첫걸음입니다.

    “떠나 ....가라”라는 말은 ‘누가 네 뒤에 남든지 상관 말고 너를 위하여 떠나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본토를 떠나는 것이 그의 친척들과 상관되는 여러 가지 관계를 고려하지 말고 아브라함 자신을 위해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다른 사람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것은 개개인 한사람 한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받고도 자신의 가족문제 때문에 머뭇거린다면 롯의 아내처럼 구원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기독교 역사는 이러한 떠남과 분리의 역사인데 오늘날 우리 성도들 역시 죄악된 이 세상에서 분리되어 의와 거룩을 좇는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할 것입니다(롬 12: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라고 명하신 “내가 네게 지시할 땅”은 아직 구체적으로 어딘지 모르는 미지의 땅입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보여줄 그 땅’입니다. 여기서 ‘보여 줄 그 땅’은 아직까지는 보여지지 않으나 미래에는 구체적으로 보여질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땅’은 아브라함으로서는 불명확하나 하나님으로서는 이미 작정해 놓은 가나안 땅을 의미합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성도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계획하셨으니 잠자코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그에게 큰민족을 이루고 그 이름을 창대케 하시며 그가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2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가기만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축복은 세가지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시고, 그를 복의 근원으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먼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는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Living Bible은 문두(文頭)에 ‘네가 그렇게 하면’(If you do)이란 말을 부기하고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여기서 ‘큰 민족’ 이란 단순한 숫자적으로 인구가 많은 것 뿐 아니라 영적으로 위대한 민족을 가리키는바 곧 ‘이스라엘’에 적합한 명칭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그의 적은 수의 친척을 떠나기만 하면 그 보상으로 오히려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시리라고 보장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어 그 이름을 창대키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 아직껏 무자(無子)한 아브라함(11:30)이 많은 무리의 아비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는 근거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니 그분께서 원하시고 또한 복을 내려 주시기만 하신다면 인간적인 모든 제약은 사라지고 맙니다(롬 4:18).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를 직역하면 ‘내가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다’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유명케 하여 그 이름이 길이 회자(膾炙)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아브라함의 이름은 위대하게 되었습니다. 즉 열국의 아비(17:4,5), 선지자(20:7), 하나님의 방백(23:6), 여호와의 종(시 105:5,6) 하나님의 벗(약 2:23) 등의 명칭을 부여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은 선민 이스라엘의 시조(始祖)로서, 또한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믿음의 조상으로서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높이시는 이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시니 겸손한 자는 높이 들림 받지만 무릇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지고 말 것이다.

    세 번째 복은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입니다.  이 말은 곧 ‘너는 복이 될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아브라함으로 인한 물리적 풍요(슥8:12)를 의미하며, 여기서 복은 영적인 복으로서 곧 아브라함은 그로 말미암는 복의 기준이 되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으로 말미암는 영적 축복이란 단순한 아브라함 개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긍적으로는 그의 가계(家系)에서 약속된 ‘여자의 후손’(3:15)인 메시야가 나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과 영생은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미칠 수 있는 것이니(살후 2:13,14) 그 같은 메시아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가리켜 ‘복의 근원’이라 칭함은 당연합니다.


    아브라함이 축복받은 결과  그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3절)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시어 그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아브라함과 연관성을 가져야만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대한 다른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서 그들이 축복을 받기도 저주를 받기도 하게 하신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 하리니” 이 말은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각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이 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상호 공수 맹약을 맺으시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제 아브라함의 이웃은 아브라함과의 관계에 따라 그들도 각각 하나님께 축복과 저주를 받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이 원리는 신약 시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에도 적용됩니다.

    여기서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이란 말은, ‘저주’(칼랄)의 의미가 ‘감소시키다’, ‘낮게 여기다’는 뜻으로, 곧 남을 멸시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특별 맹약을 맺은 하나님의 종 아브라함을 멸시여기는 행위는 곧 하나님을 업수히 여기는 행위가 된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처리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저주하리니” 여기서의 ‘저주’(아라르)는 하나님의 법에 따른 공적 저주를 의미하는데 이에는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인 징계 조처와 형벌이 따르게 됩니다(삼상2:30,31,32,33).

    열방은 아브라함과의 관계에 따라서 축복을 받기도 하고 저주를 받기도 할 것입니다. 특별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라는 말씀은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2절)이 되겠다는 말씀에 대한 보충, 확대 설명입니다(갈 3:8). 축복은 타락 결과 인간에게 주어진 저주(2:17;3:16,17,18,19)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니, 이러한 축복은 단순한 물질적 축복 뿐 아니라 죄를 사해 주는 영적 축복을 포함합니다. 즉 본질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구상의 모든 민족이 자신의 죄에 대하여 해결받고 진정한 삶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리라는 복된 언약입니다(눅 24:47).



2.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축복하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고 아브라함의 유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까지 미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고 아브라함의 유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받을 자니라”(갈 3:29)


    성도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서 그리스도에게 속하면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유업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면...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는 말씀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성도가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는 길은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나 인종에 관계없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主)로 영접한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왕시오 주인이 되신다고 고백하는 자입니다. 모든 일에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고 노력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의 유업을 함께 받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축복의 결국은 하나님 나라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유업,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하신 유업은 하나님 나라의 유업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요한계시록 22:1-5에서 설명합니다.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계 22:1-5)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으셨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생명수가 흐르고 생명나무가 있는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생명나무는 만국을 소성케 합니다. 그러므로 그곳에서는 상한 자가 금방 치유함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빛되신 하나님이 성도들과 함께 계시며 빛을 비취심으로 등불과 햇빛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와 함께 하시니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시니 그들의 눈물을 씻어주시며 다시는 사암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습니다(계 21:3-4).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를 부르시고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그처럼 복을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유효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동경센조쿠중앙교회
글쓴이 : kapore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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