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4.30(주일예배)
진정한 성도의 가정
에베소서 5:22-33
I. 들어가는 말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세우시기를 원하실 때 제일 먼저 하신일은 가정을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담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에 두신 후 그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 그를 위해 돕는 배필로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하와를 본 순간 노래하며 “이는 나의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말하였습니다(창 2:21-23). 아담과 하와는 한 몸을 이룬 것입니다(창 2:24).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교제를 하실 때, 아담은 하나님의 통치함을 받으며 이 가정을 통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고 모든 것을 지배하라”는 말씀에 좇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힘써야했었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머리인 아담을 제쳐놓고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고 그것을 아담에게도 주어먹게 함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이 파괴되었고 한 몸이었던 부부는 선악과를 먹은 후 눈이 밝아져 서로의 수치를 보고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문하실 때 하와 때문에 먹었다고 변명합니다. 이미 가정이 파괴된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형상을 상실한 사람은 파괴된 인격으로 상대를 보면서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핑계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파괴된 가정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후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가정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사도바울은 가정의 회복을 위해서 성도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말씀합니다.
II. 진정한 성도의 가정
1. 아내들의 남편에 대한 복종(22-24절)
사도바울은 먼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명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되 주께 하듯이 해야 합니다.
(1)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22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헬라어 본문에는 ‘복종하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나타나지 않으나 앞절의 ‘복종하라’와 연결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본절은 상호 복종하라는 명령중 아내의 의무에 대한 것으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함을 나타냅니다(고전 11:3;골 3:18; 벧전 3:1). 이 명령은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어서 종속 관계에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기준을 ‘주께 하듯 하라’는 말로 제시합니다. 이 기준은 그리스도인들이 주께 자율적(自律的)으로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주 안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권위에 따르며 순종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2)남편이 아내의 머리됨(23절)
“이는”이라는 말은 본절이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임을 뜻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를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머리됨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머리’(‘케팔레’)는 ‘지도자’나 ‘통치자’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1:22).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를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것처럼 남편이 아내에 대해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구속하기 위해 희생하신 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남편이 아내를 위해 희생해야 함을 뜻하며 남편이 아내의 보호자임을 나타냅니다.
(3)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24절)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바울은 앞 절에서 남편이 아내를 위해 희생함을 전제로 보호자가 됨을 시사한 후 본절에서 아내의 의무에 대해 강조합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를 향한 신뢰와 복종의 관계에서 출발합니다(골 3:18). 이 복종은 단지 명령에 대한 의무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서 사랑에 의해 자발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요일 4:19). 한편 ‘복종할지니라’('휘포탓세타이')는 질서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이 여자의 열등함으로 인한 종속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질서에 대한 순응(順應)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고전 11:3-12; 딤전 2:11-13).
2. 남편들의 아내 사랑(25-30절)
(1)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과 같이(25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하라”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가 ‘복종’이라면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라’('아가파테')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비이기적이며 무조건적이며 희생적인 사랑을 가리킵니다. 또한 이것은 현재 명령형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언제나 아내를 사랑해야 함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처럼 남편들도 아내를 무조건적이며 자기희생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2)교회를 거룩하게 하심(26-27절)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26절) 바울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그 예증으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진술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희생하신 목적은 교회를 ‘거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거룩하게 하시고’('하기아세')는 ‘분리시킨다’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심을 뜻합니다(벧전 2:9).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깨끗하게 함’으로 가능해집니다. ‘깨끗하게 하사’(‘카다리사스’)는 부정 과거로서 문자적으로는 ‘씻음을 받았다’는 의미이며 계속적 경험보다는 단회적 경험을 나타냅니다. 논리적으로 볼 때 ‘거룩하게 하는 것’보다 ‘깨끗하게 함’이 우선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과정에 있어서 ‘깨끗하게 함’과 ‘거룩하게 함’은 동시적으로 일어납니다. 또한 ‘하기아세’와 ‘카다리사스’는 모두가 부정 과거로서 과거에 이미 성취된 것임을 시사합니다(고전 1:2; 딤후 2:21).
한편 ‘카다리사스’와 ‘하기아세’의 과정을 이루기 위한 매개체(媒介體)는 ‘물로 씻음’과 ‘말씀’입니다. 첫째로 ‘물로 씻음’은 물세례를 시사합니다(히 10:22). 둘째로 ‘말씀’('레마티')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입니다. (1)혹자는 '레마티'가 '물로 씻음'과 연관되어서 세례의식 때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신앙 고백'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Bruce). (2) 혹자는 '레마티'가 ‘깨끗하게 하사’와 연결되어서 ‘복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요 15:3;17:17, Lincoln).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습니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27절)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셔서 교회를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목적은 교회를 그리스도 자신의 신부로서 맞이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세우다’('파리스테세')는 신약성경에서 신부를 신랑 앞에 내세우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되었습니다(고후 11:2). 신랑이신 그리스도 앞에 세우심을 받는 신부는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한 기업이며(1:18)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 있는 곳입니다(3:21).
한편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신부로 맞이하는 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혹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 때라고 주장합니다(Meyer). (2)혹자는 31절에서 현재에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을 이루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현재를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Lincoln).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합니다.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며 이러한 관계는 마지막 때에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계획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이미 예정하신 것입니다(1:4). 이러한 행위는 사람의 노력이나 공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몸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역사에 의해서 성취되어집니다(23절).
(3)남편들도 자기 아내를 제몸과 같이 사랑하라(28절)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바울은 예증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 되돌아와 본주제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할지니’('후토스 오페일루신')은 25절에 언급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은 자신의 몸과 같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즉 남편은 자신의 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채워주고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본절은 창 2:24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남편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4) 그리스도와 몸된 교회의 관계(29-30절)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29절) 바울은 본절에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비교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Calvin). 여기서 ‘양육하여 보호하기를’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성숙하기까지 따뜻하게 감싼다’라는 의미로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을 정성을 다하여 가꾸며 보호하며 돌보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행하신 모습으로서 남편도 이와 똑같은 원리로 아내를 돌보고 보호하여 성숙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 단순히 인간적인 애정의 차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처럼 깊은 영적 차원으로의 성숙을 요구하십니다(고전 6:15-17).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30절)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돌보는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지체들의 모임인 교회를 양육하고 인도하시는 것처럼 남편도 자신의 몸인 아내를 잘 인도하여 성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4:11, 12, 25).
3. 서로 사랑해야할 부부(31-33)
(1)부부의 신비(31-32절)
1) 하나가 된 부부(31절)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본절은 구약성경 창 2:24의 인용으로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신 결혼의 신비를 나타냅니다. ‘합하여’는 성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문자적으로 ‘붙게 될 것이다’를 의미합니다(Bruce). 이러한 결합을 통해서 남편과 아내는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을 이룹니다(고전 6:17).
2)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32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이 비밀’은 앞절에서 인용한 창2:24을 가리키는 것은 물론,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가리킵니다. ‘비밀’(뮈스테리온)은 본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하게 구원받게 되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목적을 포괄(包括)합니다(1:9; 3:3,4,9; 6:19). 비록 본절에서 하나님의 구원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하게 참여한다는 언급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을 통하여 이루어진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보다 더 심오하며 놀라운 것임을 시사합니다.
(2)부부간의 사랑의 비밀(33절)
“그러나”('플렌')는 반의 접속사이나 본절에서는 '이제' 혹은 '여하튼'이란 의미로 이제까지 논해온 내용의 가장 중요한 요점을 서술하고자 함을 나타냅니다.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 결론적인 권면은 ‘사랑’과 ‘경외’입니다. 여기서 ‘경외하라’(‘포베타이’)는 아내가 남편을 대할 때에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함을 뜻하는 것으로(21절) 우러나오는 헌신적인 마음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며 의무를 다해야 함을 의미합니다(22절). 반면에 남편은 아내가 남편에 대해 경외함으로 복종하고 섬기는 것처럼 그에 상응하게 사랑을 베풀어야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고 보호하시며 양육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며 서로 협력하여 성숙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25-29절).
III. 적용: 가정의 회복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
우리는 부부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비유한 말씀을 통하여 배웠습니다. 아내는 그리스도께 하듯이 남편에게 복종하고 경외 할 것과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몸된 교회를 사랑하여 자기의 몸을 내어주시어 사랑하심과 같이 아내를 사랑해야할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서로 사랑하고 경외하며 살아야할지 몇 가지를 생각해봅니다.
첫째로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과 경외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담에게 주시어 하와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정에서 결정해야할 일은 반드시 남편의 동의가 없이는 시행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설혹 남편의 믿음이 아직 미치지 못하여 동의할 수 없을 때 무리하게 결정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합니다. 남편이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고 완전하게 납득이 되어서 동의한 후에 시행합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하여 실수가 있을지라도 판단치 말고 그 인격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고 불렀듯이 아내들은 남편을 경외해야합니다.
두 번째로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몸된 교회를 사랑하심과 같이 사랑해야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모습이 이와같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몸은 아끼고 사랑합니다. 자신의 몸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로 보호하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위해서 좋은 것을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내의 하는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아내는 육체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음으로 이를 보호하는 것은 남편의 의무입니다. 또한 아내의 영적인 성숙을 위하여 협력하고 가사일도 최선을 다하여 도와야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영광의 모습으로 세우시기를 소원하셨다면 남편도 아내를 자신의 영광의 모습으로 세우도록 최선을 다해야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통하여 자녀들에게 진정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의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그들이 성정한 후 새로운 가정을 이룰 때 자신의 배우자를 서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서로 사랑하는 모습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사신 교회의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가정에서 사랑해보지 못한 사람은 교회에 와서도 사랑하는 것이 서툽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서로 사랑하는 모습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가정이 온전하게 세워지게 되면 그 가정들이 모여서 교회 안에서 아름다운 교제를 이루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아름답게 쓰임 받을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가정들이 교회에 확장되어 갈 때, 설혹 사랑을 받지 못하고 교회에 들어 온 성도가 있을지라도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가정들을 보면서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 것이고 그들도 또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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