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 설교

하나님의 선물

kaporet 2006. 2. 25. 13:00
 

하나님의 선물

엡2:1-10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I. 들어가는 말


    우리들은 때대로 자신에게 선물을 준 사람을 기억하며 기뻐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면 왠지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에게 준 것과 동일한 선물을 준 사실을 알고 나면 왠지 서운한 감이 듭니다. 자신이 받은 선물을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준 그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독점적으로 사랑받기를 원하고 또한 받은 것을 자랑하려합니다. 그 결과 동일한 사람에게 동일한 사랑을 받은 사람끼리 서로 경쟁하며 때로는 질투와 미움까지도 유발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이 세상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을 감사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어느 한 민족만이 아닌 온 세상 사람들이 받아야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간에 자신만이 특별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처럼 자랑할 때 그곳에는 반목과 질시가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한 공동체로 된 교회가 서로 자랑하고 경쟁할 때 서로 미워하며 분열되어 가고 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를 위하여 3년동안 에베소에 머물며 말씀을 가르쳤고 그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하게 장성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교회로 나타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구성된 에베소교회에 분열의 조짐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자신들의 신앙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경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들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을 말하면서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가르친 것이 에베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구원받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의 옛 모습을 말하면서 그들의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정말 구원받은 자라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II. 하나님의 선물


1.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모습(1-3절)


    (1)허물과 죄로 죽은 자(1절)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구원받기 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먼저 사도바울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본절에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과거의 삶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과거의 삶은 죽음으로 특징지워지는 것입니다. '죽었던'은 신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며 도덕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을 수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을 시사합니다. 이런 사상은 초대 그리스도인들만 갖고 있던 독특한 것은 아닙니다. 구약 특히 시편에서도 질병, 죄, 소외, 포로 상태에 있는 삶이나 적들의 지배하에 있는 삶은 죽음의 영역에 있는 삶으로 표현되었습니다(시 13:1-3;30:3;31:12;88:3-6;143:3; 호 13:14; 욘 2:6). ‘허물’은 문자적으로 ‘정로’(正路)에서 떨어지다'라는 의미로 부주의하여 진리에서 떠나는 것이나 잘못된 경향성을 가리키며, ‘죄’는 문자적으로 ‘과녘에서 벗어나다’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생의 목표를 정확히 맞추지 못한 모든 행위를 가리킵니다. 결국 이 둘은 동의어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 있었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의 특징은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롬 3:11).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아무리 훌륭한 믿음을 자랑한다할지라도 그들의 과거의 모습은 누구나 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입니다.


    (2)죄 가운데 행하던 자(2절)

    사도바울은 이어서 영적으로 죽은 자의 상태를 말씀합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다’는 말씀은 죄 가운데 행한 것을 의미합니다.  '행하여'의 의미는 윤리적인 행동이나 삶의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두 가지로 표현됩니다.

    첫째는, “이 세상 풍속을 좇는” 것입니다. '풍속'의 헬라어 '아이오나'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 해석은, '아이오나'는 종교 혼합주의에서 비롯된 신화적 개념이 신약성경에 스며든 것으로, 신을 가리키는 '아이온'(Aion)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을 주장하는 자들은 본절의 '풍속'다음에 언급되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 같은 개념으로 본니다. 두번째 해석은, '아이오나'는 이 세대의 타락한 인간 존재의 일시적인 측면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에베소 교인들은 현재의 악한 세대와 이 세상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 왔습니다. 그들의 죄악된 행위는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현세적(現世的)인 세상의 기준과 가치에 따른 것입니다.

    둘째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인간의 참된 행복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하는 초자연적인 악의 세력으로 '악의 영들'(6:12), 곧 '사단'(막 8:33; 눅 22:3)을 의미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과거에 이런 악한 영의 통치(統治)하에 살았었습니다.

    공중의 권세잡은 정체를 밝힙니다. 그는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입니다.  '불순종의 아들들'은 히브리적 표현으로 '하나님에게 대적하여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것은 기독교 복음에 대한 거절을 내포하는 것으로 현재에 발생합니다. 한편 본문에 나오는 '영'은 영적 세력으로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의미합니다. 불순종하는 자들은 공중의 권세잡은 자에 의하여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사실입니다.


    (3)육체의 정욕대로 살던 자(3절)

    하나님을 대적하던 때의 삶의 모습을 밝힙니다. 그것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한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본절의 '우리'는 바울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 그 가운데서'는 앞절에 언급된 '불순종의 아들들'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과거에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음'을 상기시킵니다.  '지내며'의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인간의 이기적인 욕구(慾求)에 따라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이는 성령 안에서의 삶과 대조적으로 육체의 열매를 내는 삶이요(갈 5:19, 20),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삶입니다(롬 8:8).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살던 우리의 모습은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다른 이들과 같이'는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대해 멸시하는 의미로 사용하던 용어입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본질상'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본질상'은 태어나면서부터 있던 천성적인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바울이 개종하기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태를 사실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진노의 자녀'는 히브리적 관용구로서 '진노를 받기에 마땅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본절의 '진노'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며(God's anger),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죄악에 대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성을 증거 합니다(롬 1:18;2:5, 8).


2.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사(4-7절)


    (1)하나님의 사랑으로(4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크신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던 때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적 표현입니다(출 34:6; 시 103:8;145:8; 욘 4:2). 즉 '긍휼'의 헬라어 '엘레에이'는 히브리어 '헤세드'('인애')와 상응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충실히 지키며 사랑을 베푸시는 것을 시사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인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롬 5:8).


    (2)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5절)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크신 사랑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사도는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밝힙니다. 본문의 괄호는 이 부분이 헬라어 본문에 있어서 부가적인 설명임을 나타냅니다. 상반절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새 생명을 소유하였음을 언급한 바울은 본문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부언하고 있습니다. 즉 죄로 인해 진노를 받아 마땅한 죄인에 대한 구원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행위인 은혜로 된 것임을 밝힙니다.


    (3)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심(6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시었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는 '부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앞절에서 언급된 '살리셨고'와 연결됩니다. 즉 죄로 인해 초래된 영적 죽음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생명을 공유하는 영적부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시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었습니다.” 앞 절에서는 ‘함께’와 합성된 ‘그리스도에게’를 사용한 반면, 본 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두 표현 모두가 그리스도와의 연합(聯合)을 의미하는 것이나 본 절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가 앞 절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와 함께’보다 더 강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한편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순히 부활시키신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하늘에 앉히셨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골 3:1-3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이 선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시키신 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듯이 하늘에 앉히신 것도 비록 현재 참여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없다 할지라도 이미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민권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음을 시사합니다(빌 3:20).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나님의 존전에 서있으며 그 앞에서 즐거워합니다.


    (4)그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려함(7절)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성도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시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본절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살리시고 일으키시며 하늘에 앉히신(5, 6절) 목적이 됨을 시사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풍성한 은혜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1:3-14).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여주신 구원의 자비(慈悲)하심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시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풍성함을 오는 세대에 나타내려하심입니다.

    '오는 여러 세대'에 대해 혹자는 인격적인 권세나 정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적대적인 정사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시사한다고 주장합니다만, 이는 시간적인 것으로 미래에 '오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은 다가오는 미래에 자신의 은혜의 광대함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3. 하나님의 선물(8-10절)


    (1)구원은 하나님의 선물(8절)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지극히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앞절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하신 은혜를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믿음'은 스스로 자신을 의롭게 하려는 행위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대하는 것으로 구원이 인간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속의 은총(恩寵)을 받아들이고 응답함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주어지는 것으로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이어서 사도바울은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것'이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혹자는 이것이 '믿음'이라고 주장합니다. 둘째는, 혹자는 구원의 과정 전체라고 주장합니다.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구원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구원을 자랑치 못하게 함(9절)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을 얻게 하신 이유는 누구든지 그것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구원은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결코 자랑할 수 없습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라는 말은 구원이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시사합니다(롬 3:20, 28;4:1-5; 갈 2:16; 딛 3:5). 바울은 이 행위를 율법과 관련시켜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본절의 행위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행하는 인간의 윤리적인 노력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인간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자랑할 수 없습니다(롬 3:27;4:2).

    누군가가 받은 선물을 자랑하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우리는 선물을 주신 분을 자랑하지 선물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자랑하지 결코 구원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은혜로 베풀어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3)선한 일을 위해서 지음 받은 자(10절)

    사도바울은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자랑할 수 없는 이유는 구원은 공적(功績)에 의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재창조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만드신 바라'(포이에마)라는 말은 70인역과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첫 창조 사역을 의미하나(시 142:5; 롬 1:20)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인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을 의미합니다(고후 5:17; 갈 6:15; 엡 4:24; 골 3:10). 하나님의 재창조사역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된 것으로 그 목적은 '선한 일'을 위함입니다. '선한 일'은 구원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구원 에서 비롯된 열매로서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목표이다. 또한 '선한 일'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서 비롯되며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롬 2:7;13:3; 고후 5:10;9:8; 갈 6:10; 살전 5:15).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도록 예비하셨다고 밝힙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선한 일 자체를 먼저 예비하신 것으로 해석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예비(豫備)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선한 일'은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가능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것입니다(롬 8:4; 엡 6:6).



III. 적용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해주신 이유는 무슨 선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어 사랑을 인하여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선물로 받은 성도들은 그 선물을 귀하게 여기고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 즉 십자가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구원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심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항상  하늘 보좌 앞에서 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구원을 선물로 주심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구원을 받기위해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을 받았기에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한 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선물을 주신 분의 뜻을 헤아려서 행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에 더 열심을 내야할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힘을 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복음전파에 힘써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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