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 설교

[스크랩] 인간의 타락(창:1-7)

kaporet 2007. 2. 22. 16:10
 

2007.2.21(수요예배)

인간의 타락

창세기 3:1-7


들어가는 말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첫 사람 아담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동산에 두신 후 돕는 배필을 주시어 가정을 만드시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가정을 주신 것은 그를 축복하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하나님의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기 위하여 전심을 다하여야 했습니다. 그것은 일을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일에 초점을 맞출 때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다른 어떤 일보다 소중하게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일을 생각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끝내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고 말씀을 거역하게 됩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저주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1. 뱀의 유혹(1-5절)


    간교한 뱀의 유혹을 받은 여자는 금방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1-3)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모든 것이 선하므로 하나님께서 보기에 좋았더라고 창세기 1장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는 말씀은 사단이 뱀을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간교하다’라는 말은 간사하고 교활하다는 말로서 다른 이를 속이고 얕은 수의 속임수로 남을 넘어뜨리려는 말로서 사단의 행위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여기서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의 하나라기보다는 이미 사단의 도구가 되어버린 상태를 말하므로 사단과 동일시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사단을 옛 뱀이라고(계 12:9; 20:2) 소개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뱀(사단)은 여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도전적으로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하여 질문한 것입니다. 이 질문의 의도는 여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을 깨드리기 위한 악의적인 질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동산의 좋은 실과를 임의로 먹게 하셨고 생명나무도 먹을 수 있게 하셨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은 금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나무와 생명나무는 임의로 먹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동산의 풍요로움을 아담과 하와가 마음껏 누리며 살게 하셨습니다. 다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금한 것은 그들의 지식이 현재로서도 충분하며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그것만은 하나님께 돌리게 하시기 위하여 금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뱀은 여자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질문을 하여 마치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자유를 금하신 것처럼 말하므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이간시키려는 악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단의 계략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항상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떠나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뱀의 질문에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대답합니다. 여자는 두가지면에서 왜곡된 대답을 합니다. 하나는 과장된 표현을 하고 또 하나는 축소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무의식중에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며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말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뿐입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과장하여 말하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뢰감이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또한 여자는 ‘먹으면 죽을까 하노라’라고 대답하므로 하나님의 말씀하신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희석시킵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시어 경계하셨는데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죽지 않을 수도 있는 듯한 뉴앙스를 풍기면서 말씀을 왜곡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성을 약화시키려는 사단의 계략에 말려들어간 태도입니다.


    여자가 뱀의 유혹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자 뱀은 거짓말을 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


    뱀은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대답하므로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잡은 순간 단호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격적으로 부정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뱀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서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진실한 것처럼 말합니다. 사단은 언제나 자신을 광명한 천사처럼 가장하고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뛰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언제나 거짓말쟁이요 인간을 파멸하기위해서 거짓을 말할 뿐입니다.

    뱀은 인간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고 거짓을 말하고 나서 또 다른 거짓을 말합니다. 뱀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고 말하여 마치 인간이 시력이 좋아져서 사물을 더 잘 보게 됨으로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눈이 밝아’라는 말은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보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눈이 밝아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고 말한 뱀의 말은 금방 거짓으로 판명될 것입니다. 인간이 눈이 밝아 진 것은 죄를 보는 눈이 밝아져서 자신과 상대방의 벌거벗은 수치를 발견할 뿐입니다. 선악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고유권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악을 아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처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단의 어리석음을 단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선악을 아는 지식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으로 인해 사람이 하나님처럼 된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의 지식이 높아짐에 따라 마치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사단의 유혹에 의한 것입니다.


2. 여자의 탐심과 인간의 타락(6절)


    여자는 뱀의 거짓말을 듣고 그의 마음이 유혹되어 선악과를 본즉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한 것을 보고 그 실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줍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여자는 뱀의 유혹의 말을 듣고 보니 자신의 지금까지의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한 지식이 잘못 된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리고 뱀의 말이 진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 여자의 눈에 비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타락의 과정이 보입니다. 인간이 타락하는 것은 먼저 생각하는 관점을 바꾸게 합니다. 그리고 바꾸어진 관점으로 사물을 보게 될 때 여태까지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해’ 금지되어 온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드리고 항상 불만을 가졌던 여자에게 있어서 뱀의 말은 진리처럼 들렸고 그 결과 지금까지 금지되어 온 선악과가 갑자기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게 된 것입니다. 사단의 유혹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통하여 찾아옵니다(요일 2:16). 특히 금지되었던 것에 대한 욕망은 반대로 상승하기 때문에 금지가 해지된 순간 그 욕망은 극에 달하게 되고 바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마음속에 욕망을 느끼는 순간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습니다.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도록 여자를 지도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뱀의 유혹을 받을 때 보호해주고 선악을 아는 나무 실과를 따먹으려할 때 그것을 저지했어야합니다. 그런데 그는 여자의 행동을 보고서도 수수방관하고 급기야는 여자의 범죄에 가담하여 자신도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 심리입니다. 인간은 사단의 유혹을 받을 때 처음에는 저항감을 느끼지만 몇 번 반복하여 유혹을 받으면 점차 저항감이 줄어들고 다른 사람이 범죄하면 즉시 그 저항감이 없어져서 죄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사단을 대적할 것을(엡 6:11) 말씀하고, 히브리서 기자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할 것’을 말씀합니다(히12:4). 우리가 죄에 대하여 이길 수 있는 것은 대항하는 것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말씀을 의지하여, 성령을 의지하여 대항할 때 죄가 물러갑니다.


3. 죄의 결과(7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즉시 죄의 결과 자신들의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여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듭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 3:7)


    아담과 그 아내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결과 눈이 밝아졌습니다만, 그 눈은 하늘(하나님)에 대해서 보는 눈이 아니라 이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졌고 죄를 보는 눈이 밝아졌습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상대방의 벗은 몸을 보게 되었고 자신의 벌거벗은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자신의 수치를 가립니다. 여태까지는 한 몸을 이루어서 전혀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상대방의 벌거벗은 모습이 죄를 범한 순간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죄인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보려고 하고, 자신의 허물은 감추려고 합니다. 이것이 죄인들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나면 완전히 다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감추어주고, 이전에는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에 바빴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허물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사해주심을 고백합니다.


나가는 말


    하나님의 축복의 동산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뱀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고 맙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금방 거룩해져서 성결한 삶을 살게 될 줄 알지만, 성결한 삶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 대하여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죄의 유혹이 있을 때 그 뒤에 있는 사단의 속임수를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죄의 유혹으로 일단 죄를 짓기만 하면 우리는 죄의 종노릇해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대항해서 싸우며, 혹시 우리가 죄를 짓고 넘어져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깨끗이 씻음 받음으로 다시 새로워져 거룩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또한 죄의 유혹이 올 때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힘써 대항해야합니다. 이를 위하여 말씀을 묵상함으로 죄의 유혹이 있을 때마다 잘 분별해야합니다. 어찌하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 힘쓸 때 우리는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 임재 앞에 영적인 축복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출처 : 동경센조쿠중앙교회
글쓴이 : kapore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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