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 설교

[스크랩] 하나님께서 찾으시는예배

kaporet 2006. 8. 30. 13:56
 

2006.8.27(주일예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

요한복음 4:19-26


I. 들어가는 말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매주일 마다 주일예배를 드리고 수요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금요일은 금요기도회로 모입니다. 기도회도 형식은 예배의 형식으로 드리고 기도회를 계속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교회의 공적인 모임은 예배의 형식으로 모인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들이 예배에 대해서 잘 모른채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의 형식이나 방법은 교회를 다니면서 조금씩 배우지만 예배의 본질을 몰라서 실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예배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배의 개념을 살펴봅시다.

    먼저 예배란 ‘엎드려 절하다’ ‘섬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주일날 드리는 공예배는 유형교회가 함께 모여서 함께 하나님께 절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섬기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은 먼저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을 인식하면서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예배 중심이어야 합니다.

    둘째로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예배인 것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하나님께 경배하는 일, 주님 앞에 예배하는 일입니다. 참된 의미의 예배는 무엇입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하나님 앞에 감당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사명이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배와 관련된 세 존재를 생각합니다.

    (1)하나님과 관련해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분이시니까 우리의 경배를 받아 마땅하십니다”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2)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여 드리느냐 하면 “우리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무릎을 꿇어서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하는 존재입니다.”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을 경배하면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직접 통치하시고 계심을 인정하고 서 있는 우리가 있음을 이 세상 앞에 나타내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넷째로 예배를 왜 드립니까?

    (1)요한계시록 4,5장에 우주적 예배가 나타납니다. 네 생물(천사상징, 피조물계 전체 상징)이 경배와 찬양을 하고, 24장로들이 경배하고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던집니다. 면류관은 영광을 상징합니다. 주께서 상을 주시면 황송하여 주께 돌리게 됩니다.

    (2)경배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계4:11). 또한 하나님께서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계 5:9-12).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예배는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속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II.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요? 본문의 내용의 시작은 요한복음 4장3절로부터 시작합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우물가에서 예수께서 한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면서 시작한 대화는 점점 깊은 수준으로 가면서 예수께서 “내가 주는 물은 생명의 물, 그것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물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얻을 수 있기를 구한 여인은 예수께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는 말에 자기의 남편이 없음을 말하고, 예수께서 “네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인은 자신의 과거를 아신 예수님을 선지자로 이해하면서 예배에 관해 질문합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지 않는 자들도 자기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섬긴다고 했을 때 그 예배하는 행위에 대해 아주 깊이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종교는 예배할 때 정성을 다하지만 자기의 삶과는 관련이 별로 없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예배에 심각한 잘못은 예배의 대상이 잘못되어있고, 그 예배 행위와 삶을 분리시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요 4:23)고 말씀하십니다. “이때라”하는 때는 메시야가 오신 때, 예수님이 오신 때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다음에는 어느 곳에든지 상관없고 우리가 참되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주님께서 일정한 날을 정해 놓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예배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입니다.


1.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19-21절)


    (1)예배에 관한 질문(19-20절)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 여자는 예수님의 초자연적 지식에 놀라 이제 겨우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았습니다. 그 여자는 중심에 있어서 이제부터 종교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인간은 초자연(하나님)을 접촉하기 전에는 진정한 종교심과 영적 사색을 가져보지 못합니다. 그 여자는 이제부터 정상적으로 예수님에게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여야 할 것을 본래부터 주장하여왔습니다(신 12:5, 16:2, 26:2). 사마리아 사람들은 게르심산에서 예배하여야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전을 게르심산에 세웠습니다(400 B.C). 이것은 아마도 스룹바벨 성전을 지을 때 사마리아인들이 참여하려한 것을 반대한 유대인에 대해서 반발하여 지은 것 같습니다. 그 뒤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미워하였습니다.


    (2)아버지께 예배할 때(2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그 여자의 의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신약적 예배를 보여 주시므로 문제 해결을 주십니다. 곧, 이제부터는, 게르심산이니 예루살렘이니 할 것 없고, 오직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영적 예배를 드릴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예배할 때"란 말은 이 부분에 있어서 커다란 의미를 가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신약적 예배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대하는 예배는 어떤 장소의 제재를 받는 외부적 예배가 아니고, 성령을 받은 자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의식(意識)하고 부르면서 드리는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22-24절)


    (1)알지 못하는 예배와 아는 예배(22절)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 5경만 믿고 다른 선지서들을 버렸으니만큼,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에 있어서 잘못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구약을 전부 가졌으니 만큼, 진정한 종교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받아 보수하였고 메시야(그리스도)도 그들 중에서 나오실 것인 만큼,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고 말씀하시게 되었습니다.


    (2)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 때(23-24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신령으로 예배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위의 21절에 벌써 말한 "아버지께 예배함"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어떤 지방, 어떤 민족이 독점적으로 소유할 신(神)이 아니십니다. 어디서든지 누구든지, 성령으로 거듭 난 자이면 그를 아버지로 섬길 수 있습니다. 거듭 난 자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벧전 1:23). 사람의 거듭난 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성경 말씀을 듣기 좋아하며, 읽기 좋아하며, 순종하기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가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가 영적인 자녀로서 영적인 아버지에게 예배하게 되는데, 그것이 신령한 예배입니다.

    또한 ‘신령으로’ 라는 말은 ‘영 안에서’ 라는 말로써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구속의 공로로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야함을 말합니다. 또한 ‘내 영으로’ 존재 전체로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만 예배 장소에 참석하고 마음은 딴 곳에 있다면 그 사람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습니다. 온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며 예배를 드려야 함을 말합니다.

    "진정으로 예배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진정"이란 것은, 예수님이 22절에 말씀하신 내용의 성취 형태입니다. 이스라엘의 "아는 것"(22절 하반), 곧, 구약적 계시가 신약 시대에 성취된 형태입니다. 이것이 유대인에게서 난 구원 사건, 즉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에 근거한 예배가 "진정"으로(진리로)예배함입니다. 그것은, 실상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메시야가 나시리라는 약속의 성취를 내포한 구원사적(救援史的) 진리에 순종하고 드리는 예배입니다. 참된 예배는, 결코 사람들의 추측이나 깨달음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啓示)에 근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이란 말은 "진리"를 의미하는데,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메시야 약속)이 성취된 사실, 곧,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었습니다(고후 1:20).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신앙적 예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적 예배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히브리서 11:6에 말하기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진정으로’ 라는 말은 ‘진리 안에서 ’라는 의미로 성경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가르침에 따라서 예배할 것을 말합니다. 십계명 제 2계명에 상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종교 개혁시대에 상을 없앴습니다. 루터는 이일에 열심이었으나 그 외에 것에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었습니다. 칼빈은 ‘하라’ 는 것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성경에서 예배의 요소를 끌어내었습니다. 즉 기도, 찬송, 성경 봉독, 설명(설교), 헌상(헌금), 성례, 사죄, 정죄 등입니다. 이러한 예배의 순서는 보편성과 지혜 사려분별에 의합니다.


3. 그리스도가 오시면 가르치심(25-26절)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이 사마리아 여자는 메시야를 대망하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신명기 18:15-18에 있는 모세의 예언에 기준하여, 사마리아인들도 메시야를 대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 5경만을 성경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의 심리가 이제 진정한 종교로 바로 움직이는 것을 보시고 그 기회를 타서 자기가 메시야이신 것을 알려 주십니다. 


III. 적용: 참 예배를 드리는 삶

    우리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 예배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어떠한 모습으로 나아가야할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참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첫째, 예배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같이 드리기로 한 것이니까 함께 드리는 일에 신경을 써야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정말 예배와 관련된 사람다운 삶이 되어야합니다. 기본적인 원리는 ‘예배와 삶이 하나가 되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로마서 12:1).

    둘째,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리는 자들은 예배시간마다 모이기를 힘써서 예배를 드립니다. 자신의 환경을 핑계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예배시간에 모이기를 힘써야합니다.

    셋째,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드리는 것이며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줄로 믿고 드리는 예배입니다.

    넷째,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시간마다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감사에는 마음만으로도 표시 되지만 우리의 마음을 담은 예물이 귀중합니다.

    다섯째, 우리의 감사를 담은 예물을 드리는 헌금은 다음과 같이 합니다.

    1) 헌금은 돈만 드리는 것으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헌금은 구속받은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교회 안에 있는 나’(敎會我)입니다. 교회아(敎會我)는 내가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지체의식 보다 강한 의미를 갖습니다. 나를 드리는 것은 공동체적 행위입니다. 구석사적 은혜로 드려야합니다(사 50:9-15). 하나님께서 구속해 주신 것에 감사하는 표로 드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구속을 근거로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뜻으로 움직여 나가기를 구하며 드려야 합니다.

    2) 헌금 기도는 공동체가 십자가의 은혜로 드리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헌금은 매주일 드리도록 합니다. 한금을 드리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실 것을 확신하고 기원하는 것입니다. 매주일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매일의 삶을 주님께 드린다는 의식을 가지고 상징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한 주일을 주님의 것으로 나를 드린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3) 헌금이 헌금다워지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인식에 비례합니다. 주님께 예배드릴 때 예수님의 공로로 싸서 드려야합니다(히 10:19). 헌금은 성령을 의존해서 드려야 합니다(빌 3: 3).

   4) 얼마만큼 드려야 합니까? 신명기 14:22-29에 보면, 구약의 기준은 매년 십일조, 절기십일조, 매 삼년마다 십일조를 저축하여 공동구제를 하였습니다. 신약에서는 십일조 정신으로 드립니다.

   5) 헌금을 했을 때 복 받는 기원을 가지고 드리면 안됩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에 대한 자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헌금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열매를 맺도록 나타납니다. 성경에서 열매는 그리스도의 품성으로 나타납니다. 열매는 전도로 나타납니다. 열매는 인생에서 주님의 일을 위해 나타납니다. 

   6) 교회의 헌상을 어떻게 사용해야합니까? 사용을 하는 것을 주관하는 사람은 집사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증시를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구제, 선교, 장학기금. 교회유지비).

    우리가 하나님께 참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를 마나주십니다. 그대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평강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롬 14:17).

출처 : 동경센조쿠중앙교회-주님더알기
글쓴이 : kapore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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