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요한복음 3:16
2007.11.25(주일예배)
들어가는 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이 세상을 살고 있는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신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을 들라면 고아일 것입니다. 고아가 불쌍한 이유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아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힘들고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세상에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도 늘 자신이 상대방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지 의심을 하기 때문에 그 관계를 원만히 하는데 힘듭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고아처럼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지 못하고 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조금만 환경이 어려워지면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에 넘길 정도로 큰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본문 말씀을 통하여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나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할 때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나’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의 앞부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상'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온 인류를 가리킵니다. 유대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은 선민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민족이나 계급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미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이었던 우리까지 포함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말씀합니다. 이 ‘세상’은 내가 속해있는 세상이며, 나의 존재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은 바로 나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는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대상은 ‘이 세상에 있는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나의 옛모습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나의 옛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에베소서 2:1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의 과거의 삶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죽었던 자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전의 우리의 모습은 죄와 허물로 죽어서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의 모습입니다. ‘허물’은 부주의하여 진리에서 떠나는 것이며, '죄'는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생의 목표를 정확히 맞추지 못한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둘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떠나 있는 죄인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죄 가운데서 행하여’ 윤리적인 행동이나 삶의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 세상 풍속을 좇아’ 이 세대의 타락한 인간 존재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악한 세대와 이 세상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 왔습니다. 우리의 죄악된 행위는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현세적인 세상의 기준과 가치에 따른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인간의 참된 행복 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하는 초자연적인 악의 세력으로 곧 '사단'(막 8:33; 눅 22:3)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이런 악한 사단의 영의 통치(統治)하에 살았었습니다(엡 2:2).
그때 우리는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였습니다.”(엡2:3) 우리는 모두 과거에 하나님께 불순종 하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인간의 이기적인 욕구(慾求)에 따라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모두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구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에베소서 2:4-5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인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롬 5:8).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큰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큰사랑을 요한일서 4:8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사랑이 하나님의 모든 행위들 중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자체가 사랑임을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고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
그러면 하나님의 큰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어 보여주신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하신 사랑입니다. 본문에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때문입니다. 여기서 '독생자'라는 표현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루터의 말을 빌리면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 전부터 계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결국 예수님의 탄생은 영원 전부터 독생자로 존재하셨던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成肉身)이었다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사례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심’까지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주시어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그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의 사랑은 결코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성격의 것이며 막연한 이론이나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아낌없이 지불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시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로마서 5:8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때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입니다. 여기서 '죄인'은 도덕적으로 의롭거나 선하지 않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시작된 인간의 전적 타락성과 부패성으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신’ 것입니다(갈 1:4).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의 사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고 영원하며 참됨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자기 자신의 사랑이 아니라 모범을 따르는 사랑이요 배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확고하고 구체적으로 인간에게 드러내셨으니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생을 주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결과를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주신 결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영생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으심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믿는 자의 구원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멸망'과 '영생' 사이에 어떠한 중립적인 선택은 없으며 그것은 절대적인 양자택일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요 믿지 않는 자에게는 멸망입니다.
'멸망하다'라는 말은 구원과 반대되는 개념을 나타내는 말이며, 생명과 반대되는 ‘죽음’을 나타낼 때(막 3:6) 사용되었던 말입니다. 특히 여기서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 살아가는 자들은 필경 절망과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게 됨을 암시합니다. 그들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허망하며 하나님과의 친교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곧 죽음과 멸망을 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 17:3). 영생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은 결과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하여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세주요 자신에게 참생명을 공급해주신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게 되고 점점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영생을 얻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12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놓으신 구원의 결과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영접하는 자’는 개인적인 영접을 의미하며, 구원이 하나님과 개인과의 단독적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영접한다'는 것은 한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요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것의 구체적인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 이름을 지닌 사람'을 믿는다는 뜻으로, 그 이름을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부터 끊임없이 계속되는 그리스도에 대한 강력한 신앙'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생애와 그의 구원의 능력 그리고 그의 영원성, 인격성, 신성을 믿는다는 단순한 사실을 뛰어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마다’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다는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전인격적으로 영접한 자의 신분의 변화를 말합니다. 즉 ‘어두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의 놀라운 변화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현재의 시점에서의 신분의 변화가 영원까지 계속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누리는 축복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곧 ‘권세’를 부여 받는 것입니다. ‘권세’는 성경에서 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눅12:5; 골 1:13)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부여해주신 절대적인 권한과 힘(17:2;마 28:18;막 2:10;3:15;눅 4:36)을 나타냅니다. 성도는 이와 같은 권세를 예수님으로부터 부여받습니다(고후 10:8;계 22:14). 따라서 이와 같은 권세를 부여받았다는 것은 죄와 어둠의 세상에서부터 자유롭게 됨을 의미하며, 이 자유로운 권능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 사역에 사용되어야만 합니다(고전 9:12, 18).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어 십자가에 죽게 하시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영생을 확신하며 살아야합니다. 영생을 확신하는 삶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단순히 지식으로 아는 것만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요 15: 1-12).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모두 주님과 함께 하여 모든 시간과 장소를 그리스도와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살게 될 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고, 그때 주님의 사랑에 거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에 거하는 것은 주님의 계명을 지킬 때 가능합니다. 그 계명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과 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요 15:12).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그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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