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아름다운 소식: 믿음, 사랑, 소망 골1:1-8 골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골 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골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골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골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골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골 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이요 골 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 I. 들어가는 말 오늘부터 골로새서를 강해하고자합니다. 골로새서는 바울 서신중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르친 내용이 어느 서신서보다 풍부하게 기록된 서신서입니다. 골로새서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다 풍성하게 만나고 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골로새서의 배경적인 내용을 말씀드리고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1)골로새교회 사도바울이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에베소에 이르는 제3차 전도여행 중 골로새시를 방문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도시에 직접 교회를 세우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2:1). 이곳의 교회는 바울이 에베소를 제3차 전도여행 중심지로 삼아 3년간 집중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던 기간에 세워졌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증거하는 복음을 듣고 먼저 회심한 사람들이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각기 연고가 있는 도시로 내려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던 것입니다. 골로새서에 의하면 골로새 교회는 에바브라의 전도사역에 의해 세워졌을 가능성이 큽니다(1:7-8, 4:12-13). (2)골로새서의 목적과 주제 바울이 이 편지를 쓴 목적은 골로새 교회에 들어온 이단을 반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바울은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1:15), 만물의 창조주(1:16),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1:17), 죽은 자 가운데 먼저 부활하신 분(1:18), 또한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시는 유일한 중보자(1:20-22)이심에 관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는 인간이 만들어낸 철학의 허구성과 대조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충족성을 드러내는 것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3)이단 사상 골로새서에 나타나는 이단의 상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유대교의 의식주의 할례(2:11, 3:11), 음식에 관한 규례, 절기(2:16-17) 등 율법주의 의식들을 중시하는 유대교적인 사상이 골로새교회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2)거짓철학 초기 영지주의자들(Gnostics)은 자신들의 체험(2:18)과 사람의 유전(2:8)에 근거하여 영적지식(헬, 그노시스)을 내세우면서 교인들을 진리로부터 벗어나도록 유혹하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영적비밀을 개달은 자로 자처하면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신 신성과 주권을 부인하였습니다.
3)금욕주의 거짓교사들은 극히 엄격한 규율을 육체에 가함으로서 육신의 욕망을 억눌러야한다고 가르쳤습니다(참조 2:21).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괴롭히는 등 스스로 지어낸 방법으로 하나님을 숭배하고자 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서 스스로 경건하고 겸손한 자 인체 하였습니다.
4)천사숭배 ‘천사를 숭배함’을 의미한다기 보다는‘천사의 숭배’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짓교사들은 천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에 자신들도 참여한다는 뜻에서 천사들의 경배를 흉내 내고자 했습니다. 천사숭배를 좇는 사람들은 그들이 천사들과 직접 교통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보자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3)저작연대와 장소 이 편지는 바울이 로마에 죄수로 갇혀 지내던 제1차 투옥기간(AD61년 겨울-63년 봄, 행28:16-31)에 기록하였기 때문에 에베소서, 빌립보서,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으로 불리며, AD 62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II. 성도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 1. 사도의 인사(1-2절) (1)그리스도의 사도된 바울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1절)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 본서의 서두는 바울과 골로새 교회가 피차 처음 알게 되는 상황이므로 담담하게 바울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라는 말의 의미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단순히 '심부름을 하는 자'의 의미가 아니라 '파견자의 전권을 위임받은 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정당한 자신의 권위를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권위는 스스로 취한 것도 아니요 사람들의 추천으로 된 것도 아닙니다(고후 3:1). 오직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권위와 권능을 대변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거슬러 올라감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바울 자신에게로 이어지는 권위의 연속성을 주지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2) “형제 디모데” 디모데는 본서 외에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의 서두에 언급됩니다(고후1:1; 빌1:1; 살전1:1; 몬1:1). 이는 디모데가 여러지역의 교회들에 상당히 알려져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본서에서 바울이 디모데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골로새 교인들이 디모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디모데를 자신과 함께 소개함으로써 친근감을 주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에서 바울을 처음 만났고 바울과 동행하면서 함께 사역하였습니다(행16:1; 고후1:19).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면 바울과 디모데와 같은 관계가 부족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를 자신의 영적인 아들로 말합니다(딤전 1:2). 이것은 바울과 디모데의 복음사역을 통한 신뢰관계 뿐만 아니라 디모데가 바울을 정말 아버지와 같이 여기고 존경한 모습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목사와 성도 사이에 정말 신뢰하고 존경하며 사랑해주는 그러한 모습이 있을 때 진정한 동역자로서 복음사역을 위해서 일할 수 있고 또한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물론 이러한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간이 걸려도 목회자와 성도간에, 성도와 성도간에 서로 마음을 통하고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 비로소 그곳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2)골로새의 성도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2절)
1)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성도들'이란 말은 '신자'에 대한 최상의 표현이며, 여기에는 구약적 배경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별하여 선택하였고, 이렇게 '성도'로 불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높은 지위에 걸맞는 삶을 살도록 요청받았던 것이 전제되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인들도 '성도'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성도로서 자신을 인식할 때 비로소 거룩한 삶이 이루어집니다. 만일 성도로서의 자신을 잊어버린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 무엇인지 망각한 채 세상사람과 동일한 삶의 방식을 택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가 성도답지 못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과연 어디에 와 있는지 살펴야할 것입니다. 정말 그리스도와 연합된 상태에 있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이는 성도의 영적 위치를 강조하는 말로 성도는 한 육체의 지체들로서 그리스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와의 긴밀한 연결을 십자가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힐 때 자신의 옛사람이 함께 못박혔다는 인식이 분명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부활의 생명으로 연합된 것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3) “신실한 형제들” 만약 골로새 교인들이 인격적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투철하며 그리하여 하나님께 충성을 다한다면 그들은 마치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처럼(1절), 바울과 영적 형제가 될 것입니다.
4)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바울의 편지 서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생략한 채 아버지의 이름만을 언급한 것은 본 서신이 유일한 예입니다. 한편 헬라어 서신 형식에서 발신인은 '...로부터'에 의해 드러나는데 본문에서는 '...로부터'가 '아버지 하나님'에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본 서신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암시합니다.
5) “은혜와 평강” '은혜'(카리스)는 하나님에게서 흘러 넘쳐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값없이, 자격을 묻지 않고 주시는 것입니다. 즉 '은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구원'을 가리킵니다. '평강'(에이레네)은 '은혜'에 의하여 귀결되는 것으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한편 여기까지는 당시의 헬라적 서신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신자의 이름, 수신자의 이름, 그리고 인사와 기원이 이어지는 형식은 전형적인 헬라식 서신의 서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편지의 서문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배'하는 시간에 온 회중들에게 낭독되었습니다(4:16). 예배시간에 회중들에게 들려진다는 의미에서 이 편지의 서문은 단순한 인사말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를 기정사실화 하는 구약성경의 축복문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2. 믿음과 사랑과 소망(3-5절) (1) 사도바울의 감사기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3절)
1)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바울의 편지 서문에 다른 사람의 이름이 같이 언급되는 경우에도 감사의 부분에서는 '내가'라는 단수형으로 서술되는 것과 달리 본문에서는 '우리'라는 복수형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것을 저자 문제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전자의 경우에는 바울이 단독 저자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공저자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마 공저자라면 그는 디모데일 것이고 이는 디모데가 실제적으로 서신 집필에 참여했다기 보다는 곁에서 심정적으로 함께 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기도할 때마다'는 바울이 늘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는 의미입니다. 공동번역은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서 언제나 기도하고'라고 번역하여 이 의미를 살리고 있습니다. 이는 바울이 비록 골로새를 방문한 적은 없지만 계속해서 골로새 교회에 대한 사도직을 수행해왔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2)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모든 감사는 하나님께 돌려집니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묘사했는데(2절) 여기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요 14:6). 따라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자 우리의 아버지입니다(요 20:17). (2)성도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4-5절)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바울은 직접 골로새 교회를 방문해보지 못했지만 이야기를 들어서 골로새 교인들의 신앙 상태를 알고 있습니다. 아마 에바브라를 통해서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7절; 4:12). 바울이 들어서 알고 있는 것 가운데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표현의 의미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일 수도 있고,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을 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바른 믿음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2)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은 성도들간의 폐쇄적 사랑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들간의 사랑이 더 긴밀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면 이 사랑은 온 인류의 사랑이 될 것입니다. 사랑은 믿음과 긴밀하게 결합됩니다. 사랑은 믿음의 구체화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사랑은 믿음의 열매요 참증거인 것입니다. 골로새교인들의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은 그들이 그리스도안에서 연합됨을 통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을 확신할 때 그 심령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나고 그 사랑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나타내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그 사랑으로 인하여 다른 성도에 대하여 사랑으로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늘에 쌓아둔 소망” 본절의 '소망'은 앞절의 '믿음', '사랑'과 밀접하게 결합됩니다. 이 '소망' 때문에 믿음과 사랑이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 소망은 하늘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산 결과 하늘에서 받게 될 영광스러운 보상 즉 하늘의 축복에 관한 소망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낄 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을 다른 성도들에게 나타내고 그 사랑을 나타낼 때 그리스도께로 행한 사랑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때 성도의 마음에는 하늘에 대한 소망이 더욱 일어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리스도가 계신 그곳에 빨리 가고픈 심정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하루속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망이 생깁니다. 주님이 오시면 주님이 자신의 믿음과 수고와 사랑을 인정해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소망은 더욱 하늘에 쌓아갑니다.
4) “복음 진리의 말씀” 복음과 진리는 서로 같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진리'곧 '복음'은 사람들을 하늘의 소망에로 인도하며 믿음과 사랑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곧 복음에서 비롯됩니다(롬 10:17). 또한 복음의 진리는 참다운 가르침과 사이비 교훈을 구별해 주는 척도가 됩니다. 3. 복음의 진리(6-8절) (1)복음의 열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6절)
1)“하나님의 은혜” 복음이 말 그대로 좋은 소식인 것은 그것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핵심으로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데 거저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죄인인 내게 그 죄가 없는 것으로 인정해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신 다는 것입니다. 단한지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죄를 대속한 구세주로 믿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조차도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엡 2:8). 그러므로 복음은 온통 은혜로 가득 채워진 것입니다.
2)“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복음은 모든 장애를 뛰어넘어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르렀고 온 천하에도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온 천하'는 문자 그대로 온 세상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당시 복음이 다메섹, 다소, 안디옥, 고린도, 에베소뿐만 아니라 로마에까지 전파된 것을 염두에 두고 '온 천하'란 말을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즉 바울은 복음이 끊임없이 그 영역을 확대하는 것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발하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3)“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복음은 열매를 맺게 하고 자라게 하는 능력을 지닙니다. 열매를 맺는 것과 자라는 것은 각각 복음의 내적 활동과 외적 팽창을 나타냅니다. 또한 이 두 동사가 현재 중간태분사로 되어있는 것은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복음의 역동적 활동을 암시합니다. 복음은 어떤 사람에게든지 들어가기만 하면 성장하여 열매를 맺게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두 증인입니다. 우리의 처음 믿었던 때를 돌이켜보면 지금 생각만 해도 부끄러웠던 것이 많습니다. 그러던 우리가 어느덧 믿음이 성장하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성장은 계속 요구되고 성장될 것입니다. (2)바울의 동역자 에바브라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이요(7절)
1)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 바울이 에바브라를 '함께 종 된'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은 바울이 그를 복음 사역의 동역자로 인정하였음을 뜻합니다. 본문의 '에바브라'는 빌립보 교회의 신실한 일꾼이었던 '에바브로디도'(빌 2:25 ; 4:18)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태생으로(4:12), 그곳뿐 아니라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서도 큰 활약을 한 사역자로 보이며 어떤 혐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때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몬 1:23).
2) “배웠나니” 골로새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은혜를 깨달아 열매를 맺게 된 것은 바로 에바브라의 선교에 의한 것이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울러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 교인들이 받은 복음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3)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너희를 위하여'는 '우리를 대신하여'(공동번역)로 볼 수 있고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사본들도 많습니다. 물론 에바브라의 복음 사역은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 것이지만, 그것은 골로새에 갈 수 없는 바울을 대신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에바브라는 바울의 동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바브라의 일꾼 됨은 바울에게 소급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소급되는 것입니다. (3)성령으로 행하는 자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8절)
1)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자니라” 에바브라는 바울을 대신해서 골로새를 방문해 복음을 전했고 바울에게 되돌아와서 골로새 교인들의 신앙적 상황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열매를 맺으며 자란다는 것의 한 가지 증거는 그들에게서 사랑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4절). 이 사랑은 그 동기와 출처가 인간에게 있는 '에로스'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즉 '아가페'입니다. 칼빈은 이것을 '영적인 사랑'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한편 본 서신 전체에서 성령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곳은 본문이 유일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 안에서'라는 표현은 '너희 사랑'이라는 말의 본질적 의미를 밝혀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지니고 있던 사랑은 다름 아닌 성령께서 일깨워 준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말미암는 영적 사랑이 넘쳐나는 곳, 그곳이 바로 이상적인 교회의 모형입니다. 골로새교인들이 성령안에서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성도의 삶은 성령 안에서의 삶이어야함을 사도바울은 늘 강조해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은 죄니라”(롬 14:23)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지니”(갈 5:26) III. 적용: 성도의 아름다운 소식이 전파되는 삶 사도바울은 골로새교인들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과 하늘에 쌓은 소망을 인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골로새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그 열매를 맺어 자라게 됨으로 인합니다. 그 모든 열매는 성령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말씀합니다. 우리 교회도 성령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전해지는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서는 먼저 성도 각 사람이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성령 안에서 서로 사랑할 때 아름다운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하나님나라가 확장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오늘도 성령을 의지하며 기도하고 성령을 의지하며 한순간 한순간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매 순간 마다 성령께서 자신의 심령 안에서 말씀하는 음성을 듣기 위해서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들은대로 순종하도록 우리를 온전히 맡겨나갑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자신의 심령에 깨달아진 말씀은 즉각 순종하는 삶이 되도록 힘씁시다. 그리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도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성도의 삶이 될 것이며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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