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Debate
저명한 신경 과학자 샘 해리스 vs. ‘목적이 이끄는 삶’ 저자 릭 워런 개신교 목사
릭 워런은 덩치가 곰만 하다. 목소리가 우렁차고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성격이다. 샘 해리스는 다부지고 조심스럽다. 저서에서 보여준 까다로운 모습과는 달리 사분사분하고 부드럽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개신교 목사 워런은 1980년 새들백 교회를 세웠다.
지금은 매주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는 신도가 2만5000명이다. 해리스는 말투가 부드럽다. 신경과학 박사과정을 밟는 사람답게 복잡하면서도 사실에 근거한 문장이 술술 나온다. 두 사람은 뉴스위크의 초대를 받고 최근 워런의 사무실에서 만나 네 시간 동안 환담했다. 존 미첨 기자가 사회를 봤다.
존 미첨: 릭, 당신네 동네에 왔으니까 샘에게 먼저 묻겠다. 샘, 대다수 미국인이 생각하는 의미로 신이 존재하는가?
샘 해리스: 그런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제우스를 비롯해 이제 아무도 숭배하지 않는 수많은 죽은 신이 있듯 우리가 무신론자라는 사실에 주목하면 유익하다.
릭, 아브라함의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뭔가?
릭 워런: 도처에서 신의 흔적을 본다. 문화에도 보이고 법에도 보인다. 문학에도 있고 자연에도 있다. 내 삶에도 있다. 신이 어디 있는지 이해하려는 시도는 개미가 인터넷을 이해하려는 짓과 마찬가지다. 아무리 총명한 과학자라도 우리의 우주 지식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데 동의하리라.
해리스: 우리가 우주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 한다는 사실은 어느 과학자라도 시인한다. 그러나 성경이나 코란에도 역시 우주를 말해주는 최선의 이해가 담기지는 않았다. 그 점은 분명하다.
워런: 그건 당신의 경우다.
해리스: 우리 자신에 관해 성경에 나오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 우주론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에 이르는 특정 학문들은 모두 성경이 이 세상에 관해 말해주는 진실을 능가하거나 대치했다.
샘, 당신 저서의 상대자인 기독교인들은 신이 성경을 썼고 그것이 글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어야 하나?
해리스: 성서를 보는 신뢰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진실이며 절대로 비유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고, “이것은 현자들이 쓴 최선의 책이며, 다른 책들을 배제하고 우리 생활의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기에 여전히 유효하다”는 시각도 있다. 그 양 극단의 어디에 있든 문제라고 본다. 내 생각에는 성서와 코란은 인간의 손으로 쓴 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정말로 뛰어나고 시적으로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부분이 있는가 하면 말도 안 되는 횡포임에도 불구하고 신의 도덕률입네 하는 부분이 있다. 어디서 시작해야 하나? 레위기, 신명기, 출애굽기, 열왕기 상·하, 사무엘 하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이나 선지자들이 저지른 일이 만일 요즘 시대에 일어났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끌려가 반인륜적 범죄자로 기소당할 만하다.
[워런에게] 성서에는 오류가 없나?
워런: 무오류라는 주장 자체에는 오류가 없다고 생각한다. 성경이 과학책으로 행세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천지창조가 창세기에 나온 대로 이뤄졌다고 믿나?
워런: 진화를 믿느냐는 질문이라면, 난 믿지 않는다. 신이 한순간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다. 창세기가 사실이라고 믿지만 동시에 비유적 표현이 사용됐다는 점도 안다. 신이 땅에 내려와 인간의 코에 숨을 불어 넣었나?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없이 기적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그런 식이 신의 뜻이라면 난 상관없다.
해리스: 난 신경과학 박사학위를 밟는 중이다. 진화생물학 문헌에 익숙하다. 요점을 말하자면 자연 선택에 따른 진화는 적자를 선택하는 환경의 압력이라는 상황에서 수백만 년 세월에 걸쳐 일어난 무작위 돌연변이다.
워런: 그 선택은 누가 하나?
해리스: 환경이다. 그 복잡성을 설명하려고 지적 설계자를 들먹일 필요는 없다.
워런: 샘은 자신의 가정을 토대로 모든 주장을 편다. 나에게도 가정이 전제됐음을 기꺼이 인정한다. 신의 존재에 관한 단서 말이다. 난 매일 신과 대화한다. 그분이 내게 말한다.
해리스: 무슨 뜻인가?
워런: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는 기도의 화답이다. 캐나다인 친구가 있는데 영주권 문제가 있다. 우리 교회의 실습생인지라 저녁산책을 나가면서 말했다. “하나님, 이 문제를 도와주세요.” 산책 도중 어떤 여자를 만났다. “이민 전문 변호사인데 기꺼이 이 사건을 맡겠다”고 말했다. 그런 일이 평생에 한 번만 일어났다면 “우연”이라고 말하겠다. 그것이 수만 번 일어나면 우연이 아니다.
목회자 일을 하는 동안 어떤 사람이 병에서 낫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지 않나. 예컨대 암에 걸린 소녀라든가.
워런: 당연하다.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해보자. 신이 당신에게 이민 변호사를 보내줬지만 소녀는 죽였는데.
워런: 난 신의 선의를 믿으며 그분이 나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신이 ‘알았다’고 하는 때가 있고 ‘안 된다’고 하는 때가 있으며 ‘기다리라’고 하는 때도 있다. ‘안 된다’와 ‘아직 때가 아니다’의 차이를 배웠다. 이것은 요컨대 복종의 문제다. 많은 무신론자는 합리주의의 뒤에 숨는다. 캐고 들면 그들의 반응은 무척 감정적임을 알게 된다. 화를 내지 않는 무신론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해리스: 내가 그 최초가 되겠다.
워런: 책에서는 꽤 분노했던데.
해리스: 분노라기보다 인내심의 부족이라고 하자. 그 기도의 화답이라는 생각에 관해 말하겠다. 통계학 용어로 말해 전형적인 표본오차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인간의 확률 감각은 끔찍할 정도다. 세상에 관한 우리의 편견을 확인시켜 준다고 생각하는 사물이 많다. 우리는 확인해준다는 쪽만 보고 그렇게 믿는다. 그 반대의 증거는 보지 않는다. 간단한 실험으로 중개적 기도의 효능을 입증해 모든 과학자를 만족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기독교인 10억 명을 동원해 팔다리 하나가 잘린 사람을 위해 기도를 올리도록 해보자. 신에게 그 잘린 부위를 다시 재생시켜 달라고 기도한다. 도롱뇽에겐 매일 일어나는 일이지만 아마 기도 따위는 올리지 않을 성싶다. 그것은 신의 능력으로 되는 일이다. [워런이 웃는다.] 신앙인들이 기도를 올리면서 스스로 제약을 가하는 현상이 흥미롭다.
워런: 말이 잘못 됐다.
해리스: 성경으로 돌아가 보자.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고 당신이 믿는 이유는 복음서가 예수의 기적을 확실히 기술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워런: 그것도 한 가지 이유다.
해리스: 한 가지 이유라. 다른 종교의 문헌을 보면 예수의 기적 못지않게 신기한 기적 이야기가 많다. 현 시대의 기적도 있다. 인도 남부의 현자인 사티야 사이바바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으며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고 사물을 만들어낸다고 믿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다. 유튜브에 그의 기적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있다. 실망스럽겠지만 그는 무대 마술사다. 당신은 기독교도로서 사티야 사이바바의 기적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내버려두고, 과학이 나오기 전인 1세기 로마제국의 종교 환경이 무대라면 그런 기적 이야기가 갑자기 대단한 위력을 지니게 된다.
샘, 훌륭한 도덕 규범의 세속적 뿌리는 무엇인가?
해리스: 종교 서적이 그 뿌리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우리는 성서를 읽으면서 선행을 판단한다. 황금률(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이 윤리적 충동을 증류하는 훌륭한 매개라고 생각하지만 황금률은 성경이나 예수만의 생각이 아니다. 많은 문화에 나온다. 인간이 아닌 영장류에서도 그 비슷한 형태를 본다. 난 도덕적 상대주의자가 아니다. 종교인들은 대체로 무신론이 도덕적 상대주의를 수반한다고 생각한다. 난 절대선과 절대악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명예살인(이슬람권에서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가족 구성원을 죽이는 관습)은 명백한 잘못이다. 사악하다고 말해도 좋다. 문란한 품행을 이유로, 심지어 강간당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여인과 소녀를 죽이는 사회는 동정심이 말살되고, 남성에게 여성을 존중하라고 가르치는 데 실패했으며, 공감대가 완전히 사라진 사회다. 공감과 동정심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 충동이다. 굳이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책들의 기원이나 특정인의 동정 수태에 관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황금률을 가르치기는 가능하다.
릭, 기독교는 때때로 비열할 정도로 못되게 굴었다. 사랑이라는 기독교의 복음과 어긋나는데?
워런: 신이 승인하거나 옹호하지도 않았는데 신의 이름으로 저지른 짓을 변명할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저지른 잘못이 있나? 물론 샘은 저서에서 종교가 세계를 위해 나쁘다고 주장하지만 종교전쟁 희생자를 전부 합쳐도 무신론자들 때문에 죽은 사람보다는 적다. 종교재판에서 수천 명이 죽었다지만 마오쩌둥·스탈린·폴포트 치하에서는 수백만 명이 죽었다. 세상의 무신론자들이 갈 고향이 있다. 북한이다. 그리 가고 싶어할 무신론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차라리 토니 블레어나 하다못해 조지 부시의 밑에서라도 살겠다. 요컨대 기독교인들이 편협하다고 말하는 무신론자들도 마찬가지로 편협하다.
해리스: 내가 왜 편협한가? 난 종교 신념을 이유로 사람들을 가두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서유럽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면 감옥에 간다. 문제를 그런 식으로 풀면 안 된다. 20세기의 최대 범죄가 무신론 때문에 벌어졌다는 생각이야말로 종교 담론의 최대 유언비어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문제는 분열적인 독단론이다. 독단론도 여러 유형이 있다. 민족주의가 있고 종족주의가 있으며 인종주의와 국수주의가 있다. 종교도 있다. 종교야말로 독단적 주장이 실제로 좋은 말씀으로 인정되고 신앙에 토대한 그 무엇을 믿는 행위가 고결하게 여겨지는 유일한 영역이다.
워런: 무신론자들이 비독단적이라고 생각하나?
해리스: 그렇다.
워런: 미안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당신은 매우 독단적이다.
해리스: 당신이 나의 독단을 지적해줘 기쁘다. 그러나 먼저 스탈린 이야기를 하자. 킬링필드와 강제수용소는 불충분한 증거를 토대로 신앙을 갖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소행이 아니다. 신앙을 갖기 전에 먼저 많은 증거를 요구하고 꼬치꼬치 따진 사람들의 소행이 아니다. 우리의 건물로 비행기를 몰고 돌진하는 사람이 나오는 까닭은 서구를 향한 신학적 불만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명백한 종교적 이유로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모습을 본다. 예컨대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지 않는 일이다. 내가 볼 때는 항상 동기가 최우선이다. 인류 역사상 지나치게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고통받은 사회는 없다.
워런: 그 점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난 그저 기독교가 이성을 살렸다고 생각할 뿐이다. 기독교가 없었다면 권리장전도 없다.
해리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다. 우리의 도덕이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나왔다는 생각은 잘못된 역사이고 잘못된 과학이다.
워런: 당신의 도덕이 어디서 나왔나? 만일 신이 없다면, 내가 단지 복잡한 진흙일 뿐이라면 진실은, 당신의 생명은 가치가 없고 내 생명도 가치가 없다.
해리스: 그런 황당한….
워런: 내 말 안 끝났다. 기독교를 우습게 폄하해도 내버려뒀다. 만일 생명이 단순한 무작위 기회라면 세상에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고 도덕도 없다. 적자생존만 있다. 적자생존을 위해 내가 당신을 죽여야 한다면 그렇게 하자. 무신론자들은 오래전부터 신이 없다고 말해 왔지만 신이 존재하는 듯 살고 싶어한다. 삶에 의미가 있다는 듯이 살고 싶어한다.
해리스: 우리의 도덕은, 우리가 인생에서 찾는 의미는, 함의가 담긴 용어를 사용하자면, 영적 요소를 갖는 삶의 체험이다. 예수나 부처가 목격했듯이 우리의 세상 체험을 좋은 쪽으로 확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영적, 관조적 문학에는 지혜가 있다. 정말 그것을 이해하고 싶다. 명상과 기도가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변화를 토대로 무엇을 믿어야 합리적이냐라는 점이다.
워런: 당신은 합리성 때문이 아니라 체험 때문에 무신론자가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리스: 당신은 무슨 체험을 통해 비무슬림이 됐는가? 분명 이슬람으로 개종할까 말까 고민하느라 매일 밤 잠을 설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무슬림들이 “우리에게는 조물주의 완벽한 말씀이 담긴 책이 있다. 바로 코란이다. 가브리엘 천사장이 동굴로 찾아와 마호메트에게 구술했다”고 주장할 때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증거가 있다면 무슬림으로 개종하게 마련이다.
워런: 맞는 말이다.
해리스: 따라서 당신과 나는 이슬람을 상대로 무신론의 관계에 선다.
워런: 우리는 둘 다 신앙의 관계에 선다. 당신은 신이 없다는 신앙을 가졌다. 난 1974년 대부분을 일본에 살면서 모든 세계 종교를 연구했다. 모든 종교는 기본적으로 진리를 지향한다. 부처는 열반에 들면서 “나는 아직도 진리를 찾는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마호메트는 “나는 진리의 예언자”라고 말했다. 베다에는 “진실은 잡기 어렵고 나비 같아 찾아다녀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예수께서 오셔서 “내가 곧 진리”라고 말했다. 갑자기 결론이 나왔다.
해리스: 다른 수많은 선지자와 구루들도 그 말을 했다.
워런: 이 점이 다르다. 예수는 “나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다. 내가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다”고 말했다. 거짓말, 아니면 참말 둘 중 하나다.
샘, 릭이 지적으로 부정직한가?
해리스: 그렇게 불쾌한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고 다만….
릭이 여기 없고 우리끼리만 이 방에서 빈둥거린다고 가정하자.
해리스: 솔직히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음을 확신한다고 말하다니 지적으로 부정직하다.
워런: 그건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하는 당신이 지적으로 부정직하다고 본다. 여기 당신과 나의 차이점이 있다. 나는 특정 분야에서 생각이 잘못됐을 가능성을 열어둔 반면 당신은 그렇지 않다.
해리스: 아, 난 그 가능성에 절대적으로 열려 있다.
워런: 그럼 예수에 관해 잘못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열려 있는가?
해리스: 제우스도 그렇고. 절대적이다.
워런: 그것을 연구하려고 어떻게 하나?
해리스: 워낙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라….
워런: 가능성이 낮다고? 세계 인구의 신자가 96%인데도?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바보인가?
해리스: 사람들이 대부분 잘못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진화를 믿지 않는 대다수 미국인처럼.
워런: 오만한 소리다.
해리스: 솔직한 소리다.
릭, 만일 인도나 이란에서 태어났다면 다른 신앙을 가졌을까?
워런: 출생지가 최초의 신앙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신에 관해서는 성서가 없어도 출생지와 상관없이 알게 되는 사항이 있다. 예컨대 나는 세상을 바라보며 “신은 다양한 모습을 좋아한다” “신은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신은 질서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생태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 질서가 얼마나 민감한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해리스: 그러면 신은 천연두와 결핵도 좋아하겠네.
워런: 이 세상의 많은 죄악을 내 탓으로 돌리겠다.
해리스: 천연두가 당신 책임인가?
워런: 그것과 관련해 뭔가 할 책임이 있다. 그 점은 분명하다. 해마다 말라리아에 걸리는 5억 인구와 관련해, 에이즈에 걸리는 4000만 인구와 관련해 뭔가 할 책임이 있다. 평생 책무를 느낄 테니까 말이다. 신에게 “왜 이것을 그냥 놔두십니까?” 물으면 “너는 왜 가만있느냐. 네가 네 기도의 해답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해리스: 나도 릭과 생각이 같다. 그런 불공평을 좁히도록 돕는 일이 우리의 책임이다. 그러나 당신이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사명감을 더 크게 느끼는 듯하다. 나는 이렇게 많이 가졌는데 이웃 사람은 저렇게 적게 가져야 할 타당한 이유가, 더욱이 초자연적인 타당한 이유는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신앙심이 동기가 되어 행하는 자선 행위가 실제로는 해롭다고 생각하는가?
해리스: 신앙을 토대로 한 이타주의에서 내 신경에 거슬리는 점이 있다.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종교적 사상으로 오염됐다는 점이다. 기독교 목사가 아프리카에 가서 배고픈 사람을 돕고 환자를 치료하면서 정말로 훌륭한 일을 한다. 그러나 자기 직무의 일환으로 예수 신앙을 전파할 필요성을 느낀다. 기독교도와 무슬림 간의 종교분쟁으로 사실상 수백만 명이 살해된 지역사회에서 말이다. 그 군더더기 행동이 불필요한 고통을 일으키는 듯하다. 단순히 배고픈 사람을 먹이고 아픈 환자를 치료만 하는 사람을 보냈으면 좋겠다.
워런: 신을 믿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이, 그러니까 무신론자가 배고픈 사람을 먹였으면 좋겠다는 말인가? 서구 문명의 대약진은 모두 신자들에 의해 일어났다. 노예제도 폐지는 목사들이 주도했다. 여성의 참정권은 목사들이 주도했다. 민권운동도 목사들이 주도했다. 무신론자들이 아니었다.
해리스: 당신이 노예제도를 들먹이다니 그야말로 모순이다. 성경을 보면 종합적으로 노예제도를 지지하면 했지 비난하지 않는다. 당신도 알다시피 구약을 보면 디모데 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에서 바오로가 명확히 그것을 지지했고, 베드로도….
워런: 천만에. 바오로는 허용했지 지지하지 않았다.
해리스: 좋다. 허용했다고 하자. 우리가 성경을 좀 더 열심히 읽어서 노예제도를 폐지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우리는 성경의 심각한 불공평에도 불구하고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인간을 농장 장비처럼 취급하는 일은 명백히 사악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실제 그랬듯이.
릭, 다른 신앙의 개혁을 권장하면서 목사로서 하는 역할은?
워런: 21세기의 모든 위대한 의문은 종교적 의문일 성싶다. 이슬람이 평화적으로 현대화할까? 기독교 신앙을 잃어버리고 그 손실을 종교적으로 만회할 수단이 있지 않은 세속적 유럽에 무슬림 인구가 유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엇이 중국의 공산주의를 대신할까? 모든 가능성에서 기독교가 답이 될 전망이다. 미국이 역사의 뿌리로 돌아가 제3의 대각성 운동이 일어날까, 아니면 미국도 유럽의 전철을 밟을까?
해리스: 영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그 답은 종파와 무관하지 않을까. 우리는 종파 충돌로, 특히 이슬람과의 충돌로 고통받는다. 우리의 진실은 기독교가 아니다. 무슬림도 아니다. 물리학은 기독교인이 발명했지만 그렇다고 기독교가 아니다. 대수(代數)는 무슬림이 발명했지만 이슬람이 아니다. 우리가 언제 진리에 도달하든지 간에 우리는 문화를 초월하고 교육을 초월한다. 과학 담론은 종족주의 초월의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좋은 예가 된다.
워런: 무신론이 지적으로 가장 정직하다면 왜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나?
해리스: 솔직히 말해 홍보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워런: [웃으며] 홍보의 문제가 아니다.
해리스: 되고 싶지 않은 사람 목록에서 무신론자는 어린이 성추행범 다음으로 올랐다. 종교인끼리 무신론을 나쁘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주장하고 싶다.
샘, 당신의 책에서 내 신경에 거슬리는 주장은 ‘신앙의 종말(The End of Faith)’에 나온 말을 그대로 빌리면, 내가 자녀를 교회에 데려가는 행위가 “어이없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죄”라는 대목이다. 너무 심한 말이라 대화를 장려한다고 보기 어려운데.
해리스: 어느 정도는 사람들 관심을 끌어보려는 의도로 거친 표현을 썼다. 그러나 사실 우리 상황이 그 정도로 시급하기 때문이라는 변명도 가능하다. 우리 문명이 현재 병목을 지나가는 듯해 두렵다. 한쪽에서는 21세기의 분열적 기술이 마구 발전하고 다른 쪽에는 1세기의 미신이 있다. 문명이 이 병목을 무사 통과할지 의문이다. 어쩌면 쓸데없는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문명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어떤 세대가 조상 대대로 쌓아온 전부가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신앙적 사고와 관련해 내가 특히 걱정하는 점은 문명이 예언대로 멸망하고 그 종말이 영광으로 끝난다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워런: 역사가 서기와 기원 전으로 나뉜 이유는 부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활은 예수의 부활만이 아니라 세계의 희망이기도 하다. 현생보다 그곳의 삶이 더 좋다고 한다. 그렇다고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이 인생은 시험이고 위탁이며 임시 과제라는 말이다. 만일 죽음으로 모두가 끝난다면 젠장, 더 이상 남을 돕느라 1분이라도 허비할 이유가 없다.
해리스: 나의 이타주의는 어떻게 설명하나?
워런: 보편적 은총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의 경우도 신이 심어놓은 불꽃이 있다. 그 불꽃은 “돈 벌고 죽는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 불꽃은 진화로 생기지 않는다고 본다.
샘은 죽음이 없다면 신앙을 토대로 한 종교의 영향은 생각하기 어렵다는데.
워런: 우리는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영생한다. 이승보다 영생 저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말이다. 심판의 날이 온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히틀러가 그 못된 짓을 저지르고도 무사하리라 생각했다면, 크게 좌절할 이유가 된다. 그러나 실은 심판의 날이 온다고 믿는다. 신은 사랑의 신만이 아니다. 심판의 신이다. 그래서 죽음이 한 요인이다. 한편 설령 천국 같은 게 없다 해도 난 그리스도를 믿겠다. 의미있고 만족스러우며 중대한 생활 방식이기 때문이다.
해리스: 신이 자신의 존재 여부를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 세상을 설계했다면 공평한가? 착한 사람이냐의 여부가 아니라 신앙이 중요한 근거가 되는 체제를 만들어놓았다면 공평한가? 단순히 잘못 태어났기 때문에 무슬림이란 엉터리 종교에 오도되는 세계를 만들어놓았는데 공평한가? 인류의 미래가 그처럼 경쟁하는 독단적 주장들 사이에서 잘 될지 걱정이다.
릭,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당신 생각에 샘의 영혼은 예수를 거부해 위험에 처했나?
워런: 정치적 불공정성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그렇다.
해리스: 솔직한 답인가?
워런: 진실을 말하자면 종교는 상호 배타적이다. “모든 종교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천치다. 종교는 명백히 서로 배척하기 때문이다. 윤회와 천국을 동시에 믿는 일은 불가능하다.
샘, 이번에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당신 생각에 릭은 당신이 1세기 미신이라고 믿는 복음서 때문에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했나?
해리스: 그렇게 심한 표현은 쓰지 않겠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허비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는지 확실한 견해가 없기 때문이다.
워런: 정치적 불공정성을 무릅쓴 답은?
해리스: 성경은 오류가 없는 신의 말씀이며 모든 주제에서 더 나은 작품이 나오지 못할 최고의 책이라는 믿음을 중심으로 인생을 살기보다는 더 좋은 방법으로 시간과 관심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샘의 생각에 이상적인 세계는 어떻게 돌아갈까?
해리스: 신과 영적 체험과 윤리를 논해야 하는 규칙을 당장 바꿔야 한다. 난 그 규칙을 부인한다. 영성(靈性)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동굴에 들어가 명상하면서 자신을 바꾼 다음 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어떻게 재현할지 논의해도 좋다. 심지어 완벽하게 합리적인 이유로 이 나라에 진정한 안식일이 필요하다고 말해도 좋다. 우주의 신비를 관조하며, 자신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상기하며,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을 얼마나 더 사랑할지 상기하는 데서 힘을 얻는다는 점을 깨닫자. 그 가능성을 논하려고 불충분한 증거를 토대로 신앙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다.
워런: 샘,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나?
해리스: 죽은 다음 뇌에서 빠져나가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식의 영혼이라는 순진한 개념을 믿지 못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난 모르겠다.
워런: 영혼도 없이 영성이 어디서 나오나?
해리스: 우주와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워런: 좋다. 그러면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어떤가? 지금 너무나 비합리적인 용어로 말하기 때문이다.
해리스: 거기에 비합리적인 점은 전혀 없다. 명상에 빠져 눈을 감으면 신체적 감각을 몽땅 잃는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이 그런 경험에서 “나는 영혼일 뿐이며 신체를 초월한다”는 형이상학적 결론을 얻는다. 그 체험에서 그런 결론만 나오지는 않으며, 그것이 최선의 결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워런: 당신은 생각보다 더욱 영적이다. 우두머리를 원치 않을 뿐이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신을 원치 않는다.
해리스: 내가 확실히 모르는 사항을 확실히 아는 체하고 싶지 않다.
릭,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워런: 난 신앙과 이성을 모두 믿는다. 우리가 신에 관해 더욱 알아갈수록 이 우주가 얼마다 장대한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 점은 부인 못한다. 역사를 보면서 샘과 생각을 달리한다. 기독교가 저지른 악행보다 선행이 훨씬 더 많았다. 이타주의는 인생이 이것으로 끝이 아니고, 전능한 신이 있으며, 내가 신이 아니라는 지식에서 나온다. 우리는 모두 도박을 하는 셈이다. 그는 자기 생각이 옳다며 인생을 건 도박을 한다. 나는 인생을 걸고 예수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도박을 한다. 우리가 죽을 때 만일 샘이 옳다 해도 난 손해 볼 게 없다. 내가 옳다면 그는 몽땅 잃는다. 그런 도박은 하고 싶지 않다.
릭 워런은 덩치가 곰만 하다. 목소리가 우렁차고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성격이다. 샘 해리스는 다부지고 조심스럽다. 저서에서 보여준 까다로운 모습과는 달리 사분사분하고 부드럽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개신교 목사 워런은 1980년 새들백 교회를 세웠다.
지금은 매주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는 신도가 2만5000명이다. 해리스는 말투가 부드럽다. 신경과학 박사과정을 밟는 사람답게 복잡하면서도 사실에 근거한 문장이 술술 나온다. 두 사람은 뉴스위크의 초대를 받고 최근 워런의 사무실에서 만나 네 시간 동안 환담했다. 존 미첨 기자가 사회를 봤다.
존 미첨: 릭, 당신네 동네에 왔으니까 샘에게 먼저 묻겠다. 샘, 대다수 미국인이 생각하는 의미로 신이 존재하는가?
샘 해리스: 그런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제우스를 비롯해 이제 아무도 숭배하지 않는 수많은 죽은 신이 있듯 우리가 무신론자라는 사실에 주목하면 유익하다.
릭, 아브라함의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뭔가?
릭 워런: 도처에서 신의 흔적을 본다. 문화에도 보이고 법에도 보인다. 문학에도 있고 자연에도 있다. 내 삶에도 있다. 신이 어디 있는지 이해하려는 시도는 개미가 인터넷을 이해하려는 짓과 마찬가지다. 아무리 총명한 과학자라도 우리의 우주 지식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데 동의하리라.
해리스: 우리가 우주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 한다는 사실은 어느 과학자라도 시인한다. 그러나 성경이나 코란에도 역시 우주를 말해주는 최선의 이해가 담기지는 않았다. 그 점은 분명하다.
워런: 그건 당신의 경우다.
해리스: 우리 자신에 관해 성경에 나오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 우주론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에 이르는 특정 학문들은 모두 성경이 이 세상에 관해 말해주는 진실을 능가하거나 대치했다.
샘, 당신 저서의 상대자인 기독교인들은 신이 성경을 썼고 그것이 글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어야 하나?
해리스: 성서를 보는 신뢰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진실이며 절대로 비유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고, “이것은 현자들이 쓴 최선의 책이며, 다른 책들을 배제하고 우리 생활의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기에 여전히 유효하다”는 시각도 있다. 그 양 극단의 어디에 있든 문제라고 본다. 내 생각에는 성서와 코란은 인간의 손으로 쓴 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정말로 뛰어나고 시적으로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부분이 있는가 하면 말도 안 되는 횡포임에도 불구하고 신의 도덕률입네 하는 부분이 있다. 어디서 시작해야 하나? 레위기, 신명기, 출애굽기, 열왕기 상·하, 사무엘 하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이나 선지자들이 저지른 일이 만일 요즘 시대에 일어났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끌려가 반인륜적 범죄자로 기소당할 만하다.
[워런에게] 성서에는 오류가 없나?
워런: 무오류라는 주장 자체에는 오류가 없다고 생각한다. 성경이 과학책으로 행세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천지창조가 창세기에 나온 대로 이뤄졌다고 믿나?
워런: 진화를 믿느냐는 질문이라면, 난 믿지 않는다. 신이 한순간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다. 창세기가 사실이라고 믿지만 동시에 비유적 표현이 사용됐다는 점도 안다. 신이 땅에 내려와 인간의 코에 숨을 불어 넣었나?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없이 기적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그런 식이 신의 뜻이라면 난 상관없다.
해리스: 난 신경과학 박사학위를 밟는 중이다. 진화생물학 문헌에 익숙하다. 요점을 말하자면 자연 선택에 따른 진화는 적자를 선택하는 환경의 압력이라는 상황에서 수백만 년 세월에 걸쳐 일어난 무작위 돌연변이다.
워런: 그 선택은 누가 하나?
해리스: 환경이다. 그 복잡성을 설명하려고 지적 설계자를 들먹일 필요는 없다.
워런: 샘은 자신의 가정을 토대로 모든 주장을 편다. 나에게도 가정이 전제됐음을 기꺼이 인정한다. 신의 존재에 관한 단서 말이다. 난 매일 신과 대화한다. 그분이 내게 말한다.
해리스: 무슨 뜻인가?
워런: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는 기도의 화답이다. 캐나다인 친구가 있는데 영주권 문제가 있다. 우리 교회의 실습생인지라 저녁산책을 나가면서 말했다. “하나님, 이 문제를 도와주세요.” 산책 도중 어떤 여자를 만났다. “이민 전문 변호사인데 기꺼이 이 사건을 맡겠다”고 말했다. 그런 일이 평생에 한 번만 일어났다면 “우연”이라고 말하겠다. 그것이 수만 번 일어나면 우연이 아니다.
목회자 일을 하는 동안 어떤 사람이 병에서 낫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지 않나. 예컨대 암에 걸린 소녀라든가.
워런: 당연하다.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해보자. 신이 당신에게 이민 변호사를 보내줬지만 소녀는 죽였는데.
워런: 난 신의 선의를 믿으며 그분이 나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신이 ‘알았다’고 하는 때가 있고 ‘안 된다’고 하는 때가 있으며 ‘기다리라’고 하는 때도 있다. ‘안 된다’와 ‘아직 때가 아니다’의 차이를 배웠다. 이것은 요컨대 복종의 문제다. 많은 무신론자는 합리주의의 뒤에 숨는다. 캐고 들면 그들의 반응은 무척 감정적임을 알게 된다. 화를 내지 않는 무신론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해리스: 내가 그 최초가 되겠다.
워런: 책에서는 꽤 분노했던데.
해리스: 분노라기보다 인내심의 부족이라고 하자. 그 기도의 화답이라는 생각에 관해 말하겠다. 통계학 용어로 말해 전형적인 표본오차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인간의 확률 감각은 끔찍할 정도다. 세상에 관한 우리의 편견을 확인시켜 준다고 생각하는 사물이 많다. 우리는 확인해준다는 쪽만 보고 그렇게 믿는다. 그 반대의 증거는 보지 않는다. 간단한 실험으로 중개적 기도의 효능을 입증해 모든 과학자를 만족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기독교인 10억 명을 동원해 팔다리 하나가 잘린 사람을 위해 기도를 올리도록 해보자. 신에게 그 잘린 부위를 다시 재생시켜 달라고 기도한다. 도롱뇽에겐 매일 일어나는 일이지만 아마 기도 따위는 올리지 않을 성싶다. 그것은 신의 능력으로 되는 일이다. [워런이 웃는다.] 신앙인들이 기도를 올리면서 스스로 제약을 가하는 현상이 흥미롭다.
워런: 말이 잘못 됐다.
해리스: 성경으로 돌아가 보자.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고 당신이 믿는 이유는 복음서가 예수의 기적을 확실히 기술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워런: 그것도 한 가지 이유다.
해리스: 한 가지 이유라. 다른 종교의 문헌을 보면 예수의 기적 못지않게 신기한 기적 이야기가 많다. 현 시대의 기적도 있다. 인도 남부의 현자인 사티야 사이바바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으며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고 사물을 만들어낸다고 믿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다. 유튜브에 그의 기적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있다. 실망스럽겠지만 그는 무대 마술사다. 당신은 기독교도로서 사티야 사이바바의 기적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내버려두고, 과학이 나오기 전인 1세기 로마제국의 종교 환경이 무대라면 그런 기적 이야기가 갑자기 대단한 위력을 지니게 된다.
샘, 훌륭한 도덕 규범의 세속적 뿌리는 무엇인가?
해리스: 종교 서적이 그 뿌리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우리는 성서를 읽으면서 선행을 판단한다. 황금률(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이 윤리적 충동을 증류하는 훌륭한 매개라고 생각하지만 황금률은 성경이나 예수만의 생각이 아니다. 많은 문화에 나온다. 인간이 아닌 영장류에서도 그 비슷한 형태를 본다. 난 도덕적 상대주의자가 아니다. 종교인들은 대체로 무신론이 도덕적 상대주의를 수반한다고 생각한다. 난 절대선과 절대악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명예살인(이슬람권에서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가족 구성원을 죽이는 관습)은 명백한 잘못이다. 사악하다고 말해도 좋다. 문란한 품행을 이유로, 심지어 강간당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여인과 소녀를 죽이는 사회는 동정심이 말살되고, 남성에게 여성을 존중하라고 가르치는 데 실패했으며, 공감대가 완전히 사라진 사회다. 공감과 동정심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 충동이다. 굳이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책들의 기원이나 특정인의 동정 수태에 관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황금률을 가르치기는 가능하다.
릭, 기독교는 때때로 비열할 정도로 못되게 굴었다. 사랑이라는 기독교의 복음과 어긋나는데?
워런: 신이 승인하거나 옹호하지도 않았는데 신의 이름으로 저지른 짓을 변명할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저지른 잘못이 있나? 물론 샘은 저서에서 종교가 세계를 위해 나쁘다고 주장하지만 종교전쟁 희생자를 전부 합쳐도 무신론자들 때문에 죽은 사람보다는 적다. 종교재판에서 수천 명이 죽었다지만 마오쩌둥·스탈린·폴포트 치하에서는 수백만 명이 죽었다. 세상의 무신론자들이 갈 고향이 있다. 북한이다. 그리 가고 싶어할 무신론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차라리 토니 블레어나 하다못해 조지 부시의 밑에서라도 살겠다. 요컨대 기독교인들이 편협하다고 말하는 무신론자들도 마찬가지로 편협하다.
해리스: 내가 왜 편협한가? 난 종교 신념을 이유로 사람들을 가두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서유럽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면 감옥에 간다. 문제를 그런 식으로 풀면 안 된다. 20세기의 최대 범죄가 무신론 때문에 벌어졌다는 생각이야말로 종교 담론의 최대 유언비어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문제는 분열적인 독단론이다. 독단론도 여러 유형이 있다. 민족주의가 있고 종족주의가 있으며 인종주의와 국수주의가 있다. 종교도 있다. 종교야말로 독단적 주장이 실제로 좋은 말씀으로 인정되고 신앙에 토대한 그 무엇을 믿는 행위가 고결하게 여겨지는 유일한 영역이다.
워런: 무신론자들이 비독단적이라고 생각하나?
해리스: 그렇다.
워런: 미안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당신은 매우 독단적이다.
해리스: 당신이 나의 독단을 지적해줘 기쁘다. 그러나 먼저 스탈린 이야기를 하자. 킬링필드와 강제수용소는 불충분한 증거를 토대로 신앙을 갖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소행이 아니다. 신앙을 갖기 전에 먼저 많은 증거를 요구하고 꼬치꼬치 따진 사람들의 소행이 아니다. 우리의 건물로 비행기를 몰고 돌진하는 사람이 나오는 까닭은 서구를 향한 신학적 불만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명백한 종교적 이유로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모습을 본다. 예컨대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지 않는 일이다. 내가 볼 때는 항상 동기가 최우선이다. 인류 역사상 지나치게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고통받은 사회는 없다.
워런: 그 점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난 그저 기독교가 이성을 살렸다고 생각할 뿐이다. 기독교가 없었다면 권리장전도 없다.
해리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다. 우리의 도덕이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나왔다는 생각은 잘못된 역사이고 잘못된 과학이다.
워런: 당신의 도덕이 어디서 나왔나? 만일 신이 없다면, 내가 단지 복잡한 진흙일 뿐이라면 진실은, 당신의 생명은 가치가 없고 내 생명도 가치가 없다.
해리스: 그런 황당한….
워런: 내 말 안 끝났다. 기독교를 우습게 폄하해도 내버려뒀다. 만일 생명이 단순한 무작위 기회라면 세상에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고 도덕도 없다. 적자생존만 있다. 적자생존을 위해 내가 당신을 죽여야 한다면 그렇게 하자. 무신론자들은 오래전부터 신이 없다고 말해 왔지만 신이 존재하는 듯 살고 싶어한다. 삶에 의미가 있다는 듯이 살고 싶어한다.
해리스: 우리의 도덕은, 우리가 인생에서 찾는 의미는, 함의가 담긴 용어를 사용하자면, 영적 요소를 갖는 삶의 체험이다. 예수나 부처가 목격했듯이 우리의 세상 체험을 좋은 쪽으로 확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영적, 관조적 문학에는 지혜가 있다. 정말 그것을 이해하고 싶다. 명상과 기도가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변화를 토대로 무엇을 믿어야 합리적이냐라는 점이다.
워런: 당신은 합리성 때문이 아니라 체험 때문에 무신론자가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리스: 당신은 무슨 체험을 통해 비무슬림이 됐는가? 분명 이슬람으로 개종할까 말까 고민하느라 매일 밤 잠을 설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무슬림들이 “우리에게는 조물주의 완벽한 말씀이 담긴 책이 있다. 바로 코란이다. 가브리엘 천사장이 동굴로 찾아와 마호메트에게 구술했다”고 주장할 때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증거가 있다면 무슬림으로 개종하게 마련이다.
워런: 맞는 말이다.
해리스: 따라서 당신과 나는 이슬람을 상대로 무신론의 관계에 선다.
워런: 우리는 둘 다 신앙의 관계에 선다. 당신은 신이 없다는 신앙을 가졌다. 난 1974년 대부분을 일본에 살면서 모든 세계 종교를 연구했다. 모든 종교는 기본적으로 진리를 지향한다. 부처는 열반에 들면서 “나는 아직도 진리를 찾는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마호메트는 “나는 진리의 예언자”라고 말했다. 베다에는 “진실은 잡기 어렵고 나비 같아 찾아다녀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예수께서 오셔서 “내가 곧 진리”라고 말했다. 갑자기 결론이 나왔다.
해리스: 다른 수많은 선지자와 구루들도 그 말을 했다.
워런: 이 점이 다르다. 예수는 “나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다. 내가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다”고 말했다. 거짓말, 아니면 참말 둘 중 하나다.
샘, 릭이 지적으로 부정직한가?
해리스: 그렇게 불쾌한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고 다만….
릭이 여기 없고 우리끼리만 이 방에서 빈둥거린다고 가정하자.
해리스: 솔직히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음을 확신한다고 말하다니 지적으로 부정직하다.
워런: 그건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하는 당신이 지적으로 부정직하다고 본다. 여기 당신과 나의 차이점이 있다. 나는 특정 분야에서 생각이 잘못됐을 가능성을 열어둔 반면 당신은 그렇지 않다.
해리스: 아, 난 그 가능성에 절대적으로 열려 있다.
워런: 그럼 예수에 관해 잘못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열려 있는가?
해리스: 제우스도 그렇고. 절대적이다.
워런: 그것을 연구하려고 어떻게 하나?
해리스: 워낙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라….
워런: 가능성이 낮다고? 세계 인구의 신자가 96%인데도?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바보인가?
해리스: 사람들이 대부분 잘못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진화를 믿지 않는 대다수 미국인처럼.
워런: 오만한 소리다.
해리스: 솔직한 소리다.
릭, 만일 인도나 이란에서 태어났다면 다른 신앙을 가졌을까?
워런: 출생지가 최초의 신앙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신에 관해서는 성서가 없어도 출생지와 상관없이 알게 되는 사항이 있다. 예컨대 나는 세상을 바라보며 “신은 다양한 모습을 좋아한다” “신은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신은 질서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생태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 질서가 얼마나 민감한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해리스: 그러면 신은 천연두와 결핵도 좋아하겠네.
워런: 이 세상의 많은 죄악을 내 탓으로 돌리겠다.
해리스: 천연두가 당신 책임인가?
워런: 그것과 관련해 뭔가 할 책임이 있다. 그 점은 분명하다. 해마다 말라리아에 걸리는 5억 인구와 관련해, 에이즈에 걸리는 4000만 인구와 관련해 뭔가 할 책임이 있다. 평생 책무를 느낄 테니까 말이다. 신에게 “왜 이것을 그냥 놔두십니까?” 물으면 “너는 왜 가만있느냐. 네가 네 기도의 해답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해리스: 나도 릭과 생각이 같다. 그런 불공평을 좁히도록 돕는 일이 우리의 책임이다. 그러나 당신이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사명감을 더 크게 느끼는 듯하다. 나는 이렇게 많이 가졌는데 이웃 사람은 저렇게 적게 가져야 할 타당한 이유가, 더욱이 초자연적인 타당한 이유는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신앙심이 동기가 되어 행하는 자선 행위가 실제로는 해롭다고 생각하는가?
해리스: 신앙을 토대로 한 이타주의에서 내 신경에 거슬리는 점이 있다.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종교적 사상으로 오염됐다는 점이다. 기독교 목사가 아프리카에 가서 배고픈 사람을 돕고 환자를 치료하면서 정말로 훌륭한 일을 한다. 그러나 자기 직무의 일환으로 예수 신앙을 전파할 필요성을 느낀다. 기독교도와 무슬림 간의 종교분쟁으로 사실상 수백만 명이 살해된 지역사회에서 말이다. 그 군더더기 행동이 불필요한 고통을 일으키는 듯하다. 단순히 배고픈 사람을 먹이고 아픈 환자를 치료만 하는 사람을 보냈으면 좋겠다.
워런: 신을 믿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이, 그러니까 무신론자가 배고픈 사람을 먹였으면 좋겠다는 말인가? 서구 문명의 대약진은 모두 신자들에 의해 일어났다. 노예제도 폐지는 목사들이 주도했다. 여성의 참정권은 목사들이 주도했다. 민권운동도 목사들이 주도했다. 무신론자들이 아니었다.
해리스: 당신이 노예제도를 들먹이다니 그야말로 모순이다. 성경을 보면 종합적으로 노예제도를 지지하면 했지 비난하지 않는다. 당신도 알다시피 구약을 보면 디모데 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에서 바오로가 명확히 그것을 지지했고, 베드로도….
워런: 천만에. 바오로는 허용했지 지지하지 않았다.
해리스: 좋다. 허용했다고 하자. 우리가 성경을 좀 더 열심히 읽어서 노예제도를 폐지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우리는 성경의 심각한 불공평에도 불구하고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인간을 농장 장비처럼 취급하는 일은 명백히 사악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실제 그랬듯이.
릭, 다른 신앙의 개혁을 권장하면서 목사로서 하는 역할은?
워런: 21세기의 모든 위대한 의문은 종교적 의문일 성싶다. 이슬람이 평화적으로 현대화할까? 기독교 신앙을 잃어버리고 그 손실을 종교적으로 만회할 수단이 있지 않은 세속적 유럽에 무슬림 인구가 유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엇이 중국의 공산주의를 대신할까? 모든 가능성에서 기독교가 답이 될 전망이다. 미국이 역사의 뿌리로 돌아가 제3의 대각성 운동이 일어날까, 아니면 미국도 유럽의 전철을 밟을까?
해리스: 영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그 답은 종파와 무관하지 않을까. 우리는 종파 충돌로, 특히 이슬람과의 충돌로 고통받는다. 우리의 진실은 기독교가 아니다. 무슬림도 아니다. 물리학은 기독교인이 발명했지만 그렇다고 기독교가 아니다. 대수(代數)는 무슬림이 발명했지만 이슬람이 아니다. 우리가 언제 진리에 도달하든지 간에 우리는 문화를 초월하고 교육을 초월한다. 과학 담론은 종족주의 초월의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좋은 예가 된다.
워런: 무신론이 지적으로 가장 정직하다면 왜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나?
해리스: 솔직히 말해 홍보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워런: [웃으며] 홍보의 문제가 아니다.
해리스: 되고 싶지 않은 사람 목록에서 무신론자는 어린이 성추행범 다음으로 올랐다. 종교인끼리 무신론을 나쁘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주장하고 싶다.
샘, 당신의 책에서 내 신경에 거슬리는 주장은 ‘신앙의 종말(The End of Faith)’에 나온 말을 그대로 빌리면, 내가 자녀를 교회에 데려가는 행위가 “어이없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죄”라는 대목이다. 너무 심한 말이라 대화를 장려한다고 보기 어려운데.
해리스: 어느 정도는 사람들 관심을 끌어보려는 의도로 거친 표현을 썼다. 그러나 사실 우리 상황이 그 정도로 시급하기 때문이라는 변명도 가능하다. 우리 문명이 현재 병목을 지나가는 듯해 두렵다. 한쪽에서는 21세기의 분열적 기술이 마구 발전하고 다른 쪽에는 1세기의 미신이 있다. 문명이 이 병목을 무사 통과할지 의문이다. 어쩌면 쓸데없는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문명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어떤 세대가 조상 대대로 쌓아온 전부가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신앙적 사고와 관련해 내가 특히 걱정하는 점은 문명이 예언대로 멸망하고 그 종말이 영광으로 끝난다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워런: 역사가 서기와 기원 전으로 나뉜 이유는 부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활은 예수의 부활만이 아니라 세계의 희망이기도 하다. 현생보다 그곳의 삶이 더 좋다고 한다. 그렇다고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이 인생은 시험이고 위탁이며 임시 과제라는 말이다. 만일 죽음으로 모두가 끝난다면 젠장, 더 이상 남을 돕느라 1분이라도 허비할 이유가 없다.
해리스: 나의 이타주의는 어떻게 설명하나?
워런: 보편적 은총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의 경우도 신이 심어놓은 불꽃이 있다. 그 불꽃은 “돈 벌고 죽는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 불꽃은 진화로 생기지 않는다고 본다.
샘은 죽음이 없다면 신앙을 토대로 한 종교의 영향은 생각하기 어렵다는데.
워런: 우리는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영생한다. 이승보다 영생 저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말이다. 심판의 날이 온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히틀러가 그 못된 짓을 저지르고도 무사하리라 생각했다면, 크게 좌절할 이유가 된다. 그러나 실은 심판의 날이 온다고 믿는다. 신은 사랑의 신만이 아니다. 심판의 신이다. 그래서 죽음이 한 요인이다. 한편 설령 천국 같은 게 없다 해도 난 그리스도를 믿겠다. 의미있고 만족스러우며 중대한 생활 방식이기 때문이다.
해리스: 신이 자신의 존재 여부를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 세상을 설계했다면 공평한가? 착한 사람이냐의 여부가 아니라 신앙이 중요한 근거가 되는 체제를 만들어놓았다면 공평한가? 단순히 잘못 태어났기 때문에 무슬림이란 엉터리 종교에 오도되는 세계를 만들어놓았는데 공평한가? 인류의 미래가 그처럼 경쟁하는 독단적 주장들 사이에서 잘 될지 걱정이다.
릭,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당신 생각에 샘의 영혼은 예수를 거부해 위험에 처했나?
워런: 정치적 불공정성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그렇다.
해리스: 솔직한 답인가?
워런: 진실을 말하자면 종교는 상호 배타적이다. “모든 종교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천치다. 종교는 명백히 서로 배척하기 때문이다. 윤회와 천국을 동시에 믿는 일은 불가능하다.
샘, 이번에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당신 생각에 릭은 당신이 1세기 미신이라고 믿는 복음서 때문에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했나?
해리스: 그렇게 심한 표현은 쓰지 않겠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허비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는지 확실한 견해가 없기 때문이다.
워런: 정치적 불공정성을 무릅쓴 답은?
해리스: 성경은 오류가 없는 신의 말씀이며 모든 주제에서 더 나은 작품이 나오지 못할 최고의 책이라는 믿음을 중심으로 인생을 살기보다는 더 좋은 방법으로 시간과 관심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샘의 생각에 이상적인 세계는 어떻게 돌아갈까?
해리스: 신과 영적 체험과 윤리를 논해야 하는 규칙을 당장 바꿔야 한다. 난 그 규칙을 부인한다. 영성(靈性)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동굴에 들어가 명상하면서 자신을 바꾼 다음 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어떻게 재현할지 논의해도 좋다. 심지어 완벽하게 합리적인 이유로 이 나라에 진정한 안식일이 필요하다고 말해도 좋다. 우주의 신비를 관조하며, 자신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상기하며,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을 얼마나 더 사랑할지 상기하는 데서 힘을 얻는다는 점을 깨닫자. 그 가능성을 논하려고 불충분한 증거를 토대로 신앙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다.
워런: 샘,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나?
해리스: 죽은 다음 뇌에서 빠져나가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식의 영혼이라는 순진한 개념을 믿지 못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난 모르겠다.
워런: 영혼도 없이 영성이 어디서 나오나?
해리스: 우주와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워런: 좋다. 그러면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어떤가? 지금 너무나 비합리적인 용어로 말하기 때문이다.
해리스: 거기에 비합리적인 점은 전혀 없다. 명상에 빠져 눈을 감으면 신체적 감각을 몽땅 잃는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이 그런 경험에서 “나는 영혼일 뿐이며 신체를 초월한다”는 형이상학적 결론을 얻는다. 그 체험에서 그런 결론만 나오지는 않으며, 그것이 최선의 결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워런: 당신은 생각보다 더욱 영적이다. 우두머리를 원치 않을 뿐이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신을 원치 않는다.
해리스: 내가 확실히 모르는 사항을 확실히 아는 체하고 싶지 않다.
릭,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워런: 난 신앙과 이성을 모두 믿는다. 우리가 신에 관해 더욱 알아갈수록 이 우주가 얼마다 장대한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 점은 부인 못한다. 역사를 보면서 샘과 생각을 달리한다. 기독교가 저지른 악행보다 선행이 훨씬 더 많았다. 이타주의는 인생이 이것으로 끝이 아니고, 전능한 신이 있으며, 내가 신이 아니라는 지식에서 나온다. 우리는 모두 도박을 하는 셈이다. 그는 자기 생각이 옳다며 인생을 건 도박을 한다. 나는 인생을 걸고 예수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도박을 한다. 우리가 죽을 때 만일 샘이 옳다 해도 난 손해 볼 게 없다. 내가 옳다면 그는 몽땅 잃는다. 그런 도박은 하고 싶지 않다.
출처 : 은혜(恩惠)
글쓴이 : 은혜 (恩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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